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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Apr 01. 2018

19. 죽음에 관하여

요나스 요나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멘붕

*느빌의 책방에서는 "반격"라는 키워드에 이어 "멘붕"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는 "멘붕" 3부작 중 첫 번째 텍스트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들어가며


지난 모임에서는 반격 3부작의 마지막 텍스트 <장고: 분노의 추격자>를 함께 보았다. 영화는 재미있었고, 이전 발제자의 표현을 빌리면 '사이다'같은 통쾌함을 주었다. 장고의 총끝은 부조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이들에게 향했고, 그들의 죽음은 정당해 보였다. 총을 맞는 순간 과장되게 튀는 피와 경쾌한 BGM의 조합은 사람의 죽음을 부담 없이(?) 볼 수 있게 하는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수배자들은 현상금 사냥꾼이 먼발치에서 쏜 총알이 그 타이밍에 날아와, 그 순간 자신의 생이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캔디도 닥터 슐츠도 하다 못해 영화 초반에 닥터와 장고를 마을에서 내쫓으려다가 죽은 보안관 아저씨도, 장고에게 속아 탈출을 하게 만든 백인 3인방도, 만딩고에서 패해 장도리를 맞고 죽은 이도, 만딩고를 하지 않으려 도망가다가 개에 물려 죽은 이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죽는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는 존재이다. 하지만 언제 죽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죽음은 악한 사람에게도 핍박받은 사람에게도 단 한 번만 찾아오기 때문이다. 장고가 쏜 총알은 어쩌면 개인적인 복수와 반격의 의미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평등에 대한 메시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본 후 나는 멘붕에 빠졌다.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면서 문득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의지로 죽음을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 질병, 범죄 등)에 휘말려 죽을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나는 잘 죽고 싶다. 죽을 때 죽더라도 후회는 적고 의미는 있게 사라지고 싶다. 그래서 그 의미를 찾아보려고 찾은 책이 바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하 100세 노인)>이다. 100살을 산 노인이라면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을 것이고, 자신도 살아갈 날 보다는 죽을 날이 가까운 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경험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싶었다.



2. Rest In Peace(고이 잠드소서)


볼트: 냉동실에서 동사, 이후 사체는 수출 상자에 포장되어 아프리카로 가는 배에서 바다로 던져진다.

알란의 아버지: 러시아에서 산 딸기밭을 지키려 사유지 투쟁을 하다가 군인에게 사망

알란의 어머니: 아버지 사망 후 2년 뒤 객혈을 하다가 사망

율리우스의 어머니: 율리우스가 25살 때 암으로 사망

율리우스의 아버지: 송아지를 구하려다가 연못에 빠져 익사

식료품상: 운전 미숙으로 알란의 자갈 채취장에 들어왔다가 사유지에서 폭발 실험 중이던 알란에 의해 폭사

옆 동네의 암소: 폭발 굉음으로 인해 2회 유산

스페인 사람 에스테반: 스페인 내전 중 텐션이 올라 바위 위로 올라가 공화당 군대에 소리를 지르다가 포탄을 맞고 사망

러시아의 차르: 정권이 힘을 잃고 살해당함.

구닐라의 어머니: 사망

루스벨트 대통령: 고혈압으로 사망

양동이: 코끼리 소냐의 배설물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코끼리 엉덩이 깔려 압사

