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 맨>과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장을 낀 회사 사무실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하루 종일 그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 보면 문화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 저번 달(글을 적은 시점이 10월이었다.)은 특히 더 그랬다.
천안에는 영화관이 네 개가 있는데 그중 두 개가 CGV였다. 마침 나는 CGV에서 영화를 주로 보는 사람이고, 때가 좋게 두 개의 영화를 한 주에 하나씩 보았다. 하나는 이번에 개봉한 <퍼스트 맨> 또 하나는 4DX로 재개봉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다.
두 영화를 본 건 하나는 자의 또 하나의 타의였다. <퍼스트 맨>은 몇 달 전 트레일러 영상을 접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가 마침 ‘이동진의 라이브 톡’이 천안 펜타포트점에서도 생중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예매를 했다.
해리포터의 경우, 해리포터 덕후인 회사동기가 강제로(?) 예매를 했고 나와 역시 같은 회사동기이자 가숙사 룸메이트도 그의 손에 이끌려 역시나 같은 극장 4DX관에서 관람을 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저 한 주에 한 영화를 보았을 뿐이었다고 생각했으나, 영화를 본 후에는 이 흔치 않은 일-천안에서 연속으로 영화를 관람한-을 겪고 나서 글을 써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퍼스트 맨은 지금까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에 대한 이야기였다. 달에 처음 발을 디딘 사나이. 하지만 그는 딱 거기까지 기억됐다. 그의 인생이 어떠했는가? 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퍼스트 맨>은 철저하게 닐을 중심으로, 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 지를 관객에게 호소 또는 고백했다.
해리포터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이 나온 후 처음 영상으로 탄생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해리의 호그와트 1학년 시절을 다룬다. 계단 아래 작은 공간에서 집요정과 같은 처지였던 해리는, 11살 생일을 맞아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그리고 우리는 어린 해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중심인물의 삶이 영화의 중심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비슷해 보인다. 실제로도, 두 주인공은 비슷한 면이 있다. 닐은 자신의 딸을 잃었고 해리는 아기였을 때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누구에게 부모님을 잃는다. 그 사실은 서사 내내 주인공의 가슴속 한자리를 차지한다.
자식은 부모의 부두 인형과도 같다. 닐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너무나 어린, 자신의 죽음이 무엇인지도 인지 못한 체 삶에서 떠나간 그의 딸은 그에게는 불문율이 되었다. 이점에서 해리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이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기억은 할 수 없지만 기억하고 싶은 무엇들. 그리고 그 열망은 해리를 호그와트로 이끄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 둘의 삶은 과학과 마법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 닐 암스트롱은 우주로 가기 위한 열정이 엄청났던 사람이었다. 테스트 파일럿으로 일하다가 나사의 우주 프로젝트에 참가한 닐은 처음에 달에 가는 사람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의 곁엔 동료이자 경쟁자들이 있었고, 육체적 정신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했다. <퍼스트 맨>에서는 이것들을 거의 여과 없이 표현했다.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에서 우주에 대한 아름다움이나 잔혹함을 느낄 수 있었다면, <퍼스트 맨>은 좀 더 개인적인 것으로 그것을 이끌어와 한 ‘인간’이 ‘우주’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것인가를 보여줬다.
이에 비해, 해리는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그는 특별하고 특별하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걸고 악수를 청한다. 다이애건 앨리에서 첫 완드를 사는 장면에서는 그의 마법능력 또한 비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블린 은행의 금고에는 그의 유산이 수북이 쌓여있다. 닐이 차근차근 바닥부터 삶을 쌓아온 케이스라면, 해리포터는 금수저에 좀 더 가까워 보였다.
여기에서 현실과 상상의 거리가 아득히 더 멀어진다. <퍼스트 맨>은 실존했던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데, 그가 종사했던 나사와 참여했던 아폴로 프로젝트는 시대의 정점이었던 과학이 배경이 된다. 실존적인 인물이 실존적인 기술을 연마하니, 그 현실성은 스크린을 뚫고 나와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해리포터~>는 정 반대다. 소설 속의 인물이 비현실적인 ‘마법’을 쓰는 서사다. 판타지를 접하면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역할을 4DX 영화관은 충실히 도와주었다. 여담으로, 나는 4DX를 처음 관람했는데, 해리포터 1편이 그토록 역동적인 영화인 것을 그 날에야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의 우주 탐사는 얼마나 어렵고 이겨내기 힘든 것인 지. 영화 내에서 인류가 달에 간 것은 비행을 시작한 지 60년 만이라고 말한다. 인류 전체 역사를 돌이켜볼 때도 이토록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이룬 기술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해리포터의 세상에선 11살이 넘으면 누구나 지팡이를 들고 주문만 잘 외운다면 깃털을 띄울 수 있다. 상상으로 이루어진 마법세계는 확실히 현실보다는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쉬워 보였다.
두 영화에서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면 그것은 ‘비행’이었다. 닐은 그토록 원하던 달에 갔고, 해리는 그토록 원하던 마법학교에서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았다. 테스트 파일럿으로 일하며 수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나사에서도 불의의 사고로 동료를 잃었던 닐의 달 비행에는 달로 가기 위해 우주선의 경로를 짜 놓은 수식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 감춰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에 달에 도착하는 순간, 그것은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닐은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랫동안 간직해온 딸의 유품을 달의 크레이터 속으로 던진다.
포터는 마법 빗자루를 탄 처음 날, 맥고나걸 교수의 눈에 들어와 그리핀도르의 수색꾼으로 낙점된다. 여기서 그가 몰랐던 또 한 가지 사실. 해리의 아버지도 수색꾼이었다. 부자가 대를 이어 같은 위치에서 같은 행동을 한 다는 것 역시 그에게도 벅찬 일이었다. 해리 역시 첫 퀴디치 시합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팀에 승리를 안겨주고 영웅이 된다.
그랬기에 10월에 연달아 본 두 편의 영화는 다른 작용으로 즐거움을 줬다. 서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영화도 이렇게 이어졌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하기 힘든 것처럼 나의 속에도 지독한 현실성과 또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엉뚱한 환상성이 공존한다. 그래서 결국 영화를 보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나에게 스스로 질문한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아무래도, 나는 달에 가고 싶은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