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김시덕, <서울 선언>을 읽고
*느빌의 책장의 발제-녹취를 개편했습니다!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11월의 주제는 [공간] 입니다!
- 11월 7일(수) 『서울선언』, 김시덕(2018)
- 11월 14일(수) 「초행」, 김대환(2017)
- 11월 21일(수)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2018)
- 11월 28일(수) 「고양이 케디」, 제다 토룬(2017)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한다. 몇 년 전 대학교에서 '문학기행'이라는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관광버스를 대절해 지역의 문학관, 유적지를 둘러보고 저녁을 먹은 후 술을 마시는 일정이었다. 초반에는 순조로웠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나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맛있게 삼겹살을 먹고 학생회가 준비한 프로그램(대강 MT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몸으로 말해요 같은 레크레이션이었을 것이다.)을 진행하기 위해 교수님들과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어색 돋는 분위기 속에서 임원들은 최선을 다했고, 와중에 흐름을 끊어가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녀석은 반주로 마신 술에 취해 마이 페이스로 행동했다. 그는 화장실을 가겠다고 방을 나섰고 비틀거리는 그가 걱정되어 근처에 있던 나와 A는 함께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나의 문학 기행은 끝났다. 취한 친구의 주사가 부활이었기에 나는 그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맨 정신으로 2시간 정도 그와 대화를 했다. 가까스로 그를 재우고 방으로 들어가니 술자리는 거의 파해있었고 살아남은 몇몇만 몇개의 원을 두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A와 나는 구석에 앉아 새우깡을 펴고 종이컵에 소주를 담았다. 그때 A가 건넨 첫 한 마디.
형. 형은 서울 사람 아닌 거 같아.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서 그곳에서 한 번도 벗어나서 살지는 않았다. 그날 처음 본 친구가 나의 신상정보를 알았을 리 만무하기에 왜 그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지방 억양을 진하게 쓰던 그 친구가 보기엔 나도 '서울말 네이티브'였을 텐데 말이다. 나는 물었다. 그걸 어떻게 구분하는 건데? 그러자 A는 이렇게 말했다.
지방 사람이면 알아.
A가 이렇게 대답한 순간. 나는 기시감을 느꼈는데 이 상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겪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2010년 가을, 노량진 대성학원 옥상에서였다.
함께 밥을 먹던 친구들이 있었다. 우린 점심에 도시락을 먹고 남는 시간을 옥상에서 보냈는데 학원밖으로 나갈 수도 없거니와 교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몇몇은 담배를 피우고, 몇몇은 캔커피를 마셨다. 그곳에서 우리는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가장 많이 나눈 주제는 '미래'였다. 재수학원 옥상의 전망은 꽤 좋은 편이었다. 노량진 역으로 전철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여의도의 쌍둥이 빌딩과 63 빌딩이 보였고, 날이 좋은 날엔 남산타워까지 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미래였다. '인 서울'을 위해 1년 더 공부를 하는 우리에게 서울은 아득히 먼 곳이었다.
여느 때처럼 밥을 먹고 옥상에 오른 어느 날이었다. 그날의 멤버는 광주, 구미, 김포, 대전, 그리고 인천(나)이였다. 우리는 사투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발단은 김포사는 친구가 자신도 모르게 사투리를 따라하면서부터였다. 광주 사는 친구가 "너희는 서울 사람 아닌 거 같아."라고 말했고, 그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고, "지방 사람이면 알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구미도 대전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포와 나만 그게 뭔데?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권 사람(?)은 알 수 없는 미묘한 순간들을 말했고 타지인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공유하며 키득거렸다.(나는 끝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서울'의 개념이 행정구역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감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 사람과 서울 사람 아닌 사람에 대한 구분은 주관적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이라고 다 서울 사람이 아니고, 서울에 한 번도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도 서울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울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경상도 출신의 선배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방 사람들한테는 수도권도 다 서울이에요.
