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죽음, 죄 - 끝을 준비하는 방법

유서 쓰기

by 닥터 온실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온 적이 있다. 꿈에서 내가 모교 병원에 있는데 할머니가 변에 이상한 것이 나왔다고 해서 검사도 할 겸 입원을 했다. 그리고 결과를 확인하려고 응급실에서 차트를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암이 복막까지 전이되어서 더 이상 해 드릴 것이 없다고 교수님들이 말씀하셨다. (실제로도 할머니는 말기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선 할머니가 나왔는데, 할머니는 갖은 수술을 하셨는지 몸이 상반신만 겨우 남은 상태였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이지만 의식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남아있는 두 손을 잡고 응급실에서 울었다. 그리고 즐거웠다고, 즐거웠다고 연신 말했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이 즐거웠었다고.


세상 떠나갈 때 우리는 그 무엇도 가져가지 못하지만 즐거웠던 기억과 그것을 같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과의 마지막 시간, 그것만큼은 누리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와 나는 그런 시간이 없었다. 죽음은 때로는 이번 꿈처럼 급작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꿈이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그때 못했던 작별인사를 대신하게 해 준 것은 아닐까?

얼마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어도 나는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도 보지 못하고 고통만 받으시면서 힘겹게 계시던 터라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장례식 내내 슬픈 기색 없이 할머니를 조잘거리면서 추억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슬픔이 한 번에 터져 나오기에는 너무 커서 방어기제를 썼던지도 모르겠다. 나의 양육자였고, 나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의 죽음이었기에.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것은 설사 혈육이 아닐지라도 매우 소중한 것이다. 또한 유년기의 시간이라 함은 그 밀도에 있어서 가장 짙기 때문에 그 시간을 함께한 기억은 가져갈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같은 기억이다.

세상 사람들은 아등바등 살아간다. 무엇인가 보이는 것을 좇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 이 삶 자체를 누군가와 함께하는 기억,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 그것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이 삶이 존재하는 의미라 하겠다.




필자는 군의관으로 근무하게 된 지 1년 만에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출퇴근 길에 바다를 보며 드라이브할 수 있는 곳이어서 위안이 되었다. 이사를 위해 지난 1년간 생활하면서 이것저것 쌓아놓은 나의 짐들을 사무실에서 정리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삶도 결국 이처럼 예상치 못하게 가는 것이 아닐까?


나의 상황은 다행히 며칠 동안 이사 준비기간이 있어서 짐을 정리할 시간이 있었다. 우리 삶에 비유하자면 말기암 선고를 받고 남은 생애를 정리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경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당장 내일 이사 가야 한다면, 그 경우는 준비도 없이 허둥지둥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남겨진 짐이 많다면 아쉬움이 클 것이다. 남겨진 것에 미련이 남아 떠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갑작스러운 건강의 악화로 삶을 떠나야 할 때, 남겨진 것이 많다면 삶에 대한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만약 죽음이 끝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사후 세계가 있다면, 우리는 남겨진 것들에 대해 죽어서도 편히 죽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떠남을 위해 우리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수록 정리할 것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비단 이사처럼 재물에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 인간관계, 살면서 지어왔던 많은 죄들…. 그런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정리하자. 당장 내일 떠나는 것이 우스울지 모른다. 하지만, 갑작스레 사무실 이사를 하다 보니 사람 일이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조금씩 정리한다면 언제 떠나도 괜찮은 삶이 될 것이다.



나는 코로나 백신 접종을 받으면서 유서를 마지막으로 갱신했다. 유서를 써놓고 보니, 아직도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번뇌로 가득 차 있었다. 유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과대학 새내기 무렵 전공 필수과목 중에는 '사망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과목명부터 괴랄한 이 과목의 담당 교수님은 꽤 젊었는데도 성격이 엄하고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것 같은 분이었고, 당시 철없던 예과생 나부랭이었던 나는 과목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수박 겉핥기식으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였다.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사명이 생긴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잘 듣고 진정성 있게 수업과 과제에 임할 수 있었을 텐데, 철없는 그 시절이 아쉬울 뿐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을 처음 접한 것도 사망학 시간이었고, 이키루라는 영화를 처음 본 것도 사망학 과제 때문이었다.

이렇게 좋은 요소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유서 쓰기 과제였다. 이 과제는 과목명만큼이나 우리를 당황시켰던 과제이기도 하다. 파릇파릇한 대학 신입생에게 유서를 쓰고 공증(문서의 효력을 법적으로 유효화하는 것으로 법무소 가서 돈 내면 해준다)까지 받아오라니... 당시 별로 쓸 말도 없던 나는 대충 작성해서 단체로 공증을 받아서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이것이야말로 지금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물욕을 잠재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반야심경에는 '색즉시공'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말인즉슨 물질적인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인데, 우리는 어쨌건 사는 동안 물질에 귀속되기 때문에 물질적인 욕심이 끊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 관해 고려한다면, 그때 비로소 색즉시공의 '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즉, 죽으면 물질이 무슨 소용인가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어리석기 때문에 살면서 이걸 다시 잊고 다시 '색'의 세계로 치우쳐지고, 물욕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유서를 쓴다면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고려하게 될 것이고, 유서에 쓰인 물질들의 목록을 보고 그것이 다 부질없음을 매년 갱신하면서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서 쓰기는 물질적 욕심을 없애주는 것 외에도 부가적인 장점이 있다. 죽음의 순간에 대해 떠올리게 해 주면서 주변에 물질보다 소중한 것들, 소중한 인연들, 자연, 나를 둘러싼 감사한 것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잊고 있던 인연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얽혀 있던 인연에게 그것을 뒤돌아보고 풀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반면 이처럼 철학적으로 좋은 기능이 많은 유서 쓰기지만,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는 좋지 못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유서를 쓰면서 실제 죽음에 관한 생각을 하거나, 수단이나 방법을 고려해 본다면 주변 사람이나 정신과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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