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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Dec 26. 2017

0. 문학? 읽지 말고 읽은 '척' 하세요 :)

<문학 읽은 척 가이드> 프롤로그

‘문학 읽은 척 가이드' 프롤로그


0. ‘문학의 위기’라는 말, 이제는 너무 낡았다.

위기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과거의 아주 특별했던 짧은 시기 말고는 문학이 늘 위기였다는 말이다. 문학이니 인문학이니, 많은 사람들의 진지한 관심 속에서 멀어진 지는 오래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계속 ‘문학의 위기’ 같은 소리를 하는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진지한 관심에서 멀어진 문학과 인문학을 여전히 진지한 관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이다. 열심히 진지하게 읽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자기만큼 문학을 읽는 사람이 없자, ‘문학의 위기’라고 떠든다. 그러니까, 이 통렬한 위기 속에서도 나는 문학을 읽는다는 자부심이 분명히 ‘문학의 위기’라는 말 안에는 담겨 있다.


그래서 ‘문학’은 이 (자칭)위기의 시대에 자부심이 담긴 ‘아는 척’ 도구로 매우 많이 쓰인다. ‘장강명 쩔지 않냐? 하 헬조선을 살아가는 이 시대 청년들의 한 단면을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그려내는 그 날카로움이란!’ ‘훗 이런 작품을 두고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말했지이!’와 같은 황당한 발화들이 일상 곳곳에서 나를 향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러한 상황은, ‘이 자식은 진짜 읽은 거 맞나?’와 ‘뭐야 그 책이 누구나 다 읽었을 정도로 유명한 건가?’라는 스스로를 향한 찌질한 물음을 동반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공격적 아는 척 앞에서, ‘나 그거 안 읽어봤는데? 장강명? 오스카? 뭐야 먹는 거니?’라고 당당하게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2. 돌아보면 상대방의 아는 척 공격들은 치사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대화 상대의 읽음을 당연시함으로써 문학이 그 정도로 자기에게는 당연하다는 것과, ‘넌 안 읽었으니까 내가 느낌적인 느낌으로 대충 말해도 틀린 줄 모르고 듣고 있겠지’라는 두 가지 스웩을 이뤄낼 수 있는 몹쓸 스킬이기 때문이다. 거의 구라로 이루어진 이러한 아는 척이 간혹 진짜 핵심을 말하는 소 뒷걸음 스킬로 이어지기도 하나, 거의 모든 경우 애초 책 얘기에 대한 관심보다는 아는 척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



3. 그래서 우리에게도 상대의 몹쓸 ‘아는 척’에 대응하여 ‘읽은 척’이 필요하다.

상대의 아는 척 + 은근 무시 스킬에 주눅 들지 않기 위해서, 실제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로 ‘느낌적 느낌’으로 자꾸 퉁치는 것은 아닌가 염탐하기 위해서.


근데 이 읽은 척에도 정교한 스킬과 내공이 필요하다. 간혹 디테일하지 않은 허접한 읽은 척으로 인해 오히려 안 읽었다는 자백과 무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컨대 <토지>의 박경리 소설가가 여성작가 인지 모른 채 ‘<토지>의 박경리 형아가 보여준 그 기가 맥힌 거대서사는 이데올로기에 동원되는 개인을 남성적 시각으로 포착하지!’와 같은 무지한 발언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읽은 척에는 아주 교묘하고 치사한 ‘가이드’가 필요하다.



4. 평생 살면서 책 한 권 안 읽는 거, 창피해하지 마시라.

책보다 쉽게 지식이나 감성을 얻을 수 있는 매체는 주위에 널려있고, 책 열심히 읽는 사람 실제로도 별로 없다. 더불어 안 읽어도 진짜 읽은 사람(사실 ‘아는 척’ 대화에서 진짜 독서의 유무는 판단하기도 어렵고, 애초 중요한 것도 아니다)의 치사한 ‘아는 척’보다 훨씬 그럴싸한 ‘읽은 척’이 가능하다. 가이드만 믿고 따라오시라. 다음 주면 당신은


이광수가 <무정>에서 보여준 연애서사와 계몽서사의 오버랩은 근대소설의 시작이자 완성이었지!

처럼 말하는 뇌섹스러운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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