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신과 종교 - 신과 종교의 의의

신과 종교가 실재하는 이유

by 닥터 온실
신은 존재하는가?


이 주제는 지금껏 여러 철학자들의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신'이라는 단어의 정의조차 모호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하나님을, 누군가는 알라신을, 또 누군가는 조상신을 신이라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은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또 성경에서는 전지전능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이라는 단어가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신의 존재 여부를 따지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된다. 신이란 전지전능한 것, 보이지는 않아도 우리를 창조한 것, 세계를 창조한 것.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태어났을 때, 아기는 처음에는 세상과 자신을 구분 짓지 못한다. 내가 아픈 것은 세상이 아픈 것이고, 내가 배고픈 것은 세상이 배고픈 것이다. 어렸을 때 아기는 역시 세상과 자기 자신을 구분 짓지 못한다. 자아가 모호하다. 그래서 자신을 지칭할 때도 3인칭을 쓴다. 자신이 한 일도 'ㅇㅇ이가 그랬어요.'라고 한다. 자신이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커가면서 자신과 세상을 구분 짓기 시작한다. '나'를 관찰자로, 관찰 대상을 '세상'으로 나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죽어서 다시 세상과 하나가 된다.

삶이란 이렇듯 세상과 나를 이원화시켜서 구분 지었다가, 다시금 합일화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이내믹한 프로세스이다. 세상을 나와 이원화 함으로써 우리는 기가 막힌 음식을 맛볼 수도, 어여쁜 이성과 연애를 할 수도, 장엄한 경관을 보고 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금 상실하는 경험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보는 세계를 우리 자신과 유리시킨 것은 '나' 자신이다. 결국 세상을 만들어낸 것은 '나' 자신인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나의 무의식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적인 존재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미에서 신의 존재 의의는 있다. '신'또한 세상의 일부라고 한다면 우리 다수가 믿을 때 신은 존재하고 역사하게 된다. 현재도 종교로써 존재하며 많은 신도들을 거느린 신들은 신도들의 믿음에 의해 존재한다. 여러 신도들의 집단 무의식이 그러한 신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 행함이 있다.

신의 다른 존재적 의의는 인간 의식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루고자 할 때 우리 자신의 나약한 의지에 의뢰하고 싶어 하기보다는, 전지전능한 신적인 존재에 의지하고 싶어 한다. 쉽게 의탁할 수 있는 일종의 객체가 생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현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제3의 가공할 존재인 신에게 의뢰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찾고 기도의 대상이 확보된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다룬 신을 찬양하는 종교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전체로 돌아갈 것을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전체를 표방한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개념을 창조해서 우리가 돌아갈 곳이라고 위안 삼는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등장하는 절대자의 존재는 곧 하나 된 우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나의 전부에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 된 내가 진실로 바라는 것이라면 이루어질 것이고 말이다.


종교의 존재 의의는, 어쨌건 '전체의 나'를 신이라는 존재로 객체화함으로써 믿을만한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었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더 의지하기도 쉽고 마음의 위안이 된다. 어쨌건 약해 보이는 '개체로서의 나'와는 구분되어 보이는 다른 존재니깐. 근데 그게 아니다. 그게 전체일 때의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많은 이에게 쉽게 위안을 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 또한 여러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없다고도 볼 수 없다. 그저 각자의 종교를 존중하고 파괴적이고 착취적인 종교만 거르면 되겠다.

사이비 교주들은 본인의 육신 또한 신이라고 한다. 거기서 이미 오류가 발생한다. 그들 또한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으니까. 신은 육신은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 너머에 있는 나 자체가 신이다.


우리 인생을 게임에 비유해 보자. 우리는 육신이라는 몸을 가지고 플레이한다. 그런데 이 육신이 오감도 느낄 수 있고 생각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육신을 나 자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나 자체는 나의 생각도 육신도 아니다. 나 자체는 모든 것을 초월한다. 그 너머에 있기에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잠시 생각을 멈추고 명상을 하며 바람과 새소리를 듣다 보면 내 몸과 정신 너머에 있는 나의 존재를 설핏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정신의학에서 표현하는 무의식일 수 있겠다.


여러 종교는 신은 보이지 않고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 기독교, 불교도 그러하고 옛 동학에서도 인내천 곧 사람이 하늘이라고 했다. 그것은 모두 이런 개념을 사람들이 알아듣기 편하도록 표현한 것이다.

종교는 죄를 지으면 신이 벌을 준다고 한다. 맞다. 신이 벌을 준다. 육신 너머에 있는 내가 곧 신이기 때문에 내가 벌을 준다. 나는 잘못한 사실에 대해 번뇌한다. 죽어서도 번민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내리는 벌을 받으며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내가 육신으로 지은 죄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에 대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이 죽어서도 이어지면 지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에는 보이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심벌을 만든다. 그 안에는 진리가 깃들어 있긴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우상화되고 사이비화 되어 안 좋은 쪽으로 가기도 한다. 나는 대부분의 종교를 좋게 보고 있다. 종교는 신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죄짓기 쉬운 육신과 정신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한다.

keyword
이전 15화6. 사랑 - 사랑하는데 헤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