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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Apr 10. 2018

19-1. 100살까지 살면 세상이 달라 보일까?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뒷담화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 이 뒷담화는 반격에 이은 키워드 멘붕의 첫 번째 텍스트입니다.


*이번 모임엔 학곰, 다희,  최생, 이주 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이전 게시글인 '발제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 링크 : https://brunch.co.kr/@neuvilbooks/129




0. 들어가며

     

최생 : 저는 영화로 봤는데 재밌게 봤습니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스토리가 흥미로웠어요.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할아버지도 실제로는 그런 스펙타클한 삶을 살아온 거 잖아요. 누구나 각각의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겉으로는 알기 힘듭니다. 그래서 겉모습만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다희 : 소설은 읽다가 길기도 하고 장황하기도 해서 재미는 있는데 조금 읽다가 지치는 면이 있었어요. 발제날까지 완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우선은 영화를 봤고, 영화는 영화대로 잘 각색하고 요약해서 만들었다고 느꼈어요.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그런 인물이 주인공인데, 어찌됐던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서 오는 교훈이 있는 것 같아서 그런걸 같이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주 : 저도 우선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소설보다는 간략하게 인물들과 사건을 줄여서 잘 요약한 것 같아요. 처음에 '멘붕'이라는 키워드를 골랐다고 했을 때 도대체 어떤 책이나 작품을 고를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나자 '멘붕'이라는 키워드랑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발제문에서도 집어주었듯이 알란의 모습을 통해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1. 죽음에 대하여

     

다희 : 죽음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데 코믹하게 그려져서 그냥 넘어가게 되는데, 사실 그렇게 넘길만한 문제인가 싶었어요. 발제문에서도 이 부분을 집어줘서 좋았어요.


학곰 : 죽음을 굳이 기록한 이유는 처음에는 한 두명이 죽는 줄 알았는데 가면 갈수록 세네 페이지에 한 명씩 죽는 느낌이 들어서, 이걸 기록하면서 죽어나간 조연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주인공인 알란이 문제죠. 본인은 잘 살아서 돌아다니지만 일을 만들고... 장고 때도 마찬가지고 조연으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장고를 보면서 느꼈던 통쾌함과 달랐던 것은, 그나마 장고에서는 죽을만한 사람들이 죽었어요. 특히 총을 맞는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이었죠. 그런데 여기서는 예기치 못한 죽음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예기치 못한 죽음들이 오히려 더 와닿았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평소에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최생 : 전 죽음에 대한 가치판단은 없고 보여주기만 해서 인상 깊었지만서도 불편함이 느껴졌어요. 누가 죽으면 거기에 따른 가치 판단을 하고 반성을 하거나 애도를 하는 등 적어도 죽음에 맞는 태도를 보여줘야 하는데, '죽었구나, 그럼 뭐해야되지?'로 연결되더라고요. 물론 산전수전 겪은 주인공 입장에선 생판 모르는 남이고, 또 이미 익숙한 죽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약간의 혐오감이 느껴졌습니다.

     

이주 : 맞아요. 갱이라고 나오는 사람들도 사실 좀 허술한 캐릭터로 그려지잖아요. 엄청 악독한 애들도 아닌데...

     

다희 : 그리고 알란은 폭탄 전문가로서 전쟁을 하게 하고, 핵무기를 만들어주는 등 사람을 죽게 하는 일에 참여했잖아요. 그냥 그 때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건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것 같아요. 

     

학곰 : 그게 바로 불편한 지점인 것 같아요. 죽는 인물들은 그냥 죽기 위해서 나오는 인물들로 느껴졌어요. 인물이 많이 나오는데 하나씩 죽여가니까요. 폭탄이라는 기술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벨의 딜레마도 여기서 나온 것 아닐까요. 이로운 곳에 쓰고 싶어서 기술을 발명했는데 전쟁에 사용했던 것처럼요.



2. 알란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이주 : 처음에는 그냥 100세 노인이 양로원을 탈출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인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과거가 더 어마어마한 인물이더라. 굉장히 많은 역사를 겪은 숨겨진 인물로 그렸는데 왜 이런 인물로 설정했는지 궁금증이 들었어요.