국민당 부대와 공산군의 전투: 국민당 부대 3천여 명, 공산군 300여 명 전사

국민당에 잡혀온 공산군 포로 49인: 사망

술을 진탕 마신 쑹메이링(장제스의 부인)의 경호원 1명: 배 난간 아래로 떨어져 익사

중국에서 만난 이란인 공산주의자 3인: 국경에서 몸수색 중에 '공산당 선언'이 발견되어 총살

이란의 영국 대사관 서기관보: 고문을 당하고 뺑소니, 사고로 위장해서 사망

글렌 밀러: 재즈의 젊은 전설, 미 군용기를 타고 가다가 영불해협에서 행방불명

이란 정보 안전국 국장(비밀경찰 보스): 커피에 담배꽁초를 던지다가, 알란이 설치해놓은 잉크+니트로글리세린 폭발물에 꽁초를 던져 폭사

알란이 출국하는 것을 막고 정보 안전국 국장에게 보고하러 갔던 장교: 옆에 있다가 같이 폭사

정보 안전국 경비명 3명 중 2명: 폭발풍에 벽에 처박히고, 몸에 불이 붙어서 사망(추정)

케빈 퍼거슨: 남은 경비병 중 1명에게 선교를 하려다가 총알 스물두 발 맞고 사망

페르 알빈(전 스웨덴 수상): 서거

스탈린그라드 전투: 150만 명 사망

헤르베르트 아인슈타인: 절절한 가족사 얘기하고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행정착오로 수용소행, 이후 항상 죽고 싶어 했으나 죽지 못하고 20년 후에 파리에서 사망

스웨덴 국왕: 승하

한국 전쟁: 400만 명 사망

블라디보스토크 화재 당시 가장 먼저 수용소를 탈출하려던 3인의 죄수: 제2번 감시탑 병사의 기관총에 사망

블라디보스토크 화재 당시 수류탄, 지뢰의 연쇄 폭발로 대규모 인명피해

시베리아로 도망가던 블라디보스토크 굴라끄 탈주범들: 군인에 의해 사살

발리 아궁 화산 폭발: 수천 명 사망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 공산주의자 숙청 20만-200만 추정(중국으로 도망간 이들은 자본주의자로 몰려서 사망했을 확률이 높아 사망자 추정 불가)

볼트의 시체를 버린 이집트 선원: 옆에 있던 자살테러범이 실수로 폭발하는 바람에 옆에 있던 다른 사람과 함께 사망

스탈린: 심장발작

브레즈네프(소련 원수):심장발작

유리(소련의 물리학자): 미국 망명 후 자다가 사망

라리사(유리의 배우자): 유리 사망 후 2주 후 사망

알란이 키우던 고양이: 여우가 공격해서 사망

고양이를 공격한 여우: 알란이 설치한 폭탄에 폭사  

그 외 미처 기록하지 못한 먼저 간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 연대기 순, 책의 순서 순이 아닌 임의로 기록했습니다.


위의 명단은 주인공 알란 임마누엘 칼손이 100년을 살면서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죽음이다. 어떤 이는 그가 보는 앞에서 죽었고, 어떤 이는 풍문으로, 다른 어떤 이는 그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망했다(알란이 죽인 이도 꽤 된다). 확실한 것은 알란은 여전히 살아남았고 그가 살아있는 한 앞으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할 것이다.




3.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


시간과 장소도 이유도 다른 죽음들 앞에서 알란은 초연하다. 공감능력이 결여되다 못해 소시오패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덤덤하다. 그의 이런 특성은 부모의 교육에 기인한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어머니가 허심탄회하게 뱉은 말은 알란의 100세 인생의 큰 영향을 끼친다. 그에게는 동기가 없다. 볼트의 트렁크를 들고 제일 빨리 오는 버스에 오른 것도 딱히 이유가 있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다만 현재에 집중할 뿐이다. 양로원에서 주최하는 백 회 생일 기념 파티에서 도망치기 위해 창문을 넘게 되었고, 가급적 그들이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멀리 가고 싶었고, 어쩌다 보니 일이 얽혀서 2명의 사망자를 낳은 사달이 난 것이다.


