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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May 01. 2018

가깝고도 먼 북한. 그리고 우리들.

22-1. <고발> 뒷담화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 이 뒷담화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에 이어 작성된 멘붕 키워드의 세 번째 텍스트입니다.


*이번 모임엔 박루저, 다희, 이주, 학곰, 연연, 해정 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이전 게시글인 '〈고발〉 발제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발제문 바로가기: https://brunch.co.kr/@neuvilbooks/160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한창 화제이다. 지리상으론 참 가깝지만 심적으로는 아주 멀었던 북한과 이렇게 불현듯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는 건가? 마치 북한이라는 사회가 갑자기 출몰이라도 한 듯, 모든 곳에서 북한을 말한다. 마침 느슨한 빌리지에서는 북한 사회의 인권 문제를 고발하는 소설 『고발』을 읽고서 함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20대의 끄트머리(...)를 달리고 있는 우리들은, 요즘의 핫-이쓔 북한을 두고 어떤 얘기를 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던 자리였다. 북한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일이 새삼 어렵더군요...! 하지만 그래서 즐겁기도 했다.


 내용은 아래 글들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능할 태도에 대해서

     


박루저 : 최근 태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저는 상대방의 문제제기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는 건 효과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고발’을 했을 때, ‘그렇다면 나는 이 문제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가장 적극적인 태도일까’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응원의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현상에 대한 내 태도. 그리고 내 현실과 내 인식 사이의 격차를 알고 그것을 줄여나가고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리얼리즘 텍스트가 갖는 의의가 아닐까. 그게 아니면 리얼리즘은 그냥 가상 게임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상하게 소설 안에 있는데 리얼리즘이라고 하잖아요. 이건 내 ‘리얼’과 전혀 무관한데. 그냥 텍스트로 접하고 머리로만 읽는 건데 이걸 현실이라고 착각하고. 이건 내 머릿속에서 끝나버리는 것인데, 그렇다면 리얼리즘이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발제문은 그런 제 생각이 반영된 것이고요.

     

연연 : 리얼리즘이라는 말 자체가 예술 안의 한 갈래잖아요. 어쨌든 그 이름 안에 함축적으로 예술이 갖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발제문의 내용들엔 공감을 했었어요. 소위 연민과 동정을 넘어서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대해서요. 지금까지 저희가 했던 논쟁 중 하나가 ‘예술’과 ‘사람’이었잖아요. 내부자가 고발하는 소설을 읽으면서 ‘예술이 정말 무언가를 할 수 있는가’를 좀 더 감각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소설 같았어요. 이 소설 자체가 갖는 의의나 예술성의 정도를 떠나 소설이 가지고 있는 ‘고발’이라는 측면이라는 점에서, 리얼리즘의 ‘리얼’은 거기에 밀착되어 있는 것이지 수용자의 ‘리얼’에 밀착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해정 : 연민이나 동정이 나태하고 게으른 태도일 수 있다는 인식에 공감해요. 고발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 안의 폭력을 반추하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게 과연 온당한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이라는 어떤 사회가 있고, 또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 역시 명백한데, 그런 책의 내용마저 ‘우리의 문제’로 전이시켜버리는 건 오히려 이 책의 내용과 목소리를 지우는 일이 아닐까 싶었어요. 북한이라는 사회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노골적으로 던지고 있는데, 물론 잘 모르는 북한에 대해 무어라 답하는 일은 참 어렵지만, 그럼에도 그 질문을 고민하는 시간과 내용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박루저 : 저는 이 책을 읽고 북한에 대한 문제의식을 얘기해버리고 끝나는 건 게으른 태도라고 생각해요. 북한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 내에 존재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폭력이나 혹은 민족주의적인 차별등 다른 폭력들에도 예민한 시선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요. 그저 이 책 하나만 읽고서 ‘북한 참 문제가 있다’는 식의, 명제를 남발하는 태도와 메커니즘은 정작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해요. 실제 현실에선 아무런 액션도 없는 채, 말로만 떠들면서 '언어화가 중요하다!' 이런 말을 하는 게 되게 지식인의 한계? 혹은 오만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학곰 : 저는 좀 더 확장적으로 생각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외국인 노동자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북한 사회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면, 이 책을 계기로 확장하고 또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와 무언가를 들으려는 태도를 확장하기 위해서거든요. “이런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하네.” 설령 거기에 그치는 거라 해도, ‘내가 지금까지 너무 편협하게 생각했구나’를 인식할 수 있는 힘과 그다음을 상상하는 힘은 이런 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북한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어떤 단계와 레벨을 넓혀가는 시도를 하는 게 맞는 방향이 아닐까요.  

