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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Nov 07. 2018

당신의 사명감은 무엇인가요?

32.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나눈 이야기들

*느슨한 빌리지에서는 "외로움"이라는 키워드에 이어 "자아, 자기애"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기애" 3부작 중 두 번째 텍스트입니다. 




지난 발제에서 우리는 <파니 핑크>를 보며 자아, 외로움, 죽음, 그리고 운명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우리가 죽음과 운명을 이해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느꼈는데,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죽음이라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 믿음은 이런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닥쳐오지 않을 일, 혹은 만에 하나 오게 되더라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손쓸 수 없는 일에 대해 많은 시간을 소요하며 고민하기는 어려우니까. 어쩌면 나의 상상력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죽음을 구체적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끼거나 스스로 주의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신기했던 것이다. 


그러다 한 캐릭터가 떠올랐는데, 그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 얼마 전 보았던 그 뮤지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괴물을 만든 빅터의 집념이었다. 그리고 그 집념의 원천은 바로, 인류의 발전과 죽은 어머니에 대한 어긋난 사랑(이건 뮤지컬에서 추가된 설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빅터를 보고 있으면 그의 신념이 어딘가 어긋난 듯 보였는데, 바로 그 어긋남은 주변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듯했다. 주변을 믿지 않는 것, 그러니까 주변에 마음을 깊이 내어주지 않는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감에도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건 자기애와 큰 연관이 있는 태도일 것이리라. 


작품 속에서도 빅터의 조금은 이상한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주변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를 끝까지 믿어주는 친구부터 누나, 연인도 그렇다. 그들도 모두 빅터에게 도와주겠다, 사랑한다, 끝없이 애정 어린 말들을 전한다. 그러나 빅터는 그들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그가 오로지 신뢰하는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 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그는 자신만을 바라보며 괴물을 창조하여 주변 사람들을 모두 죽게 만든다.  


나는 이 뮤지컬의 줄거리가 원작 소설에서 많은 부분을 참고했을 거라 생각하고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택했는데, 아쉽지만 결론적으로 둘은 거의 다른 이야기였다. 뮤지컬은 원작의 큰 뼈대만 빌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르다 하더라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소설 속 생략된 부분들을 상상해보며 ‘자아와 죽음’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둘의 비슷한 지점,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면서 주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1도 없어!

소설은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흥분하여 누님에게 이 모든 사실을 쏟아내는 편지로 시작된다. 편지를 쓰는 자 ‘월터’는 외로움을 편지에 고백하며 말한다. 친구가 없어서,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서 만족스럽지 않다고 한다. 그에게 외로움과 방황의 원인은 친구의 부재이다. 취향이 같으며 계획을 인정해주고 때로 수정해줄 그런 친구의 부재 말이다.                    

안온과 사치 속에서 인생을 흘려보낼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는 제 인생길 앞에 부가 흩어놓은 그 어떤 유혹들보다 영예에 더 마음이 끌렸습니다. 아, 누군가 격려하는 목소리로 제가 옳다고 대답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용기와 결단은 확고하지만, 희망은 기복이 심하고 사기도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15쪽)
사랑하는 누님, 제가 낭만적으로 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친구의 부재를 쓰라리게 절감합니다. 제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온화하면서도 용감하고, 교양을 갖추었으되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저와 취향이 같고, 제가 세운 계획을 인정해주거나 수정해줄 만한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 친구라면 누님의 이 딱한 동생의 실수들을 훌륭하게 바로잡아 줄 텐데 말이지요! (17쪽)

이렇게 액자식 구성의 바깥에 있는 인물에게도 깔려 있는 기본 생각이 바로 ‘주변인에 대한 불만’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이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삶의 안정적 궤도를 달리다 미끄러지는 그 시기에서 느끼는 감정과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의 어긋난 자기애는 타인에 대한 불신을 부르고 잘못된 신념에 갇혀 파국에 치닫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립의 이유는 결국 빅터와 거리를 두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만 보일 뿐이다.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은 과학에 대한 잘못된 신념, 생명 창조에 대한 헛된 꿈과 같이 거대한 그런 것들보다 아주 작은 데에서 출발한 것일 수 있다. 혼자서만 고립된 채 자신만의 신념에 몰두하던 그는 결국 괴물을 창조한다.  


그렇게 홀로 창조한 그 괴물이 '파트너'를 요구하며 단란한 가족을 동경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잘못된 신념과 어긋난 자기애의 극단적 결과가 만들어 낸 괴물. 결국 빅터에게도 그리고 그가 창조한 괴물에게도 꽁꽁 틀어박혀 자기만을 억압하는 자아가 아니라, 밖에 나와 타인과 부딪히며 불완전한 나와 타인들을 인정하는 자아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 이 뒷담화는 자기애 키워드의 두 번째 텍스트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다희연연, 학곰님이 참여했습니다.




