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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an 07. 2018

4-1. <첫숨> 뒷담화

배명훈의 <첫숨>과 시스템에 대하여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느빌사람들의 열띤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겠습니다.

* 발제문과 녹취록은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1. 그들이 믿었던 가치는 무엇인가


지난 시간까지 느빌의 책방에서는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텍스트들을 선택해서 읽었다. <제5도살장>과 영화 <그을린 사랑>, 그리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까지. 우리는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개인의 생존과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서 사유해볼 수 있었다. 


제5도살장에서 맥락 없는 죽음들을 눈 앞에서 목도하고 '뭐 그런 거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상황을 보았으며 까맣게 그을린 사랑에서는 전쟁 중의 개인의 선택과 그에 얽힌 비극적인 삶을 추적했다. 그리고 200여 명의 목소리를 통해 수많은 목소리와 삶을 억압하고자 했던 전쟁을 들었다.


다양한 목소리들 속에는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전했고 그것을 영광이라고 믿었던 어떤 목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행위가 어떤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도 알 수 없었던 <제5도살장>이나, 굳건한 신념으로 반대편 가치를 수호하는 이에게 망설임 없이 총구를 겨누었던 <그을린 사랑>의 상황과도 비슷했다. 


이들이 수호했던 거대한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출처는? 


전쟁에 얽힌 개인들의 이야기를 추적해보자 '시스템'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그렇게 키워드를 옮기고, 아예 '우주'라는 새로운 배경을 삼는 소설 <첫숨>을 택하게 되었다. SF적 배경을 그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의 시스템과 작동 원리, 그리고 개개인의 시스템 속 행동들을 더욱 부각하고 구체적으로 그릴 것이기에. 우리는 개인과 시스템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면서 배명훈의 장편소설 <첫숨>을 읽어 보았다. 


첫숨(2015)


*이번 모임엔 학곰박루저다희이주오요밍, 동석 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이전 게시글인 '발제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 링크 : <첫숨> 파워 발제문


2. 녹취록 - <첫숨>


1. 시작 - 아쉬움에 대하여


학곰 - 개인적 후기로 먼저 시작하면 모임이 한주 밀린다고 책을 다 읽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읽는 시간은 똑같더라고요.(웃음) 발제는 저번에 읽은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이하 전쟁~)> 맥락에 맞춰 썼습니다. 간략히 요약하면, <전쟁~>은 전쟁에 참전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르포인데,  그중 많은 여성들이 자원입대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그 내용과 <첫숨>을 엮어보았습니다.  


이주 - 첫숨을 다 읽고 나서의 감상이 궁금해요.


학곰 -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단편이 더 재밌었어요. 물론 개인 취향일 수 있지만, 연재소설로 간 케이스라서 순간순간 소설의 호흡이 끊긴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간에 약간 내용이 바뀌진 않았겠지만, 사람들이 계속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러브라인도 끼워 넣은 것 같고...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를 통째로 낼 때랑 차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읽었지만, 과학 부분은 잘 몰라서 패스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과학자문 동석님을 모셨습니다.(웃음) 다른 분들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해요.


박루저 - 일단 발제문에 대해서 먼저 코멘트하자면, 이 전 책과의 맥락을 고려해서 주제를 연결한 것은 좋았어요. 근데 제가 소설을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없게 읽어서 그런지, 발제문 자체가 소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끔 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첫숨>의 가장 큰 문제는, 초반에 이리저리 던진 떡밥들을 거의 회수하지 못하는 것과, 인물 관계나 각각의 갈등들이 작가가 열심히 설명하는 만큼 독자가 절대로 선명히 그려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발제에 이 부분에 대한 정리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전체 서사나 인물관계도 같은 것을 매우 명료하게 해주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어요. 근데 사실 제가 이 책 발제를 맡았다면, 정말 하기 싫었을 거 같아요 크크. 그런 점에서 분명히 기대 이상의 발제라고는 생각합니다.


다희 - 저도 이 작품이 집중해서 200페이지까지 읽었을 땐 재밌었는데, 뒤로 갈수록 조금 아쉬웠던 것 같아요. 주인공이 음모를 풀어가는 게 긴박한 소재인데도 너무 루즈하고, 과제를 해결하듯이 하는 것이 아쉬웠고요. 인물들의 성격도 잘 읽히지 않기도 해서 이입이 어려웠어요.


