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 이 뒷담화는 외로움 키워드의 세 번째 텍스트 <Her 그녀>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이번 모임엔 이주, 연연, 해정 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Her 그녀 : 외로움을 채워줄 사람을 찾습니다'를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해정 : 흔히 SF영화라고 하면 저는 사이버펑크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지 않아서 좋았어요.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이렇게 까지 일상적인 분위기로 얘기하는 영화가 저한테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SF 영화의 내용을 볼 때면, 왠지 내가 사는 동안에는 없을 이야기일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HER>는 언젠가 나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봤어요. 그래서 좋았어요.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연연 : 상상을 벗어나는 관계들이 너무 많으니까, 따라잡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영화 속 감정을 현실로 끌어왔을 때 과연 어떤 감정일까? 자주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주 : 외로움에 대해서 어떻게 보셨나요?
해정 : 저는 그냥 막 사무치던데요.
연연 : (웃음) 너무 딱 맞는 말이다.
해정 : 보면서 제가 보수적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만다는 인공지능이고,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테오가 어디를 응시하더라도 결국 혼자인 모습인데... 정말 괜찮은 걸까? 이런 물음표가 계속 생기더라고요. 혼자서 풍경을 바라보고, 바다를 바라보고, 거리를 거닐고. 이 모습을 과연 외로움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저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테오가 굉장히 외로워보였어요. 너무 옛날 사람 마인드인가?
이주 : 사랑이 사람의 외로움을 채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만나도 외롭고, 안 만나도 외롭고. 영원히 이해할 것 같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외로움이 있는 것 아닐까. 외로움을 이겨낸다기보다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 같아요.
연연 : 사랑을 하고 있으면 “그래, 난 외로울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는데, 사랑을 하고 있지 않으면 “시바, 나는 왜 이렇게 외롭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외로움이 디폴트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데, 사랑을 하고 있으면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랑을 않고 있으면 “나는 왜 외롭기까지 하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이주 : 저는 연연과 딱 반대예요.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을 때는 “내가 외로운 게 당연하지. 나는 혼자니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랑을 하고 있어도 외로우면 “나는 사랑을 하고 있는데도 왜 외롭지?!” 생각해요. 결국 “이 사람이 내 사랑이 아니구나!” 이렇게 이어지더라고요. (웃음)
이주 : 발제문 쓰면서 더 다뤄보고 싶었던 게 사람과 육체, 사랑과 육체였어요. 섹슈얼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에도 그랬고... 사만다도 “내게 육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게, 사랑과 육체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 같아요. 중간에 다른 여자를 통해 대리 관계를 맺는 것이 특히 쇼킹했어요. 다른 분들은 육체와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해정 : 인공지능이 다자연애를 한다는 부분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실제로 다자연애를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하지만 다자연애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죠. 만약 나중에 인간이 신체라고 하는 틀거리(?)를 놓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신체 없는 지능이 만연할 때 다자연애가 조금 더 ‘그럴 수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지금 보편적인 연애는 일대일 관계인데, 그것도 결국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됐고요.
연연 : 육체의 종속을 통해서 이 관계를 실증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마음을 볼 수 없으니까. 시간이라든지 비용이라든지 물리적인 기회비용을 통해서 이 관계를 확인하게 되는데.. 육체가 큰 핵심인 것 같아요. 신체적인 접촉, 성관계를 갖는다든지.
이주 : 저는 육체라는 한정된 공간 때문에 사람들이 사랑에 더 목을 매는 것 같아요. 사랑에 더 큰 가치를 두는 느낌이에요. 사람이 늙어서 죽는다는 사실이 혼자서 살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인간이 육체를 떠나 무한한 존재가 되면 사랑이 오히려 작은 일부분이 되거나, 다자연애 같은 관계가 더 커지거나, 하지 않을까요?
연연 : 예전에 게임 속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것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영화를 다루었었어요. 그때 생각했던 건, 인공지능과의 사랑이 지금으로 보자면 미연시처럼, 게임 속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거였어요. 사만다는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인공지능이잖아요. 미연시도 비슷한 것 같아요. 외모, 상냥함, 친절함, 그런 맥락에서.
해정 : 현실에 있지 않은 사람이나 식물, 종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저는 그들이 외로움을 자처한다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테오가 소개팅을 했는데도 섣불리 다음을 말하지 못하는 마음 자체가 부대낌 자체를 꺼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인간관계에서 오는 부대낌, 상처, 이런 걸 겪고 싶지 않아서 결국 사람 외의 존재를 선택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것을 선택하는 삶이 사랑의 모습일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취하는 방어적인 태도가 아닌가 싶고요. 저는 자신과 저만치 다른 타자를 아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럴 계기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이주 : 근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행복해 보여요. 남들이 보면 “저 사람은 뭐지?”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본인은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아요.
연연 : 그런데 이 영화가 미연시와 다른 건, 사만다가 마지막에 결정을 하잖아요. 그 부분이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해정 : 저는 인공지능하면 흔히, 인간의 명령 체계에 복무하는 것을 상상하곤 해요. 사랑이라고 하는 관계에서는 특히 더 그랬던 거 같아요. 정말 일방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사만다가 마지막에 떠날 때 깜짝 놀랐어요. 인공지능이냐 사람이냐를 다 떠나서, 어떤 존재와 관계를 맺을 때 그것이 결국 깨질 수도 있다는 감독의 상상과 태도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태도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어요.
이주 : 유투브에서 인공지능을 가끔 찾아보거든요. 어떤 다큐에서, 한 사람이 로봇한테 탑을 쌓도록 명령해요. 로봇은 탑을 힘들게 쌓았는데, 다시 탑을 무너뜨리라는 명령을 받거든요. 그때 로봇이 탑을 무너뜨리기 싫어하더라고요. 그런게 계속 무너뜨리라는 명령이 있으니까 결국 눈물을 흘리면서 무너뜨리는데, 그 장면이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그 외에 인공지능이 인간 멸망시킬 거라고 말장난 하는 그런 것도 있고... 곧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연연 : (웃음) 되게 기쁘게 말씀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