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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Nov 06. 2018

죽고 싶지만 사주는 보고 싶어

31-1. 영화 <파니핑크>를 보고 나눈 이야기들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 이 뒷담화는 자아, 자기애 키워드의 첫 번째 텍스트 <파니핑크>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이번 모임엔 이주, 연연, 일벌레, 동석, 다희, 학곰 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그 누구도 날 사랑하지 않을 때'를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동석 :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이전 주제가 외로움이었는데 주제가 이어지기도 하고 ‘자아’에 대해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에요. 파니핑크가 인생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면 삶에서 가장 고민했던 순간이 '자아'를 고민하는 것 같아서에요.


연연 : 저도 좋아하는 영화예요. 고등학생 때 처음 본 영화인데 다시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자아보다는 자기애라는 키워드와 더 연결이 되지 않을까 싶었고, 오르페우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어요.


일벌레 :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며 보았어요. 약간 옛날 영화의 프레임들이 지루함을 배가시키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도 있어서. 그렇지만 배경이 되는 공간이 매력적이어서, 도시가 어떻게 그려지는 지를 생각하면서 보게 되었어요.


동석 : 크게는 사랑, 운명, 죽음이라는 세 키워드를 꼽아 보았어요. 첫 장면에서 독백으로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이 주인공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버거운 것이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녹음테이프의 내용을 따라 하는 데 '사랑받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을 따라 하지 못했어요. 이런 부분에서 자기애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내가 과연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깊이 느껴졌어요. 저는 그걸 이십 대 초반에 느꼈거든요. 지금은 좀 다르지만. (자기애 폭발 시즌) 음, 저는 자기애를 판단하는 척도가 있다면 사랑의 유무도 그 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학곰 : 자기애는 제 인생에 정말 중요한 화두예요. 1~2주에 1권씩 자기애와 관련된 책을 읽고요. 그런데 저는 내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를 느껴요. 그리고 자기애는 남이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아존중감이랑도 다르고요. 제가 보기에 파니핑크의 경우 자기애에 대한 애착은 높은 편인데 자아존중감은 떨어지는 상황이에요.


자아존중감은 남이 내가 어떻게 하느냐와 연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자기 애착은 자기 자신의 행동을 좋아하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해요.(학술적 개념은 아닙니다.) 파니핑크는 존중을 받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오르페우랑의 관계는 서로 무언가를 요구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니까 유지될 수 있다고 봐요. 타인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나도 존중하게 되는 그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관계인 것 같아요.


일벌레 : 어느 부분에서 존중하는 관계라고 느꼈나요?


학곰 : 서로의 표정을 보면서 점점 변화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와 있을 때 파니핑크가 가장 편안해 보이기도 했고요.


다희 : 저는 둘이 춤추는 장면에서 존중의 시작을 느꼈어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춤을 추지만, 그를 이해하면서 그의 방식을 도전해 보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번 발제부터는 공통 질문을 미리 공유한 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운명을 믿으세요?


동석 :  솔직히 말하면, 오르페우가 사기꾼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파니는 그 주술적 모습을 믿고 의존하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개인적으론 사주나 점을 보는 것을 안 좋아하거든요. 끼워 맞추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이 영화가 운명이 억지라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해요. 오히려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23이 또 나오는 것을 보여주면서 운명이 얼마나 우연의 일치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학곰 : 제가 사주를 보는 이유는 자신에게 확신이 없을 때에요.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확정하기 위해서, 그리고 남이 보는 나를 위한 객관성을 확인하고 싶을 때 봐요. 사주는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이잖아요. 그런데 갈 때마다 해주는 이야기가 달라요. 그건 화술의 영역, 봐주는 역술인의 상상력의 영역인 것이죠. 파니에게는 외롭고 싶지 않은 욕구가 있어요. 그걸 해소하고 싶은데 확신이 없고, 확신을 갖고 싶어서 오르페우의 말을 다 믿는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에 '23'이라는 숫자도 파니를 확인시켜주는 확신이라 생각하고요.


