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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Nov 06. 2018

그 누구도 날 사랑하지 않을 때

31. 영화 <파니핑크>

*느슨한 빌리지에서는 "외로움"이라는 키워드에 이어 "자아, 자기애"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파니핑크>는 "자기애" 3부작 중 첫 번째 텍스트입니다. 

 

<Her>이 근 미래의 OS와의 사랑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나는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 1994년에 도착했다.
<파니핑크>는 1994년 독일 영화(또?)이며 외로움과 자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말하기 적절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제목만 보면 ‘핑크팬더’와 같은 웃긴 애니메이션일 것 같지만 사실 <파니핑크>는 제목을 잘못 지은 예로 내가 늘 언급하는 영화 중 하나다.

파니핑크는 영화의 주인공 여자의 이름이며 원제는 <Keiner liebt mich;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이다. 




# 사랑

영화는 공항 검색대에서 일하는 29세의 파니 핑크와 점성술사인 오르피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녀는 사랑받고 싶어 한다. 방 안에서 ‘나는 아름답다.’ ‘나는 똑똑하다.’라는 문장을 잘 따라 하지만 ‘나는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다.’라는 문장을 쉬이 말하지 못한다. 


제3자가 보기에 사기꾼 같은 오르피오를 방문하고 ‘제가 알고 싶은 건 제게 과연 대화 상대가 생길까 하는 거예요.’라는 말을 건넨다. 그녀는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함, 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주로 혼자였고 많은 시간을 타의로 할애하여 자주 상념에 빠졌다. 연애 역시 생각하고 했는데, 길거리의 타인들을 보며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할까, 영화 대사처럼 나에게 ‘내 인생엔 네가 필요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나와 파니 모두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 파니의 인터뷰 장면과 방 안에서 낭독 테이프를 따라 하는 장면에서 파니는 자기애가 결여된 사람처럼 보인다. ‘나’라는 주체와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그녀는 그것을 주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 존재다. 남을 사랑하려면 나부터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확산시켜 다른 이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 운명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파니는 오르피오에게 점지를 받는다. “양복을 입고, 검은색과 23과 관련된 남자가 너를 찾아온다. 이것이 너의 마지막 기회다.” 이윽고 번호판 2323의 검은색 자동차를 가진 관리인 로타와 그녀가 만난다. 


그녀는 그 순간 그것이 운명임을 직관한다. 채식을 하고, 죽음에 관한 생각을 하는 것이 비슷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몇 가지에 그와 그녀가 잘 맞는다고 단정 지어버린 것이다. 


로타는 실제로 괜찮은 남자도 아니었으며,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여자들을 방으로 불러들여 섹스를 한다. 파니의 집에도 그녀의 어머니의 사주를 받고 침대에 누워서 파니와 딱 한 번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일련의 문제를 파니를 통해 풀면서,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와 친해졌다는 생각에 파니는 기분이 한껏 들뜬다. 콧노래를 부르고 친구에게도 당당히 ‘시에 데이트가 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행복 또한 얼마 가지 못해 산산조각 나고 만다. 


사람들은 살면서 운명과 우연을 구분 짓는다. 그리고 잘못된 정보를 ‘운명’이라 생각하며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운명론은 어찌 보면 삶에 대한 보험이다. 


잘못된 일이 일어났을 때 ‘이건 운명’이야 하고 변명하면 되니까. 

파니도 그것을 후에 깨닫는다. 영화 마지막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던 남자는 그녀가 나가던 모임의 일원이었다. 그녀와 그가 운명적으로 만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죽음

파니가 사랑만큼 인생에서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죽음’이다. 나 역시 죽음에 관한 생각을 한다. 죽음의 장면과 죽음 이후의 장면들. 그것들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밤을 설친다. 


죽음에 대한 모임을 나가면서 그녀는 자신의 관을 직접 짜기도 한다. 관의 덮개 부분은 유리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죽어서도 남에게 보이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 투시되었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죽음과 삶이 대비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파니의 생일이다. 관리인 로타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한 후 파니는 서른 번째 생일을 맞는다. 하지만 직장동료의 축하도 싫고, 식당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는 모두 품절이다. 그때 그녀를 축하해준 건 서른 개의 초가 꽂인 케이크를 든 오르피오다. 모든 것이 죽음과 이어졌던 영화에서, 해골 분장을 하고 파니에게 케익을 건네는 장면은 가장 아이러니하면서 유쾌하다. 


자아에 의문을 갖는 것은 죽음과도 이어진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죽음의 의미를 알면 지금 나의 삶이 더 가치 있어지지 않을까. 영화 마지막 부분, 그녀가 만든 관을 아파트 너머로 던저버리는 모습을 보며 파니는 그 의문에 어느 정도 대답을 얻은 것 같다. 



# 끝으로

자아라는 거창한 주제를 영화와 연결시켜보았는데, 잘 연결이 됐는지 모르겠다. 도리스 되리의 이 94년 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환상적이면서 몽환적인 분위기. 어딘가 모르게 자신과 닮은 점이 보이는 주인공과 진짜로 우주에서 온 것 같은 오르페오는 그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아파트의 사람들도 그렇다. 


인생을 ‘개 같다’라고 표현하는 남자와 고양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여자가 사는 아파트. 이탈리아인, 아랍인, 아시아인이 모두 어울러 사는 아파트는 어쩌면 감독이 ‘지구’를 비유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사랑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파니를 앞세우며 자기 자아를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은 아니었을 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파니가 마지막 장면의 23을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 http://www.virtual-history.com/movie/film/13009/keiner-liebt-m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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