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속 연애 이야기 -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당신과 결혼했어. 지금도 당신을 사랑해. 당신과의 결혼을 깨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리고 또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해.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전부야."
-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중에서
최근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선배 언니들에서부터 회사동료, 오랜시간 봐왔던 고향 친구까지... 계속되는 결혼 소식을 들으며 굉장히 축하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궁금증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상대방과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면 다양한 대답이 돌아온다. 정말로 운명을 느꼈다는 사람에서부터(딱 한 명 있었다) 서로 결혼할 나이가 되고 준비도 되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나, 더이상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아서 라는 답변도 있었다.
그들의 대답은 모두 한편으로는 공감이 되었지만 여전히 왜 하필 '그 사람'과 결혼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결혼'은 지금도 몹시 먼 이야기이다. 어느 누군가와(또는 어느 한 사람과) 평생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아직 스스로의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연애의 이별을 고하며, 문득 든 생각은 '아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은 없겠구나. 나는 결혼을 하면 안되겠구나.' 와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내 첫연인은 정말 다정했고 우린 꽤나 잘 맞아 크게 다툰적도 없었다. 먼저 좋아하며 따라다녔던 것도 나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이 만나보고 싶었다. 특별히 누군가를 깊이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누가 만나자고 들이댔던 것도 아니지만, 그냥 막연히 다른 사람과도 연애를 해보고 싶었고 주변의 남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남자친구가 없다면 더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고 사랑에도 빠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첫연애는 끝났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정확히 3년이었다.
서론이 몹시 길어졌으니, 얼른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소설은 덕훈이 운명처럼 인아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바르샤(스페인의 축구팀)를 좋아하고, 헌 책들을 좋아하며, 먼저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제껏 만나본 적 없던 최고의 여자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에게 찾아온 것은 최고의 불운이었으니, 그녀는 사랑에 빠지기에는 최악의 여자였다.
우선 인아는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한다. 종종 연락이 닫지 않고, 그랬다가하면 그냥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뿐이다. 차라리 완전히 속이고 바람을 피우면 좋으련만(세상의 많은 것들은 그냥 모르는 것이 약이기도 하다) 솔직하게 다른 남자와 잤다고 말하는 여자.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면 그 앞에서는 할말이 없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참는 수 밖에.
결국 덕훈은 인아의 그런 연애관까지도 인정해주고 그녀를 만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인아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고 그래서 결심한 것이 결혼이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또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어느 연애의 경험도 없던 시절 영화로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그냥 흥미롭게 보았었던 것 같다. 소설로 다시 이 이야기를 읽으며, 어쩌면 정말 이상적인 결혼 또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한 사람과 가정을 꾸려 평생을 살아가는 결혼 제도가 인류의 역사상에 자리잡은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쩌면 단 한 명의 사람과 산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 아닐까. 별로 사랑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같이 산다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믿더라도 오히려 나를 못 믿겠다. 지금의 마음은 확실하지만 이 마음이 영원하리라는 확신은 없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그저 정(?)으로만 살고 싶지는 않다. 우스갯소리로 결혼은 하고싶지만 이혼할 것 같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렇다고 평생 혼자 잘 살 자신은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결혼 이전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덕훈은 끝끝내 인아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의 가족은 두 번째 결혼으로 세명이 되고, 딸을 낳으며 네명이 된다. 그리고 이들은 호주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떠난다. 이처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작점은 사랑이며 결국 그 사랑이 상대방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들의 이후의 삶은 알 수 없고, 이러한 폴리아모리 가족이 반드시 이상적인 가족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대단할 수 밖에 없다. 덕훈은 인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인아의 사랑법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며, 인아 또한 덕훈과 만났기에 '결혼'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 속에 포함시켰다.
결혼을 앞둔 친구와 나눴던 대화중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 어떻게 그 사람이라는 확신을 느꼈냐는 질문에 친구는 처음엔 확신이 없었는데 상대방이 계속해서 확신을 심어주다보니 자기도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가끔 흔들릴 때면 같이 흔들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필요 없다며 이것이 정답이라며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 또는 가끔은 다른 방향을 바라보더라도 서로의 삶과 사랑의 방식을 이해해주며 끝까지 서로의 곁에 있어주는 사람 말이다. 검정치마의 명곡이 떠오른다.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거야.
- 검정치마 Antifreeze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