연연 : 아무래도 믿음의 영역 아닐까요. 불안하면 그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죠.


다희 :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 같지만, 사랑도 이와 비슷한 영역인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우연히 한 사람과 연결시켜서 사랑이 시작되니까요. 어떤 누군가에게서 특별함을 발견해내는 것 자체가 기적일 수 있고, 믿음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를 강렬하게 확신하는 것이죠.


연연 : 동의해요. 어쩌면 사랑에 빠진다고 표현하는 과정과 파니가 오르페우를 믿고 따르는 것이 결국 닿아 있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나요?


동석 : 저는 죽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특히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죠. 엄마한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엄청 했거든요. 죽음이라는 개념을 알았을 때 엄청 잠도 설쳤고요. 사실은 지금도 죽음을 생각하면 잠이 잘 안 와요. 내가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죠. 저는 미래사회가 궁금한데...(일동 경악) 그게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죽음을 인정해야, 그때 나의 목표나 삶의 이유가 정해지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요.


연연 : 작품 안에서 죽음을 생각했을 때, 파니핑크가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이 이대로 죽는 것이 두려운 것 아닐까 생각했어요. 결국엔 관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겠죠? 이게 파니핑크의 심적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일 텐데, '이대로 죽기 싫어'에서 '이대로'가 변하기 때문에 관을 던진 것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죽음이라기보다는 ‘이대로’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라고 생각.


이주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화제잖아요. 제목에 너무 공감했었는데, 언니는 이 제목을 공감하지 못하더라고요.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런데 저는 생각해보면 허무할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이건 사람들마다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자기부정, 세상을 부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다희 : 솔직히 저는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단지 비유적으로 느낄 뿐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끝나는 것,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으로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석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신기하기도 해요. 


학곰 : 저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은 안 해봤어요.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는 감정을 느껴봤지만, 그렇다고 끝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죽는 것보다는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크죠.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나요?

학곰 : 엔딩 크레디트에 영화에 참여한 모든 스태프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가장 인상 깊고 좋았습니다.


동석 : '과거는 너의 뒤에 있는 너의 모습이고, 미래는 너의 앞에 있는 너의 모습이야. 지금이 제일 중요해.' 이 대사가 가장 좋았어요.


연연 : 저도 동석이 꼽은 대사가 가장 좋았어요.


이주 : 둘이 행복한 장면들이 마음에 남아요.


일벌레 :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의 복도에 저마다의 표현방식이나 각각 다른 것이 혼재해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다희 : 오프닝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파니핑크가 솔직하게 대답하는 사랑과 외로움에 대한 말들이 되게 울림이 컸던 것 같아요. 외롭고, 사랑 받고 싶고, 부족한 모습들을 그냥 담담히 얘기하는 모습이요.


동석 : 일벌레와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아파트를 표현하는 방식이 흥미로웠고 좋았어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가 결국 사회, 지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삶을 살면서 운명을 실감했을 때가 있나요?

동석 : 음.. 저는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운명이라고 느껴요.


이주 : 우연한 것들에서 운명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문제들을 답해주는 것들을 일상에서 만날 때가 특히 그렇죠. 최근에 영화 <맘마미아2>를 보았는데, 그걸 보자마자 요새 생각해왔던 세계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어요.


다희 : 주변에 있어주는 사람들을 가만 생각해보면 모두 신기하고 운명이라고 느껴져요. 내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곁에 있어주는 그런 인연이 참 신기한 것 같아요. 


학곰 : 저는 사주를 믿어요. 사주에서 말하는 건, 결국 우리의 행선지는 정해져 있다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자잘한 것에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운명처럼 생각하는 모토 중 하나는 30세가 되기 전에 내 재능을 불태우자는 것이고요.(실제 사주를 보았는데 그런 결과가 나왔어요.) 그때부터는 이뤄놓은 것으로 살자고 생각과 다짐을 함께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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