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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Mar 25. 2018

18-1. <쟝고 : 분노의 추적자> 뒷담화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 이 뒷담화는 바보들의 결탁에 이어 작성된 반격 키워드의 세 번째 텍스트입니다.



*이번 모임엔 학곰, 박루저, 다희, 동석, 해정, 최생, 연연 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이전 게시글인 '발제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 링크 :

빵야빵야

해정 : 반격이 주제인데 이전 작품들은 통쾌함이 부족했잖아요? 그래서 이번엔 호쾌한 액-숀 영화로 선정하였습니다. 복수를 하는 작품을 찾다가 아무래도 글로 된 소설보다는 영화가 더 통쾌한 맛이 날 것 같았어요.    




오락영화의 정치  


동석 : 블랙팬서와 흑인 커뮤니티 사이에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죠?  


해정 : 블랙팬서가 흑인 커뮤니티와 조응하여 행동을 촉발하는 걸 봤어요. 흑인들이 단체로 소비하는 모습이라던가. 백인들의 전유물인 장소에 흑인들이 모여서 블랙팬서에 열광하는 모습이라든지. 기존 마블 영화의 주인공 인종이 바뀌었을 뿐이고, 서사 역시 기존의 마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데 그 세계를 흑인이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열광하는 현상을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힘들이 '그 마블' 영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고요. 제 생각에 히어로 무비는 뭐랄까, 오락물이라 상대적으로 덜 정치적인 무엇으로 여겨지곤 하는데, 그것에 대한 현실의 반응을 보면 오락과 상업, 예술과 정치. 이런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거든요. 개인적으로 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사회와의 상호작용 때문인데, 이번 키워드인 반격을 통해 비슷한 주제를 지닌 쟝고랑 비교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예컨대 쟝고와 흑인 인물들, 블랙팬서와 흑인 관객의 관계처럼요.     


동석 : 정치를 떠나 관객이 열광하는 게 의미가 있나요?  


해정 : 마블 히어로 영화이니 상업적인 의도가 다분하다고 볼 수도 있고, 또 상업적으로 소비시키는 구조에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소비자들이 집단적으로 소비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요. 그리고, 그런 열광이 한데 모여 가시화될 때, 이게 자본주의적 논리인 건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주체가 되는 과정'을 담보로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고요.  


연연 : 문화 내의 정치성과 소비형태의 정치성의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흑인들의 관람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박루저 : 흑인의 입장에 대해 뚜렷하잖아요. 흑인들의 입장에 대해 악과 선을 분명히 나눈다는 점에서요. 흑인이라면 모두 동의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물론 목소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반면 마블은 자기 한에서 의견을 최대한 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장고와 흑인의 관계는 조금 다르지 않나요?   


해정 : 선으로 묘사된 주인공 집단의 목소리에 동조하기 때문에 열광한 다기보단 스크린을 흑인들이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선이든 악이든 입체적인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에 열광한 게 아닐까 싶어요. 쟝고라는 캐릭터 자체가 흑인 히어로인 셈이고 그 후에 일어날 사회적인 변화를 암시하는 단초 내지는 사건이지 않나요?  


동석 : 남북전쟁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죠? (남북전쟁을 2년 앞둔 1859년이 배경)  


해정 : 쟝고가 쏴 죽일 때 흑인이 백인을 쏴 죽이는 장면을 흑인들이 목도하잖아요? 남북전쟁 2년 전 역사적인 순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다희 : 영화의 형식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백인의 전유물이었던 서부 카우보이 영화의 주인공을 흑인으로 내세우는 것으로 변주한 것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해정 : 그리고 장고는 블랙팬서와 또 다르게 역사적 사실 속에서 재현해낸 거잖아요?   


박루저 : 저는 쟝고나 디카프리오보다 슐츠가 더 좋았어요. 쟝고는 어쨌든 백인이 애초에 목숨을 구한거고, 현실적으론 실패를 한 거지 않나요? 이때 현실적인 실패를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게 쟝고의 언어인데, 이 언어는 백인 슐츠로부터 비롯되잖아요. 처음에 어버버하던 장고가, 슐츠를 통해서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게 되니까요. 결국 이 언어로, 마지막에 탈주를 하게되구요. 그러니까 언어도 백인이 알려주고, 결국 백인의 힘으로 자유를 되찾는 거예요. 흑인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 전반적인 배경은 백인이 바꾸는 서사라고 생각했어요. 백인 중 한 명이 이끌어가야 했을까요?  

연연 : 맞아요. 반격이라는 것이 애초에 닥터가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특히 말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가 곧 권력이니까요.   


