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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an 14. 2018

5. 당연한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손원평 <아몬드>를 읽고

*느빌의 책방에서는 "전쟁"이라는 키워드에 이어 "시스템-개인"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몬드>은 앞으로 이어질 "시스템-개인" 3부작 중 2번째 텍스트입니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은 꼭 뒤로 가기를!





1. 당연한 게 뭔데요? 


지난 시간, 우리는 배명훈 작가의 <첫숨>을 통해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시스템 바깥에 존재하던 사람과 시스템 내부에 존재하는 사람 각각이 시스템을 바라보는 감각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점. 우리가 매 순간 믿고 따르는 시스템이 외부의 누군가에게는 이질감이 들고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작품은 우리가 평소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대해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볼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첫숨>이 대답해주지 못하는 게 있었다.

그렇다면 한 시스템 내의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선? 한 시스템 안에 속하면서도 각자 다른 감각과 이질감을 수 없이 확인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들은?


화가 났을 때는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내고, 슬플 때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기쁜 소식에는 활짝 웃으며 좋아라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말로써 그리고 행동으로써 그 사랑을 표현하고. 한 사회의 보편성을 얘기할 때 흔히들 이러한 감정에 대해서 말하곤 하지만, 어쩌면 이 감정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매우 다른 것이라면? 


이 물음들은 끝없이 이어졌고, 우리는 여기에 대한 소설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당연하기에 평범하다 여기는 질서에 벗어나 있는 주인공들을 찾아야 했다.

과연 우리가 평범하다 정의 내리는 것들은 진정 평범한 것인가?   





2. 아몬드의 스토리 


그렇게 찾은 텍스트는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이다. <아몬드>는 태어나면서부터 ‘감정’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하는 한 아이, 윤재가 감정에 지극히 충실한 같은 반 친구 곤이를 사귀게 되며 기존의 감정불능증을 고쳐나가는 과정을 담은 따뜻한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주인공 윤재는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편도체(아미그달라)가 작아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불능증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윤재의 엄마는 윤재에게 기뻐할 상황, 슬퍼할 상황을 분류하여 설명해주고 상황 별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훈련시켰다. 또한, 인간이 원초적으로 지니고 태어났어야 할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가르쳐주며 화상을 입는 위험한 상황, 뾰족한 것에 찔리는 상황 등등에서 몸을 피하고 보호해야 할 대처방법을 학습시켰다. 엄마가 그토록 원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자 평범하다 여겨지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익혀나가는 것이다.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떨어지는 눈을 손바닥에 담아주며 그 위로 ‘눈’이라는 단어를 적어줬던 것처럼 상황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며 윤재에게 가르쳐주던 엄마는 할멈과 함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윤재의 눈앞에서 할멈은 죽음을, 엄마는 식물인간의 상태를 맞이한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와 할멈이 자신의 눈앞에서 비극을 맞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윤재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그들이 자신을 향해 도망가라고 외치고 저리 가라고 손짓하는 모습에 왜 그러는 것일지 의문을 가질 뿐이다.


자신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법, 그리고 감지하는 법을 가르쳐줄 엄마가 떠나고 혼자 남은 윤재는 친구들, 그리고 사회로부터 괴물이라 손가락질받으며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지 못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그 속에서 윤재가 마주치게 되는 운명의 인물이 있는데, 바로 윤이수()이다.


곤이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미아가 되어 가족의 사랑 없이 자란 아이였다.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삐뚤어진 채 자라난 곤이는 문제아로 낙인찍혀 윤재의 교실로 전학 오게 된다. 그곳에서 마주친 윤재라는 아이가 자신이 뜻하는 대로 반응하지 않자 계속해서 괴롭히는데, 반면 윤재는 곤이에게 욕을 들어도, 얼굴을 맞아도 기분 나쁜 줄 모르고 아픈 줄 모른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두 친구의 대결과 화합이 <아몬드>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된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3. ‘평범해지고 싶은 자’ 그리고 평범함을 거부하는 자의 충돌


<아몬드>의 주인공으로 손꼽을 수 있는 윤재와 곤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윤재는 우리가 보통이라 정의내리는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인물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느끼고 생각할 줄 아는 감정이 지배하는 시스템이 윤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보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인 것이다. 곤이 또한 윤재와 마찬가지로 ‘보통’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다. 엄마 아빠로 이루어진 가족공동체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곤이는 비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고 평가받는다.


두 평범치 않은 인물들이 그들에게 맞닥뜨려진 시스템에 반응하는 양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정불능증의 윤재가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에게 반응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배우고 익히는 모습 속에서 그가 스스로 시스템에 편입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달리, 곤이는 스스로가 시스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잃어버렸던 아들을 찾아 돌아온 아버지의 존재에게 무례하게 반응하는 장면에서도, 친구라면 으레 지켜져야 할 도덕적 질서에 반하며 폭행을 일삼는 장면에서도 곤이는 매 순간 시스템에 엇나가며 평범함을 거부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두 이방인의 존재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당연하지 못한 것이 과연 잘못되었다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를 돌이켜보게 만든다. 윤재를 통해 드러나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지 못하다는 점과 곤이를 통해 드러나는 시스템 속에서 도덕이라 불리는 것이 오로지 시스템 내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점.


우리는 평범하다 여겨지는 것을 마치 대단한 것인 양 추종하고 떠받든다. 그리하여 평범함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거나 비정상이라 정의 내리고는 한다. 하지만 평범하다, 보통이다, 정상이다 정의 내려진 모든 것들이 우리의 편견에서 기인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당장 같은 배 속에서 나온 피를 나눈 형제·자매조차 나와 지극히 다르지 않은가. 5천만 인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서도, 70억 인구가 살아가는 지구에서 ‘평범’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화되는 여러 질서들, 현상들에 대해서 우리는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당연한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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