다희 : 아마 이데올로기나 냉전으로 싸우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보여줄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실제 현실이 돌아가는 것과는 별개로 알란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실제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이해를 못해서 관계가 평행선으로 느껴지는데, 반면에 알란이 사는 보습을 보면 더 행복해보이는 느낌이랄까요. 알란에게는 억압된 것이 없어 보였어요. 자신에게 그때그때의 욕망이 소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대해주는 것 같고요. 

     

최생 : 그런데 한편으로는 불편한 느낌도 들었어요. 영화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작가가 이걸 통해서 세상은 일종의 허상이라는 것을 보여줬는데, 주인공을 해탈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별거 아니다라고 묘사하는 게 가르치려든다는 느낌도 들었거든요. 나이가 많이 든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무책임하지 않나요?

     

다희 : 근데 그렇게 하기엔 우스꽝스럽게 비춰줘서 오히려 비꼰거 같기도 해요. 어떻게 하든 정치적인 쪽에 서게되는 걸 보면 아무리 마음대로 살아도 정치와 연관되게 살 수밖에 없다...는 느낌으로 보여주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최생 : 스웨덴 사람이죠.. 러시아를 왜 갔을까요?

     

학곰 : 책이랑 영화랑 조금 줄거리가 다르고 영화에서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어요. 책을 읽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미국에서 부탁을 받고 이러저러 해서(생략) 러시아로 갔어요. 알란이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소속감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족도 없고, 뿌릴 씨앗도 없고, 집도 두 번이나 날렸어요. 자기의 베이스, 근거지가 없고 소속이 없으니까 어느 곳에 가더라도 자기만 제대로 서있으면 되는거죠. 공화당이든 국민당이든 이념을 떠나서 자기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최생 : 책에서는 좀 더 능력이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그저 해탈하고 단순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 같아서 작품 간에 인물이 조금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다희 : 확실히 영화에서는 좀 모자라보이는 인물로 느껴졌어요.

     

학곰 : 약간은 다른 맥락일수도 있지만 알란을 보며 느낀 점은 같이 다니는 친구들을 대하는 것이나 스탈린 등의 장군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 같다는 것이었어요. 상대방이 자기보다 높든 낮든 선입견 없이 보는거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최생 : 또 아예 세상에 없을 법한 사람같진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해결하려고 전전긍긍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랄까요. 누구나 그런 사람 본 적 있지 않나요?

     

이주 : 현실에서도 이런 태도로 삶에 임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다희 : 알란에게는 증오가 없어요(질리는 맛이기에). 길게 생각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요. 알란이 한 번도 애착을 가진 적이 없었다가 유일하게 애착을 느낀 것이 고양이였던 것 같아요. 고양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복수의 대상이 되잖아요. 어쩌면 그렇게 쿨할 수 있었던 것도 애착이 없어서 그랬던 것일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주 : 오래 살면 통찰이 생길까요?

     

학곰 : 안 생길 거 같아요(단호). 저는 꼰대가 될 것 같아요.

     

최생 : 공감합니다. 지금만 해도 남의 말을 안 들으려고 하는데 나이가 들면 더 심해질 것 같아요.

     

다희 :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알란에게서는 부정적인 남성 어른의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어요. 가르치려 들지도 않고 다른 사람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도 않고. 그래서 하는 행동은 사고뭉치이지만 밉지 않은 느낌이었죠.


학곰 : 구닐라가 했던 말중에 자기는 43살이고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적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을 때 알란은 웃잖아요. 그리고 소설을 읽다보면 '죽을 힘을 다해 뛴다'거나 죽음에 대한 관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고 느꼈어요. 아마 알란이 해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살만큼 산 사람이기 때문이겠죠. 이를테면 인생 짧으니까 너 마음대로 해랄까요.

     

다희 :  인생사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느낌이었어요. 인생은 아무리 도망쳐도 소용없고 너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어라고요. 우연의 산물들이 알란이 100세까지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잖아요. 알란은 사실 직접 개척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순간 즉흥적으로 대처하는데 그게 이어지잖아요. 아무리 계획 짜고 노력해도 그거대로 안될걸, 그런 느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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