다희: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자기애 충만한 작품이어서 선정했어요. 그런데 책은 좀 다른 이야기더라고요(웃음). 그렇지만 뮤지컬이나 책이나 공통적으로 주인공 빅터가 주변 상황(혹은 인물)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은 유사한 부분이었어요. 자기 합리화랑 자기애가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해서 발제를 쓰게 되었습니다. 한편 주인공 빅터처럼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인물이 우리 시대에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에디터 동석은 있을 것 같긴 해요(웃음).


연연: 대개 과학자들이 그런 것 같아요.


학곰: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어쨌든 사이언스 해라?"


다희: 그런데 발제를 준비하면서 프랑켄슈타인은 당대의 과학을 비판하는 이야기라는 비평을 몇 보았어요. 신의 영역에 도전하면 안 된다? 하는 메시지. 약간 계몽주의 소설 같기도 해요. 피조물이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하면서 결국 문명화되는 것도 계몽주의와 닿는 것 같고.


연연: 프랑켄슈타인은 수업에서 지킬박사와 묶어 배운 적 있어요. 당대(빅토리아 시대)의 과학만능주의를 비판한 소설이라는 주제였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인간을 도덕적인 존재로 고귀하게 생각하던 도덕적 이상주의의 소위 젠 체하는 풍조를 비판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하더라고요. 인간의 본능보다 격식/매너를 하는 시대였는데, 프랑켄슈타인에서 빅터가 괴물을 만들고 그를 대하는 태도와 하이드와 지킬의 이중적인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이면을 보여주려 한 것이죠. 저는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창조주에 도전하는 모습이라 생각이 들어 ai가 떠올랐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나 장면이 있나요?


학곰: 괴물이 자신의 반려자를 만드는 걸 감시하는 장면이 재밌었어요. 그리고 그걸 눈치챈 빅터가 만들던 새 피조물을 박살 내는 장면.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두고 구태여 망치고 싸우는 게 '인간' 같았어요.


연연: 저는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라는 대사요. 빅터와 괴물이 추격전을 하다가, 괴물이 설전 중에 항변을 하는 장면에서 '내가 원래 악한 게 아니라 나의 요구를 계속 밀쳐내고 부정하기 때문에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라는 뉘앙스로 말하는데요.  정당한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상에서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왔을 때 누가 말 걸면 폭발하는 그런 느낌? 괴물도 사회성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그린 점도 흥미롭고요..


다희: 한편 빅터의 모습을 보면 텐션이 이 세상 텐션이 아니잖아요(웃음). 괴물을 만드는 연구를 보면서 뭔가 열정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 사명감이 있는 것 같았어요. 


평소 갖고 있는 사명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연연: 저는 써왔어요. (윤리적으로)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살기. 그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하는 거죠. 플라스틱 안 쓰려 노력하는 것, 페미니즘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생각해보니까 빅터는 창조하고 만드는 '+ 방향'의 사명인데, 저는 '- 방향'의 사명감으로 사는 것 같아요.


학곰: 어떻게 그런 사명을 갖게 되었죠?


연연: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해요. 생존을 하려면 시스템에 부역해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구나 생각이 들어서. 살아야 한다면 덜 부끄럽게 살아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요새는 서평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요.


학곰: (손을 내밀며) 하이파이브!


연연: 요즘은 박사보다 운동가가 점점 더 좋아지는 상태인데, 상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비중을 두자면 운동가로 기우는 중이에요. 그래서 바깥으로 보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내가 유명해지는 것도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열정이 뜨뜻미지근하네요(시무룩) 학 곰씨는요?


학곰: 당장은 내가 유명해지고 싶어요. 지금은 서평 콘텐츠를 만들고 키워서 대한민국 서평 문화 / 독서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좋은 책들이 묻히지 않고 발견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 표지 콘텐츠도 만들어 가는 것이죠. 하지만 이 기획들이 한약에 의존해서 만든 거라 지금은 힘에 부치는데... 네 힘이 듭니다. 그래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고 텐션으로 피조물을 만들고 외면한 것도 이해는 됩니다(웃음). 근데 빅터는 혼자 만들고, 혼자 끌어가려다 보니 실패한 것이라고도 생각해요.


다희: 친구들의 도움, 제안이 없지는 않았죠. 그걸 거절해서 실패한 것 같아요.


학곰: 그러니까 모두 서평을 씁시다(강-요). 다희씨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다희: 내가 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는 것, 해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sns 마케팅을 하다 보니 제가 무심결에 잘못 쓴, 잘못 광고한 문구/카피가 사람들에게 영향이 갈 수 있다는 것을 늘 자각하려고 노력해요.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하려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요즘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느빌에서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이 커뮤니티가 유명해지면 좋겠어요. 온라인에 쓴 글이 읽히고 그게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 일 아닐까요? 언젠가 느빌이 '쟤네 잘하더라'라는 소리를 듣는 유명한 그룹이 되면 좋겠어요. 


학곰: 쟤네 서평도 잘 쓰더라 싶은 서평도 써주세요.(질척)


셋은 프랑켄슈타인처럼 혼자 하다 망하지말고 빡세게 같이가자요. 라고 다짐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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