고양시에 가더라도 우리 엄마는 서울 간다고 말하시거든.
나는 왕왕 '당신의 첫 서울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서울 출신이 아닌 사람에게 이 질문은 마땅히 할 말이 없어 뻘쭘한 상황에서 꽤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지도에 그려진 서울특별시는 참 작다. 이렇게 작은 곳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생활하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더불어 그 작은 곳에서 저마다 서울을 느끼는 감각이 다르다는 사실도 놀랍다.
고등학교 친구 B의 첫 서울은 강남이다. 부평에서 강남으로 광역버스를 타고 다니며 오랜 시간 영어회화 학원을 다녔다. 여차여차하여 지금은 경남 진주에서 일하고 있는 녀석은 서울에 올라올 때면 늘 강남부터 찾는단다. B에게 서울은 높은 빌딩과 복작거리는 거리, 꺼지지 않는 불빛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첫 서울은 노량진이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재수학원을 다니며 처음 가게 되었다. 각종 학원들의 메카, 청바지보다 츄리닝입은 사람이 많은 동네, 죄책감을 갖고 놀기에 최적화된 물가와 시설들 속에서 나는 서울을 느꼈다.
강남과 노량진에서 느끼는 감각의 간극은 꽤 크다. 같은 서울이라는 지명 아래 있지만, 물가도(?) 사는 방식도 사람들의 모습도 다르다. 그렇기에 B와 서울 이야기를 할 때면 어딘가 다른 세계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처음 발디든 서울의 모습이 너무 달랐기에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저마다 알고 있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번 주 함께 읽은 『서울 선언』도 이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박물관에서 틀어주는 '서울의 역사~ 백제의 위례성부터 서울은 수도로서~' 하는 식의 지루한 역사 나열이 아니다. 국사책에 나오는 어느 왕 때 서울이 어땠고 하며 굵직한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지도 않는다. 외려 보이지 않는 곳의 사람들, 역사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기억한다.
문헌학자 김시덕 선생은 직접 서울을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때그때의 단상과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기록했다. 하지만 단상과 과거사에 그치지 않고 부제인 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 걷기 2002~2018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울에 관련된 문헌을 함께 다룬다. 현재(김시덕 선생이 촬영을 하는 순간)의 서울과 사료 속 서울을 오버랩하며 서울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왔고, 그 과정에서 사라진 것과 남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울의 정체성과 역사는 바로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 『서울 선언』p23
<진짜 서울> <원래 서울>이 아니라는 낙인이 찍힌 <서울 사대문> 바깥과 교외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40여 년을 살아온 서울 시민으로서는, 사대문 안에서 오래 살아온 황두진 선생님과는 또 다른 감정을 품습니다. <왜 여기는 서울이 아니란 말인가?> <왜 저들은 여기가 서울이 아니라고 말하는가?>라는 소외감 또는 반감을 말입니다.
- 『서울 선언』p44
나의 서울은 지하철 역을 따라 조금씩 확장되어 왔다. 노량진역부터 시작해서 서울역, 종각, 노원, 종합운동장, 삼성, 군자, 오금, 선릉, 낙성대, 광운대... 그렇게 서울은 파편화되어 강북 / 강남 따위의 권역이라기보다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동'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강남역 앞 거리와 이제는 사라진 노량진 육교 앞 풍경과 석계역의 고가도로를 따라 걷는 길, 서울대 입구에서 낙성대로 올라가며 만날 수 있는 샤로수길도 하나로 묶을 수 없는 각각의 개체들이다. 오랜 시간 서울을 하나의 지역으로 볼 수 없고, 이것이 서울이다 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것은 순전히 내가 타지에서 서울을 오가는 이방인이기에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발췌한 위의 두 문장은 나의 피해의식(?)과 무지가 꼭 나의 탓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김시덕 선생이 걷는 서울도 파편적이다. 그의 걷기 코스는 외국인을 위한 서울 안내 관광코스와는 거리가 멀다. 아웃사이더 감성으로 번화가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맥락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그래서 재개발지구나 복개공사가 완료된 청계천, 문화재와 빌딩이 공존하는 풍납토성 등을 찾아다닌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그곳을 향유하기보다는 제한된 환경(대중교통과 걷기로 책을 만들어가기에 길이 막히거나 차로 갈 수 없는 곳을 포기하는 장면도 나온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것들. 이를테면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맨션의 표기가 맨숀에서 맨션으로 바뀌었다든지, 과거 점집으로 운영하던 곳에 투쟁의 말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든지 하는 디테일을 잡아낸다. 짧으면 10여 년, 길면 조선~백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가 촬영을 하는 시점의 서울이 어떤 맥락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과정을 담는다.