<100세 노인>의 이야기는 주인공 알란의 나이만큼이나 방대하다. 수십 년을 관통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쳐서 그의 인생이 만들어진다. 이 얼토당토 하지 않은 이야기는 얼척 없이 엮여있다. <제5도살장>의 빌리 필그램이 "뭐 그런 거지."하고 체념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빌리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좌절하고 체념했을 때 생기는 무기력한 태도를 보인다면, 알란은 자신의 쓰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상황상황마다 융통성을 발휘하여 약간의 거짓, 약간의 과장을 통해 위기 상황을 극복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자신의 쓰임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는 폭발물 전문가다. 폭발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나, 특히 전쟁 중에 전략을 목적으로 다리를 폭파하거나, 대량 살상을 위한 폭탄을 제조할 때 그는 필요한 존재가 된다. 알란에겐 소속이 없다. 자신의 과거라고 할 수 있는 집도 두 번의 폭발을 통해 홀라당 날려먹었다. 과거도 연고도 없는 그는 무적자이기에 언제든 거처를 옮길 수 있고, 언제든 소속을 달리할 수 있다.


다만 어느 소속에 있든, 알란은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자신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는 엿을 먹이고,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거나 받는 구조로 행동한다. 상대의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그가 가진 이념이 자신의 친구가 가진 이념과 상충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는 자신의 인정 욕구를 채워주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 쓰임을 증명할 뿐이다.(알란이 스웨덴에서 쓰임을 인정받지 못하고 소련으로 날아간 이유도 같은 이유다)


이런 서사가 얼척 없이 느껴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알란처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 아래 집단 속의 개인, 이해관계 속의 개인, 부분으로서의 개인이라는 개념을 배워왔다. 그래서 관계의 중요성, 라인의 중요성(혈연, 지연, 군연(군대) 등), 더 큰 차원에서는 애국심과 같은 '집단 속의 소속감'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능력과 성장이 아닌, 소속 구성원의 공동체 의식 고취와 사교술이다.


알란은 특수한 위치에 있다. '나'를 인정해 주는 곳으로 간다. '나'를 함부로 대하면 '나'는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라는 고자세는 그의 능력을 알아봐 준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발견되기 이전에 '폭발물 전문가'라는 자신만의 캐릭터와 실력을 구축해갔는데, 이는 편견 없이 타인들의 조언이나 기술을 흡수한 까닭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그가 편견 없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뿐"이라는 어머니의 메시지에서 출발한다. 그가 대통령이나 국가 원수들과 격 없이 지낸 것도 상대의 지위를 본 것이 아니라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4. 그렇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알란의 100세 인생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덤덤하게 묘사된다. 죽음에 대한 애도나 생전의 기억을 회고하기보다는 죽었구나. 하고 스윽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 이유를 들어가며에서 제시했던 "사람은 모두 죽어가는 존재다."라는 명제에서 찾았다. 죽는 순간에는 선도 악도, 지배와 피지배도, 동기와 이념도 사라진다. 남는 것은 죽었다는 결과와 시체뿐이다. 알란은 경험을 통해 통찰력을 얻었을 게다. 자신의 자갈 채취장에서 폭사당한 식료품상이나 수백만 명의 죽음을 만든 독재자나 죽음 앞에서는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국가 지도자에게나 핫도그 판매상 베니에게나 일관적인 태도를 취한다. 경어와 반말, 칭호를 달리하는 것뿐(이는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다.) 선입견이나 이해관계없이 인간으로 바라본다. 더불어 그의 이야기는 자신만을 참고한다. 자신의 경험을 레퍼런스 삼아 지금 해야 할 행동을 판단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꺼낼 때도 타인과 자신이 엮여있는 이야기 만을 꺼낸다. 이런 현상을 현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그를 특별한 인물로 만든다. 물론 그가 백인 남성이기에 가능했던 '기회'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타인을 볼 때 그의 위치를 구분하고, 견적을 내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강자에게 수그리고, 약자에게는 강압적인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죽어간 수많은 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세상에서 내가 고민해야 할 일은 '어떤 방법으로 죽을지'가 아니라,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살지'라는 것이었다. 잘 살아서, 잘 죽을 수 있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나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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