     

다희 : 저 역시 문제를 자각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힘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문제를 감각하지 못하고 일상에 치여 살아가다가 이런 소설을 읽음으로써 시선이 좀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똑같은 감각으로 시작할 수 없는 것처럼요. 어떤 문제는 당면한 것으로 다가오고 어떤 문제는 조금 나중에 만나기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요. 그리고 이 소설이 그리는 현실을 보며 약간 거리감이 있다고 느껴지는 건 어쩌면 우리는 북한과 너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엄청나게 가까우면서도 먼 문제로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고 그게 체화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외국인들이나 타 국민들이 봤을 때 더욱 객관화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때문에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느끼는 어색함이나 낯섦 같은 것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걸 힘이 없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요.

    




박루저 : 저는 꼭 통일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통일된 이후를 상상해보면, 북한 사람은 완전히 외국인 노동자처럼 대해 지지 않을까 싶거든요. 계급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요. 거기에 저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을 거고요. 예전에 탈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자원봉사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저는 북한 사람을 상상하고 대하는 방식이 연민이었어요. 나와 같은 국민으로 그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고, 그래서 통일에 대해 회의적이에요.

 

연연 : 근데 저는 그게 발을 빼는 것처럼 느껴져요. 액션 혹은 발언을 해야지만 무언가 시작되고 사건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그것조차, 내가 무언가를 염려해서 시작하지 않는 건 썸만 오지게 타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지레 겁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박루저 : 네 맞아요. 근데 그 '액션'이라는 게, 이런 모임들에서 '북한 사회 참 비민주적이야 너무 안타까워'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염려해서 말조차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연민의 시선은 거두고 진짜 변화를 이뤄내는 태도를 갖자는 거죠. 연민의 감정으로 한 민족을 낙인찍었을 때, 그게 고쳐진 사례를 본 적이 없거든요. 결국 편견으로 남는 거죠.

     

해정 : 저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그렇게 나쁜 건가 싶어요. 꼭 고쳐질 필요가 있나? 처음에는 연민으로 시작했던 관계더라도 그 이후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더해지면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또 커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한편 저는 이 책의 물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거기에 달라붙어있는 많은 시간들을 고려한다면, 이 책을 읽고 또 이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시간엔 적어도 북한에 대해 말하려 애써야 하지 않을까요.

     

연연 : 저 역시 이 책은 독자보다는 저자와 그 과정에 방점이 찍혀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독자가 어떻게 수용하는가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이 책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독자가 확인할 때, 그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밀려오잖아요. 그리고 이 책의 메시지 역시 ‘나 좀 살려줘.’가 분명하고요.



     

박루저 : 이 책의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에 동의해요.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그 사회의 변화와 그 변화를 촉구하는 태도라면, 그것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은 우리 주변을 먼저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북한 사회에 대해 말을 더하는 일이 직접적인 변화에 있어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일상에서 북한에 대해 뭐라 발언하는 건 대다수가 그저 똑똑한 척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해정 : 하지만 우리 안에서 이미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북한의 문제들을, 적어도 이 작가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거잖아요. 전 당연하지 않은 문제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실질적인 변화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건 침묵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일상에서의 발언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주 : 북한 사회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것보다 우선 우리 주변에 있는 문제부터 들여다봐야 한다는 박루저의 입장은, 하필이면 이 책의 마케팅이 박루저가 불편해하는 지점과 맞닿아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웃음)

     

     


     


아무튼, 북한!

