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죽음과 죄 - 죽기 전에 쌓인 것 풀기

죽기 전에 마음속에 맺힌 것이 없기를 기도한다.

by 닥터 온실


죽음에 대해서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죽으면 다 끝이야~ 혹은, 죽으면 천국가 or 지옥가. 아주 단순한 대답들이다.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은 편할지 모르겠다.


죽음은 삶과 연관된 개념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개념은 삶의 연장선상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죽음은 결국 전체로의 회귀이다. 삶에서 경험할 것을 다 경험한 개체라면 죽음의 과정이 순조롭다. 다시 쉽게 전체로 통합된다. 육체와 정신 모두 다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개체라면 어떨까?


우리나라에는 한이 맺힌다는 개념이 있다. 죽어서도 한이 안 풀려서, 저승에 가지 못한다고 한다. 경험할 것을 다 경험하지 못한 객체의 죽음이 이와 같다.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 전체와 결합되었을지언정, 정신은 그렇지 못하다. 정신은 체험하지 못한 경험, 해결하지 못한 감정과 한을 가지고 끊임없이 아쉬워한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옥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여기서 자살에 대한 대답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자살하면 다 끝날까요? 당연히 아니다. 더 고통스럽다. 차라리 육신이 있어야 경험도 하고 그 과정에서 쌓인 감정도 풀고 갈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뭐 해결되지 못한 감정과 경험의 고통이 지옥에서 표현된 것처럼 칼로 찌르고 기름에 튀기고 그 정도이겠냐만은, 집단 무의식에 의해 표현된 지옥의 모습이 다 비슷한 거 봐서는 상당히 셀 거 같긴 하다.


우리의 정신은 감정이 해소될 때까지 비슷한 체험을 지속하면서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해소하기를 되풀이한다. 예를 들어 만약 그것이 재물에 대한 집착이라면 부유해졌다가 망하는 체험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체험이 옛날 동양에서는 '지옥'의 개념으로 해석되지 않았나 싶다. 생전의 업을 지속적으로 체험하며 그것을 해소할 때까지 끊임없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살을 한다면 그 사람의 핵심 감정이 온전할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이 죽어서도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 사람의 영은 죽어서도 온전한 안식을 얻지 못하고, 풀리지 못한 감정을 계속 경험한다.

안 좋은 감정의 체험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고통을 지속적으로 느껴야 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지옥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동서양의 지옥 개념처럼 누군가가 고통을 주는 형태는 아닐 수 있다. 그 고통은 오롯이 감정을 체험하며 내면에서 나오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듣다 보면, 죽을 정도의 고통을 꼭 본인이 잘못해서 느끼는 경우가 아닌 경우도 많다. 그런 사람을 누가 판단해서 지옥으로 보내겠는가? 다만 그 감정의 고통은 영이 존재한다면 죽어서도 실재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오롯이 느끼는 것도 개개의 영의 몫이긴 할 것이다.


물론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힘들다고 해서 자살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잠깐의 도피일 뿐, 자살을 할 정도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지옥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살아생전 꽁긴 일들을 먼저 풀어봐야 한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죽음을 대면할 일은 생명을 다루는 다른 과 의사에 비해 월등히 낮다. 하지만 그럼에도 환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바로 환자가 자살하는 경우다. 때문에 정신 의학에서는 자살을 정신과적 응급상황으로 규정하고 자살에 관한 이슈에 대해 철저하게 다루도록 배운다.


교과서에는 자살의 여러 가지 종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회적 자살,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등등. 사회적 자살은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개인의 자살을 강요받는 것이며, 이기적 자살은 환자의 개인 정신병리에 의해 죽음을 겪는다는 분류이다. 교과서에서는 이런 여러 자살의 종류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만, 나의 철학은 다소 상이하다.