해정 : 저도 백인 남성이 흑인 노예를 계몽시키는 서사인 건가, 싶어서 아쉽기도 했는데 제 친구 중 한 명은 비단 슐츠 박사를 백인으로 뭉뚱그려서 보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말하더라고요. 백인인 동시에 그 사회의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요. (독일인임) 그는 캔디와 같은, 노예제도의 완전한 기득권은 아닌 거죠. 슐츠라든지 스티븐 같은 인물들 덕에 이 영화를 단순히 백인/흑인으로 구분하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슐츠는 어찌 보면, 노예제도를 이용한 미국 백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인물이기도 한 반면 미국의 백인들은 너무 단순하게 묘사되기도 하고요. 악하고, 바보 같고, 또 멍청하고. 여성 캐릭터에 대한 부분도 아쉬워요. 수동적이기만 한 건 아니지만, 평면적이어서 아쉬웠어요.  

다희 : 특히 캔디의 누나 캐릭터 경우에는 굉장히 기괴할 정도로 억눌려 있는 상황으로 보였어요. 캔디가 식사를 하면서 브룸 힐다의 등을 억지로 보여주려고 할 때 크게 소리치는 모습에서도 그런 것이 느껴졌고요. 당시 시대적 상황을 오히려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 같았어요.


학곰 : 전 집사 캐릭터가 좋았어요. 연기 진짜 잘해요. 한마디 던지면 따라 하는 부분이 특히 백미! ‘이건 아니잖아요… 어 알았어요.’ 이런 식으로. 캔디를 따라 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인간임에도 그와 평등해 보이거나 혹은  도리어 지배하는 것만 같은 서재 장면이 특히 좋았어요. 저항하는 사람과 순응하는 사람의 차이.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에 저항하는 사람과 가치를 내면화한 사람의 차이인 것 같아요.   



연연 : 킬빌도 그래요. 애초에 감독 자체가 올드한 연출을 가지고 어떻게 세련되게 만드느냐가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성별을 바꾸거나 인종을 바꾸거나 함으로써 의미를 완성하고 그 담에 액션을 추구하는 스타일인 듯?  


박루저 : 음 저는 작가가, 분명 한 방 먹이고 싶은 주제가 있다고 봤어요. 소설이랑 다른 영화감독만의 복수라고 생각해요. 소설로는 이런 단순한 서사가 혜정 누나 말 대로 제대로 전달이 안 됐을 듯해요. 언어 같은 경우도 차이가 있을 거구요. 내용을 보면 흑인과 백인들의 언어 사용, 그리고 안에서 흑인들간의 사소한 계급차이에서 오는 언어도 분명히 다를 텐데 현지인이 아니라서 느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느끼긴 힘들지만 현지인들이라면 언어 사용의 계층적인 부분을 환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타란티노의 인물들  


해정 : 영화적으로 봤을 때 오마주가 정말 많다고 해요. 저는 영화력이 볼품없어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타란티노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알아본 바로는, 쟝고 원작의 주인공이 등장한다거나, 사무엘 잭슨 등 배우들의 옛 역할까지 알면 더 풍부하고 볼 수 있게끔, 집요하게 파고들어요. 이미 아는 사람이 봤을 때 오마주가 지닌 정치적 속성도 많았을 것 같아요. 재미있는 영화로만 봐도 괜찮고요.


박루저 : 맞아요. 킹슐츠(크리스토프 왈츠)는 전작 바스터즈에서 나치 친위대로 나왔어요.  


연연 : 비슷한 느낌의 킬빌이랑 비교하면, 킬빌은 다 죽이는 영화잖아요. 근데 전 의아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왜 저러고 있지 싶은? 근데 이영화는 설정 자체를 역사에서 끌고 와서 주제로 활용하니까 일리가 있고 몰입이 잘 됐습니다.    

다희 : 노예에 가해지는 폭력이 현실적인 게 고증이 철저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역사로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박루저 : 디카프리오도 백인 악역 끝판왕으로 기만적인 세계를 구축한 인물이지만, 그 인물의 세계 안에서는 돈을 벌어주기만 하면 흑인도 잘 살고 백인도 잘 살고 하잖아요? 전 그래서 노예제도로 인한 갈등도 중요한 주제지만, 그보다 더 큰 배경으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암시라고 생각했어요. 미국 북부와 남부, 아니면 흑인과 백인의 갈등보다도 더 큰 자본주의라는 흐름 속에 존재하던 시대적 맥락으로 해석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다희 : 맞아요. 캔디도 흑인들이 지배체제 때문에 복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해골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캔디는 무언가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았고요. 한편 쟝고가 돌아와 복수할 때 흑인 집사가 ‘그래 봤자 백인은 다 못 죽여-‘라고 하잖아요. 집사의 경우도 노예제도의 모순을 알지만 그 견고함을 오히려 못 뚫을 거라 생각하고, 비겁하게 강자의 편에 선 인물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해정 : 비슷한 의미에서 캔디의 대사가 인상 깊었어요. ‘왜 면도해주던 흑인이 죽이지 않았을까?'라고 궁금해하잖아요?   