동석 - 일주일 동안 빠르게 읽었는데 내용이 잘 안 들어왔어요.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혼잣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너무 많은 설명. 장면이나 대화로 표현하면 될 것을, 구구절절 풀려는 느낌에 재미가 반감되었죠. ('사실 ~였다.' '그러나 <누구>는 이렇게 생각했다.'와 같은 문장들) 박루저가 말한 대로 소설에서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기도 했고요. 장편소설이면 뭔가 큰 틀이나 주제가 있으며 주변 얼개가  형성되어야 스토리 파악이 좋은데, 주인공이 무슨 미션이 있는지 한묵희도 뭔지, 잘 연결이 안 됐어요. 사회 개인의 문제로 연결이 해보긴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스토리를 이해할는지는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이주 - 저도 비슷한데요. 고래 그림 얘기 나올 때는 매우 흥미롭게 읽다가 뒤에는 또 루즈해졌어요. 앞에서 지적해준 것처럼, 인물에 대한 서술도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쉬웠죠. 뒤에 갑자기 아이의 발견 이후로 급 마무리되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는지 잘 이해가 안 되었어요. 개인과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로 선택한 것이기에 발제문은 좋았어요. 개인과 시스템을 생각하며 읽으려고 했지만 막 와 닿지는 않았다.   


박루저 - 사실 애초에 집중을 할 수가 없지 않나요? 설정들이나 갈등구조가 처음부터 짜여져 있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한 이야기들을 넣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연재소설인 걸 모르고 봤는데, 아마 연재소설이라 그런 게 아닐까 하네요. 한묵희는 왜 일을 받아들이지? 그럼 반지업의 진짜 목적은? 송영의 목적은? 결말은 뭐지? 이런 질문들로 시작하는데, 이 질문들에 대답이 전혀 되지 않은 채 끝나요. 으 너무 욕만 하는 거 같은데?(크크)


동석- 보통 서사를 읽을 때 등장인물들의 배경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해가 쉬운데. 배경이 판타지스러우니 앞쪽에서 이러한 배경이 설명이 없으니 이해가 어려운 거죠.(나중에 얼버무리는 식) 발제를 할 때 개인과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고 했는데 그러려면 구체적 배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송영은 화성에서 온 지배계층인데 그 사람이 왜 첫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방인인 이들에게 무엇을 시키는 것인지 이들을 고용한 이유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인지, 아이를 살리기 위한 것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았어요. 체제를 위한 거였는지 뭐였는지 잘 안 와 닿았고요. 캐릭터 설정은 달에서 왔고, 지구의 이방인이고 이것은 알겠지만 우주로 굳이 안 옮겨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우주 배경인데 모아보니 한국어를 쓴다. 계급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한국어문화권으로 연대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학곰 - 좋지 않은 평이 많아서 굳이 발제자로서 변을 하자면, 책을 읽기 전에 '개인과 시스템'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읽다 보니 처음 표지를 보고 생각하던 내용과 다르더라고요. 이미 읽은 책이 아니라면 내용을 모르기에 처음 구상한 것과 완벽하게 아다리가 맞지 않을 수밖에 없지요.


2. 시스템과 개인


학곰 - 그런 것을 감안하고 <첫숨>을 개인과 시스템이라는 주제와 연결을 시켜볼게요. 첫숨이라는 공간은 콜로니가 만들어진 이유부터 제대로 나와있지 않습니다. 돈이 많은 화성인들이 지배계층으로 있다는 것 말고는요. 한 예로 드레스코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 정보를 소수의 화성인만 알 수 있어서, 그들만 알 수 있는 문화 같은 것을 구축해서 공고히 하는 셈이죠. 교묘해서 일반 거주민들은 인지조차 못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셈입니다.


우리가 익숙한 서사들은  피지배층의 인물이 유리천장 같은 시스템을 극복하고 지배층이 되거나 혹은  시스템을 전복하는 이야기, 그렇지 않으면 한계에 부닥쳐서 비참하게 끝나거나 아래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이야기들이었지요. 지배층인 송영이 이방인과 손을 잡는다는 설정 자체가 개인과 시스템의 관계를 다루는 새로운 시도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삼면고래가 등장하면서 이런 해석이 어그러졌지만요. 


어쩌면 인간의 감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 끌어 오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 아닐까 생각했어요. 시스템과 개인이란 얘기를 하면 <1984>처럼 거대한 시스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개인의 이야기가 주요 서사라면 <첫숨>은 한 번 더 꼬아서 다르게 읽히라고 삼면고래를 설정한 것이 아닐까요?