     

     

연연 : 『고발』 속 소설들은 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천 년 대는 다를까요?  

     

박루저 :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요즘은 시장경제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연연 : 최근에 뉴스에서, 김정은이 중국의 정치·경제체제에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통치한 지 몇 년이 되었을 때, 그 모습이 다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박루저 : 장강명 작가의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 북한 인권 문제와 북한의 실태가 반영되어있는 책인데, 우리나라랑 되게 비슷하더라고요. 햄버거 시켜서 먹고, 카톡방도 있고. 대놓고 못하는 거지 암암리에 다 하고 있었어요. 공장 같은 생산수단 말고는 개인이 대다수를 소유할 수 있었고요.

     

연연 : 북한과 우리를 비교해보면 결국 경제와 정치 중 무엇이 우선하는가의 문제지, 실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정치적 신분이 경제적 신분을 결정하는가, 경제적 신분이 정치적 신분을 결정하는가. 그것 말고는 소설 속 인물들이 느끼는 답답함이 제가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자본주의로부터 기인하는..) 답답함과 아주 밀접하다고 생각했어요.

     

학곰 : 저는 조금 다른 얘기인 것 같지만, ‘나와 북한’에 대해 상상을 했어요. 그냥 공산주의, 사회주의, 3대 세습에 대한 부당성. 이런 단어들은 좀 붕 떠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북한이 그런 언어로만 머물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에게 축적되어있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들이 나한테만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있는 건지 알고 싶었어요.    

     






이주 : 저는 사실 통일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어요. 통일이 되든 말든 어떤 감명이나 놀라움이 있을까 하면 잘 모르겠어요. 되면 좋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됐으면 좋겠다는 것도 아니고. 민족이나 국가 같은 개념이 이미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도 뭔가 현실이라고 와 닿지가 않았어요. 마치 옛날 소설을 읽는 것 같아 몰입이 잘 되지 않았어요.


연연 : 저 같은 경우 어렸을 적에 새터민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한테 들은 얘기와 『고발』의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물론 현실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근대적이잖아요. 그럼에도, 저는 십 년 전에 그 친구가 얘기했던 게 잊히지가 않아요. 저는 상상할 수 없는 감각이 그 친구에게는 현실이었다는 사실이.

     

박루저 : 근데 저는 이게 북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감각은 아닐 거라 생각해요. 그 사회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감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북한 사회의 전부일 거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다희 : 사실 일상에 만연해 있는 차별이나 그런 걸 생각해본다면, 만약 통일이 될 경우 그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통일이 두렵다는, 그런 감각이 더 큰 것 같아요. 결국 체제를 인정하는 방향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나 싶고요.

     

박루저 : 그래서 일상을 바꾸는 게 중요한 겁니닷! 담론에 얽혀 서로를 지적하기만 하는 것과 행동으로 조금씩 변화를 수행하는 것의 차이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뉴스 보면서 삼성 욕하고 정의로운 척은 실컷 해놓고, 막상 취업하거나 혹은 소비할 땐 삼성이라는 회사에 동경을 엄청 갖는 태도들이 많잖아요. 이런 게 담론으로만 변화를 말하고, 행동은 결코 변화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요. 그냥 내 일상에서 삼성 불매하고 취업에서 삼성에 대한 동경을 거둬버리면 훨씬 빠른 변화가 일어날 텐데... 이런 일상의 변화들이 생겨야 이재용도 구속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이재용 구속을 기원하며 뒷담화는 끝이 났다.

다음주부터는 '타인'을 주제로 세 번의 발제와 뒷담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그럼 모두들 격변하는 요즘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끽하시길 바라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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