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차이가 행복을 만든다.
꿈을 꾸었다. 누군가 나를 가둔 꿈이었다. 탈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누가 들어와서 나를 막 만졌다. 나는 그만하라고 하면서 몸부림치다가 깼다. 둘째가 나의 배를 더듬고 있었다. 나는 둘째와 첫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꿈에서의 상황과 현실에서의 상황은 닮아 있었지만, 그에 대한 느낌은 천지차이였다.
마치 꿈과 같이 육아는 운신의 폭을 좁게 한다. 어디든 언제나 갈 수 있었던 내가, 일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5년째 육아에 때려 박고 있다. 육아에 온전히 할애하는 시간을 계산해 봤더니 일평균 7시간이 나왔다. 육아를 일처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제약에도 육아는 행복하다. 사실 시간을 그렇게 많이 확보해도 무엇을 할 것인가? 일을 더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겠지? 하지만 지금 하는 하루에 2시간 정도의 취미생활로 나는 충분하다. 일을 더 해서 돈을 많이 버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돈을 더 벌어서 무엇하는가? 결국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버는 것 아닌가? 또한 지금 버는 것으로 지금과 미래의 행복을 그리기에 충분한 까닭도 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나를 집에 감금한다. 퇴근하면 따뜻한 집에 콕 들어박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의 온기를 느끼고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온전히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아이들과 개그 코드를 맞추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그런 시간을 쌓아간다. 추억이 쌓인다. 아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육아를 하면서 틈틈이 설거지며 빨래며 집안 정리, 쓰레기 버리기 등을 한다. 이런 일거리도 있어서 참 감사하다. 없으면 내 삶은 얼매나 심심했을까? 아이들이 만들어주는 일거리가 참 감사하다. 내 삶은 가족들이 만들어주는 풍요가 항상 함께한다. 일거리가 없으면 심심해하고 허무해하며 또 다른 할 거리를 찾아 나설 나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감금과 잡일거리, 육아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것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조금만 다르게 보면 행복의 족쇄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