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스파이크 존즈 <Her 그녀>
*느슨한 빌리지에서는 "신"이라는 키워드에 이어 "외로움"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Her 그녀>은 "외로움" 3부작 중 세 번째 텍스트입니다.
<경애의 마음>에서의 외로움은 이전의 상처에서부터 오는 아픔과 같은 외로움이었고, <가면의 고백>에서의 외로움은 세상,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다름에서부터 오는 외로움이었다. 두 작품 모두 '외로움'의 한 면을 다루고 있긴 하였으나, '외로움'이라는 주제에 처절하게 가닿아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키워드 '외로움'의 마지막 작품으로는 정말 진득하게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싶었다. 다시 말하자면 몹시 외로운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어떤 작품이 좋을까 고민하다 <Her 그녀>가 떠올랐다. <Her 그녀>를 한 마디로 요약해보자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이 한 마디가 영화를 전부 담아내지는 못하겠지만 영화 개봉 당시 영화를 홍보할 때에도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한 남자'라는 부분을 강조했었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외로웠으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제작을 골랐다. 외로움과 사랑, 인공지능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한 몫했다.
영화 전반부의 테오도르는 정말이지 외로운 사람이다. 매일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고작 비디오게임을 하는 정도이다. 가끔 친구와 만나기는 하지만 만나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그를 반갑게 찾는 연락도 없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받아 가장 아름다운 글로 표현해주지만 정작 그의 삶은 아름다운 편지와는 멀리 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운명처럼 그녀가 찾아온다. 사만다라는 이름의 그녀는 새로운 인공지능 운영체제이다.
언젠가부터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곧 연애의 문제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외롭다’는 감정을 토로하면 대부분은 '소개팅 해줄까?'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거나 연애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외롭다'고 하면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처럼 언젠가부터는 외로움 = 솔로, 또는외로움 ↔ 커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연애를 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외롭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 반대의 경우도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외로움은 타자와의 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인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끊임없이 갈망하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두 번의 만남과 헤어짐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아내 캐서린과 별거하고 있는 상태로 헤어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관계를 회복하지도 못하는 상태이다. 개봉 당시 영화를 보았을 때는 사만다와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캐서린과의 이별의 부분에 더 몰입해서 보았던 것 같다. 오랜 시간동안 한 사람을 만나고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였는데, 그 사람과 이별을 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하는 부분에서 감정이입을 하였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동안 떠나보내지 못하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만나 새로운 시작을 하거나 새로운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미 모든 감정을 느낀 것 같은)은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OS인 사만다를 만나 처음에는 그저 외로움에 가볍게 말을 걸었을지도 모르지만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자신에게 맞춤화되어 있으며 위로와 인정을 해주는 사만다와 정서적인 교감을 통해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는 사만다가 단순히 딱딱하게 업무만을 수행하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과 같은 사고를 가지고 스스로 학습을 하며 새로워지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사만다와의 관계도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사만다는 사랑하는 감정을 배우고 육체를 갈망하기도 하고 테오도르와 다른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도 이런 지점일 것이다. 그 어떤 완벽한 연인이라도 그 관계가 영원할 수는 없다. 사만다와도 캐서린과 싸웠던 것과 같은 이유로 또 싸움을 하기도 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결국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맞춰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 과정중에서는 좋았던 사람이 한없이 미워지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고 혼자일 때보다도 더 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우리는 외로워서 사랑을 하지만, 사랑을 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끝내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떠난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외로움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이며, 어디까지를 상대방과 나눌 수 있는지와 같은 것들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만남을 통해 이전의 캐서린과의 만남을 다시 되새겨볼 수 있었고 끝내 그녀에게 진심을 이야기하며 사과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노을진 풍경을 바라보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 장면이 어쩐지 새로운 다음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여졌다.
사람은 존재하는 많은 것들과 사랑에 빠져왔다. 인간이 아닐지라도, 또는 정말로 만나고 이야기를 할 수 없더라도. 이를테면 사랑하는 반려동물이라거나 티비 속 연예인이라거나 만화나 게임속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와 사랑에 빠졌다고 하면 여러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어떠한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관계라는 점이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에 자신의 이상향을 투영한 것이 아니냐는 점, 이를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냐는 점 등이다. 하지만 사실 실제하지 않고 나에게도 그 무엇을 줄 수 없는(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상대를 존재의 이유만으로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더 순수한 관계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 속 사만다는 정신적으로 교감을 하는 것도 가능하며, 똑똑한 조언자의 역할이나 친구의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는 존재였으므로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OS와의 연애는 어떤 형태일 것인가? 2014년 개봉 당시에는 아이폰의 ‘시리’ 같은 인공지능이 있기는 했지만 ‘인공지능’에 관해서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었던 시대였던 것 같다. (지금은 ‘알파고’ 이후에 ‘인공지능’이 좀 더 친숙하고 가까워진 동시에 두려워지기도 하였다.)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결말은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나만 사랑하는 줄 알았던 사만다가 사실 다른 사람과도 동시에 대화를 하고 있었고 그들과도 연애를 하고 있었다는 결말.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 사랑을 두고 떠나는 존재에 대하여 사실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실제 인공지능이 영화에서처럼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된다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지만 사람이 단 하나의 '사랑'에 목매는 것도 어쩌면 사람이 유한한 존재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한한 존재가 된다면 오히려 사랑은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또는 지금의 형태의 사랑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사랑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