나는 자살은 크게 두 가지 범위로 나뉜다고 보고 있다. 아니 자살보다 더 큰 범주인 죽음 또한 그렇게 나뉠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살아생전 얽힌 것 없이 죽는 것과, 마음속에 앙금이 남는 채로 죽는 것이다. 보통은 일반적 죽음보다 자살의 경우 마음속의 앙금이 남은 채로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단 자살을 그 두 가지로 분류하여 다음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보자.


45세 A 씨는 최근 여러 가지 생각들로 인해 너무 힘들다. 일상생활을 해보려고 해도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난다고 생각하게 되어 죽음을 결심한다.


60세 B 씨는 최근 췌장암 말기 진단받았다. 그는 진단받았을 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변 정리와 마음 정리가 끝난 뒤 더한 고통이 엄습하기 전에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첫 번째 사례 같은 경우 누구라도 죽음을 말릴 것이다. 하지만 자살임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사례의 경우 윤리적 쟁점이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은 안된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B 씨의 입장을 이해하여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때문에 연명의료, 의사 조력자살 등 여러 가지 이슈가 생성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두 번째 사례 같은 경우 또한 자살에 대해서는 엄격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불필요한 연명의료 중지나 의사 조력자살에 대해 허용적인 입장을 취한다. 우리나라의 트렌드도 앞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죽기 전에 마음속 앙금을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죽음을 앞두게 된 것을 알게 된 순간에는 더더욱 더 말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인구 감소세가 증가세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가 있었다. 죽을 사람이 태어날 사람보다 많은 시대, 앞으로 죽음에 관한 문제는 갈수록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수많은 죽음을 맞이할 때 정신과 의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부디 죽음에 앞둔 사람들의 앙금을 풀어주는데 정신과 의사가 일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영화나 책, 웹툰 등 매체를 통해 내세에 대해 자주 접한다. 그러한 매체에서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은 저승에서 심판을 통해 지옥으로 갈지, 천국(천계)으로 걸지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죄를 심판하는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과연 어떤 것이 죄일까? 보통 매체에서는 누가 봐도 죄가 되는 상황을 제시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는 어떨까?


놓아두었던 물건이 훗날 흉기가 되어 사람을 죽인 경우. 놓아둔 사람은 그 사람이 죽은 지 조차 모른다.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살인을 한 경우이다. 대부분은 무죄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음 경우를 보자.

어떤 사람을 죽였는데, 그 사람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인 살인마였다. 이 경우 살인마를 죽인 사람은 죄인가?


이런 경우 도덕적인 관점에 따라 유죄인지 무죄인지 갑론을박이 많을 것이다. 또 어떤 이의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도 죄의 유무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찮은 벌레를 죽인 사람일지라도 벌레의 관점에서는 살인자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세에서 심판의 여부는 무엇에 따라 내려지는 것일까? 지옥에서의 처벌은 타인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번뇌에 의해 본인에게서 나온다고 하였다. 즉 어떤 죄를 짓고,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지에 따라 번뇌가 오고, 또 그것으로 인해 형벌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지은 지능이 모자란 생명체나 미물의 경우 그것에 따라 사후에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번뇌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모든 자극들을 낱낱이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죄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는 사후에 무의식에 기록된 죄의 목록을 받아 들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사후에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그 죄가 우리가 전혀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면 그 죄에 대한 번뇌 역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지옥에 갈 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답은 '그렇다'이다.

사실 인간의 기준으로 죄의 유무를 기술하고 있긴 하지만 사후에 그것이 인간의 기준대로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령 인간을 위해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가 훗날 자연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어 사후에 심판받았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죄의 기준조차 모호하게 잡을 필요는 없다. 인간이라는 형태를 공유하는 우리이기에 집단 무의식을 통해 죄의 모습은 어느 정도 공유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생각은 본인이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저지른 죄는 사후의 행방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이것을 바꿔서 생각해 본다면,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어떤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큰 해악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도를 닦는 옛 선인들이 세상과 연을 끊고 산속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이 닿지 않으면 혹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것이 초래할 결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죄와 내세의 심판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죄와 심판 또한 나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에, 나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 올바른 길을 걷는다면 추후 심판의 자리에서 유리한 고지를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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