박루저 - 개인적으로 삼면고래 설정은 최악인 거 같아요(웃음). 한 시스템을 지배하는 권력자들이 있고, 그 권력에 흠을 내려는 이방인들이 등장하고, 또 더 외계의 이방인(삼면고래)이 등장하면서 시스템은 하나로 묶이게 되는, 매우 흔하디 흔한 후진 서사구조예요. 기존에 거의 몇백 페이지를 할애해서 불필요할 정도로 길게 끌어왔던 복잡한 서사를, 그냥 무책임하게 삼면고래 하나로 퉁치는 느낌이었어요. 딱히 우주공간이라서 재밌지도 않아서, SF라는 장르로서도 매력을 못 느꼈습니다. 


동석 - 그러한 설정에서는 <엘리시움>이 생각났어요. 첫숨이라는 공간이 엘리시움에서 고위층의 파라다이스같이 느껴지고요. 하지만 온갖 사람이 모였다는 것에서는 다른 점인 것 같아요.


3. 좋은 SF소설이란?


학곰 - 연재소설의 단점일까요. 설명이 아쉬웠던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처음엔 손자 반지엽 나모린 한묵희 중 손자며느리로 누굴 간택할 것인가로 서사를 시작했지만 이것으로 이끌어가려 했으면 더 떡밥이 있어야 했는데. 설명이 부족했어요.


언젠가 Z소설가의 강연에서 들은 SF 창작 이야기를 말씀드릴게요. Z씨는 SF는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하기에 힘들다고 말했었어요. 예를 들어  이야기 배경이 지구인가 우주인가, 종족은 단일 종족이 사는가 다양한 종이 사는가, 언어는 서로 통하는가, 체제는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 시간은 언제여야 하고,  과학 기술은 어느 정도까지 발전되어 있는가 등등 모든 것을 다 계획해야 하고 아귀를 맞춰야 해서 참 쓰기 어렵다고 한 기억이 나네요.


박루저 - 네 맞아요. 그런 점에서 사실 수많은 진짜 탄탄한 명작 SF들은 아직 SF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도 생각나 아쉬웠어요.  


학곰 - 음... 이런식의 서사와 전개 방식을 진격의 거인에서 본 적이 있어요. 약간 스포있는데 괜찮죠? 처음엔 성이 있고 거인들이 오고 인간이 거인들과 싸우는 내용인 줄만 알았는데, (양손으로 원을 만들어 보이며) 딱 요만큼의 시야로 세상을 보던 사람들이 더 큰 세계가 있고, 알고 보니 더 큰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는 구조였죠. 


마찬가지로 <첫숨>도 한 보안담당자의 좁은 시에서 시작해서 개인이 수 있는 범위에서 그 범위약간씩 넓혀가는 것. 결국에는 삼면고래라는 지배자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에 닿기까지 갑갑하게 나아가는 거죠.  때문에 설명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오히려 그 효과를 노렸을 수도 있고요.


내가 에디터 동석님을 알더라도 그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요. 시스템 안의 개인은 볼 수 있는 것만큼만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보안담당자라는 위치에서  볼 수 있는 한계까지 그려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관 설명이 부족한 건 이 책의 특성으로 읽을 수도 있죠.


박루저 - SF나 판타지 소설의 큰 매력 중 하나는 촘촘히 잘 짜인 소설 속 세계관을 하나씩 접하게 되는 거잖아요. 전 <첫숨> 전체에서도 화성인들의 드레스코드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그런 깨알 세계관 에피소드가 잘 등장하지 않아서 아쉬워요. 


학곰 - 오히려 이런 전개 방식은 역전재판 같은 증거를 모아 사건의 전말을 알아가는 이야기에 맞는 게 아닐까요.


이주 - 마음에 드는 떡밥은 되게 많고 좋았는데, 그것이 회수되지 못하고 삼면고래로 끝나는 것이 아쉽더라고요. 오히려 떡밥들을 잘 살리고 구체적으로 풀었다면 더욱 흥미로웠을 것 같은데. 


다희 - 한편으로는 한묵희 캐릭터가 조금 소모적으로 쓰이고, 마지막에 너무 아쉽게 끝났다고 생각해요. 인물의 성격도 희미하고, 행동의 목적도 모르겠더라고요. 소설 속에서 어떤 대화나 행동들의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던 것이 완전한 몰입을 방해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달의 걸음을 버리고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개인이 시스템속에 들어서는 모습을 자연스럽고 씁쓸하게 잘 보여준 것 같다고 생각해요.


소설 속에서 내내 무용이 나오기도 하고,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며 읽다보니 저는 뜬금없지만 <빌리 엘리어트>가 떠올랐어요. 최근에 뮤지컬을 보았는데 개인의 꿈인 예술과 노동 계급의 파업과 같은 큰 가치가 균열하고 대립하는 모습들이 잘 표현된 서사라고 생각했어요. 소년의 성장 서사라는 점에서 다음 텍스트인 <아몬드>와도 이어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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