* 사진출처: 위키트리
근 10년째 오가고 있지만 서울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지하철 생활자이기에 그런 것일까. 언제나 '거쳐가는 곳'이고, '잘못 내려서는 안 되는 곳.'으로 인지한다. 그렇지만 '노량진'만은 내가 유일하게 편안하게 느끼는 서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노량진 수산시장도 사육신공원도 좀 만 더 내려가면 있는 성대시장도 가본 적이 없다. 다만 이제는 사라진 노량진 역 앞 육교와 그 근방의 풍경이 '나의 공간'이라는 안정감을 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2015년 10월 15일. 나는 노량진 역에 있었다. 철거일을 이틀 앞둔 그날 그곳에 찾은 이유는 어떤 그리움 때문이었다. 재수학원을 다니며 걸었던 거리이자, 공무원학원 티셔츠를 입고 전단지를 붙이던 곳, 3미터 정도 되는 큰 화살표 팻말을 들고 두 시간 동안 육교 위에 서 있던 기억. 나의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한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육교에는 사람들이 육교에게 남기는 많은 메시지들이 붙어있는 종이들에 가득했다. 대개는 고맙다. 그리울 것이다. 하는 내용들이었다. 나는 흔들거리는 육교를 몇 번이나 서성거리다가 내려와 벤치에 앉아 울었다. 날은 어두웠고, 지나가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눈물은 육교가 철거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육교에 엮인 추억과 사건,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도 노량진 육교의 철거, 아현 고가도로 철거, 서울역 고가 철거, 용산 재개발처럼 서울은 계속 변할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있던 것이 사라지고 없던 것이 생겨날 것이다. 감상적으로 없어지는 것을 한탄하고자 노량진 육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다시 맥락의 이야기다.
『서울 선언』에서 보이는 시선은 일관적이다. 지나간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다가올 것을 막지 않는다. 외려 현재의 흔적을 기록을 남기면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이라는 공간을 조사하고, 더 나은 서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쓴다. 핵심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어떤 사건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지금은 사라진 어떤 공간의 과거를 상상하며 그곳에 있었던 (지금은 지워진) 이야기와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현재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라지는 맥락을 조명한다. 그의 시선은 낮은 곳에 있고 따뜻하다. 목적과 결과보다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방점이 찍힌다.
우리가 사는 서울은 전쟁 후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지금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워진 이야기'들이 많다. 개개인의 추억과 썰로 남아있는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복원하는 작업은 굵직한 사건 순으로 배워온 우리네 역사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지금도 만들어지는 서울은 살아있다. 교과서에 실릴만한 큰 사건 없이도 서울은 지금도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나의 서울은 조각나 있다. 아마 20년 30년이 지나도 나는 서울의 일부만 나의 것으로 포섭하거나, 그때까지 계속 겉돌 것 같다. 나는 이방인의 시점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아주 조그마한 부분의 서울밖에 말할 순 없다. 그래서 궁금하고 알고싶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서울은 어떤 곳인지. 어떤 맥락을 품고 있을는지 말이다. I Seoul You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