 

다희 : 흑인 집사의 캐릭터도 그런 점에서 흥미로웠어요.

해정 : 앞에서는 비틀비틀 대지만 뒤에서는 오히려 더 높은 사람처럼 보여요.   

다희 :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노예무역 당시 많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득을 챙겼지만, 그만큼 아프리카의 부족들도 많이 이득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노예를 판 자본으로 도시로 성장하기도 했고요. 흑인 집사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런 것을 시사하는 것 같기도 해요.  


학곰 : 궁금한 점이 있는데 슐츠가 캔디를 쏘기 전에 개한테 뜯겨서 죽은 흑인을 떠올리잖아요. 그 개에게 죽는 장면에선 쟝고는 슐츠에게 ‘당신은 아들 옆의 아빠도 쏴 죽이면서 이까짓 걸로 그러냐?’라고 반문을 하기도 하잖아요. 근데 그는 왜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면서 참지 못하고 총을 쐈을까요?   

해정 : 현상수배범을 죽이는 데는 일말의 거리낌이 없던 사람이 자기만의 다른 기준이 있었을까요?  

연속하여 독일인으로 타란티노의 영화에 출연, 다시 한 번 미국인과 대결한 크리스토프 왈츠

연연 : 전 독일인이라는 것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교양인으로서의 유럽을 보여준 것 같아요. 캔디가 아는 게 많고 잘 살긴 하지만 그래 봐야 교양이 없는 미국인이라는 것을 암시한 것 같아요. 똑같이 자비가 없는 사람이지만 착취당하는 사람으로의 인권을 인식했던 것 아닐까요.   

최생 : 저는 약간 생각이 다른 게 독일이 물론 교양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 당시 독일의 역사를 보면 다른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 만큼 역사 노예무역이 없지 않았나요?  


편집자 : 있었습니다! 17c에 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 등과 함께 노예무역을 주도했다고 하네요! 추가로 타란티노는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도에 책임이 있다.”,”(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인과 달리 미국은 자신의 과오를 어물쩡 넘기려 하고 있다.”등의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반격과 폭력의 불가분성?  


역사는 폭력을 필요로 해왔다


해정 : 반격을 주제로 한 건데 매우 폭력적이잖아요. 장고 캐스팅 1순위였던 윌 스미스가 거절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사랑이 아니라 복수이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고 답은 오직 사랑이다. 이런 뉘앙스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분의 입장이 이해는 돼요. 폭력은 정당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거기도 하고, 정당성의 여지를 떠나 그것이 진짜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의 문제로 들어가면 더 복잡하잖아요. 하지만 저항의 수단으로써 폭력의 의미도 궁금해요. 피해자들은 계급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거나 가해자들이 설정한 게임의 규칙을 잘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일 텐데.. 그런 의미에서 폭력 없는 반격이란 게 가능할까요? 또 반격을 위한 폭력이 권력을 뒤흔들만한 파장이 될까요?   


 기존의 반격을 다루는 텍스트는 정치적 올바름에 골몰했지만, 쟝고처럼 효과적인 반격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구조적 폭력 자체가 반격의 정당성인데, 기존의 영화나 작품들엔 그런 시스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너무 많아요.  맥락은 이미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가타부타 설명 없이 무자비하게 응징하는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이것저것 표면적인 맥락을 갖출수록 오락적인 요소도 사라지는 것 같아요. 재미있게 성공하는 반격을 다룬 영화를 보고 싶어요.


박루저 : 맞아요. 전에도 느낀 건데 우리나라는 이런 반격이 지닌 폭력성을 너무 강박적으로 불편해해요. 특히 광장시위때마다 강박적으로 쓰레기를 줍는 모습같은거요.


연연 : 폭력에 폭력으로 반격하는 것. 미투 운동도 비슷하지만, 피해자가 입증을 해야 하는 한계 때문에, 반격이 적어도 효과를 지니려면 폭력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나요? 반격의 의미 자체에 수반되는 거 같아요.  


해정 : 맞아요. 공론의 장은 점점 사라지고, 피해자들은 대부분 말할 수 있는 권력 혹은 장소 자체가 적거나 아주 없는데, 피해자들이 취하는 방법을 단순히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핀잔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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