10. 삶의 문제 - 자신을 고통으로 모는 당신에게

너무 큰 고통은 제한되어야 한다.

by 닥터 온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유의 이중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내가 한 행동이라는 것은 남은 모를지 몰라도 나 자신은 반드시 알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 우리는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저서 시지프 신화에서 우리네 인생을 시지프스의 형벌에 비유한다. 실로 우리는 무의 세계로 향하는 여정의 끝까지 계속해서 우리의 의지로 돌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돈을 힘겹게 모았다가 사기 한방에 날리기도 하고, 힘들게 아기를 키워서 사고로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노력을 선택적으로 자유롭게 집중한 결과이다.

이러한 자유의 결과가 물거품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시지프스가 돌이 언덕 아래로 내려갈 때 느낀 것과 같은 상실감과 허무를 경험한다. 그런데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언덕 위로 돌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춘다는 의미이고, 자유로운 선택을 제한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마조히즘(masochism)의 개념이 나온다.


흔히 우리는 마조히즘을 성적인 의미로 국한하여 사용하곤 한다. 성교할 때 때리면 사디즘이고 맞으면 마조히즘이다. 그런데 마조히즘은 성적인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피학적인 역할을 주로 맡으려고 할 때 그 사람을 마조히스트(masochist)라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피학적이라는 것은 어떤 개념인가? 자신이 피해자가 되고 억압받고 비난받는 포지션을 찾아 들어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난받을 만한 짓을 무의식적으로 하거나, 자유가 제한되고 누군가에게 명령받는 지위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자유를 박탈당한 것에 대한 대가는 역설적이게도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다. 마조히스트는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오히려 비난받고 억압받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동정의 시선을 유도할 수 있다.


협의의 마조히즘이 병적으로 명령받고 억압받는 것을 좋아하는 정도라면, 광의에 있어 마조히즘은 선택하는 것을 제한하고 스스로 자유를 박탈하는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행위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로를 모색하기를 귀찮아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살며, 인터넷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만 소비하며 살아가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만 하는 행위도 넓은 의미에 있어 마조히스틱 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행위를 기존의 병적 마조히스틱한 범주에 넣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억압받고 시키는 대로 살기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개척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마조히즘의 예처럼 사실 고통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것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고통에 처하는 순간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만, 그 이후에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회복되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낀다. 고통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할 쾌감이다. 플랭크를 하여 복근을 득근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매일 하는 플랭크는 정말 고통의 연속이다.


그런데 이 고통이라는 것이 짧은 시간에 너무 급격하게 주어지면 인간을 죽음으로 내몬다. 더 이상 이런 고통을 느끼는 인식의 주체로서는 작용하기 싫어서일지 몰라도, 대부분 감당하지 못할 큰 고통을 느낀 인간은 죽는다. 그것이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사고든 원인은 다양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목적이 이 세상을 체험하기 위함이라는 전제 하에 잔잔하게 주어지는 고통이 아닌 단시간의 너무 큰 고통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개인마다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크기는 차이가 있겠지만, 인간이라는 물질적인 조건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래도 공유할 수 있는 범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노자 3장의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성인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아래와 같다. 마음을 비우게 하고, 배를 부르게 하며, 허영 된 뜻을 약하게 하고, 몸을 튼튼하게 해 준다.


마음은 비우게 하되 배를 부르게 하고 몸은 튼튼하게 한다. 배가 고프면 고통이고, 몸이 아프면 그 또한 큰 고통이다. 하여 도덕경에서도 이러한 측면을 기본으로 강조하지 않았나 싶다.


이 부분을 일상에 적용해 본다. 필자는 다행히도 의사다. 하여 마음이 갑자기 너무 아픈 사람들에게는 약도 써줄 수 있고,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정신과 방문의 진입장벽을 낮추게 하는 사명을 글로 해야 한다. 그리하여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경감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나아가서는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돈이 쓸데없이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의료 보험이 국민들의 건강을 효율적으로 증진시켜주는 쪽으로 쓰이게 하고 허투루 쓰이는 곳이 없는지 감시하는 일 또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는 인생의 말기 죽음의 때에 불치병으로 너무 큰 고통을 받는 환자들의 고통을 천천히 받도록 경감시켜주는 의사도 하고 싶다.

아울러 투자자로서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쪽이 식품, 에너지, 의료 쪽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그쪽으로 투자의 맥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다. 배고프고 춥고 병들지 않을 수 있는 기업들을 발굴해 투자하는 것이 이치에도 맞을 것이다.


당신 또한 너무 큰 삶의 고통을 줄이는 것에 있어서 어떤 부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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