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영화 <초행> 을 보고 마음 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다
* 느빌의 책장의 발제-녹취를 개편했습니다!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매주 수요일에 발제 / 월요일에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이 글은 공간 키워드의 두 번째 텍스트 영화 <초행>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 이번 모임엔 다희, 연연, 학곰, 이주, 해정 님이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내게는 부동산이랄 게 없지만요'를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해정: 영화 <초행>은 어떤 독립영화제에서 감독 GV(영화 관람 후 관객과 영화 관계자가 영화에 대해 이야기나누는 시간이 포함된 상영회)에 당첨되어 보게 되었어요. 시나리오가 완전히 정해지지 않고, 배우와 감독이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찍었던 영화래요. 저는 지영이가 차 창문에 대고 '나 너무 무서워!'라고 외치는 장면에 이끌렸어요. 근데 그 대사가 찍다가 나온 대사라는 말에 완전 놀랐었었어요. 배우나 감독이나 참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발제문 쓰기는 힘들었어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적으며 끝내야 할 것 같은데 이 영화 자체가 마침표를 찍지 않기 때문에 발제문 말미를 쓰기 어렵더라고요. 전에는 내가 아는 정보를 많이 넣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번에는 감상문에 가까운 것 같아요. 영화에 관한 정보는 제가 이전에 쓴 글([느빌시네마 2관 F9] 3. 끈질기게 보통일 삶)을 참고하시면 좋겠어요.
학곰: 저는 공간이라는 주제에 이 영화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징적인 공간으로 등장하는 도시가 인천과 삼척 두 곳이에요. 아마도 영화 속 인천 아파트가 청라의 아파트일 텐데 10년 전쯤부터 많이들 옮겨갔죠. 사람이 많이 없다가 이제는 좀 살기 시작한 신도시에요. 그래서 여러 번 이사하여 청라로 온 엄마가 지영이에게 "좀만 더 있어봐라. 여기가 빵 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서울로는 진입하지 못했단 생각과 지영이는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이요. 수현도 지방이기는 하지만 삼척에 집이 있죠. 두 사람이 결국 돌아갈 수 있는 어딘가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희미한 공간이라는 키워드를 보고 공감하기 어려웠어요. 제게 희미한 공간이라고 하면 어떤 연고도 없는 상황이 떠오르거든요.
연연: 저는 오히려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인천 지영이네와 삼척 수현이네를 방문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두 사람 모두 가족환경이 좋지 않잖아요. 지영의 엄마는 사회에서 말하는 세속적 기준에 맞추어 살길 바라고, 수현의 부모는 아마도 아버지의 폭력성 때문에 부부 문제로 따로 살고 있죠. 지영도 수현도 제 집에서조차 편안해보이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 마음 둘 공간이 없다고 느꼈어요.
다희: 수현과 지영의 가정환경 설정 덕에 오히려 우리 세대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영이처럼 수도권에 부모님 집이 있지만 그 안에 스스로 선택한 것이 없어 가족과 멀어지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공간의 첫 번째 텍스트인 책 『서울선언』과 달리 <초행>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느꼈어요.
학곰: 덧붙이자면 제가 말한 '돌아갈 공간'의 기준은 상속이었어요. 몸을 누일 최소한의 물리적 공간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건 개인적 배경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해정: 희미한 공간이라는 키워드는 정서적 차원에 집중해서 선택했어요. <초행>은 카메라에 집중해서 보면 흥미로워요. 카메라가 잡은 프레임 안에 또 이삿짐만 있잖아요. 그 바깥에 무언가 있을 것만 같지만 어두컴컴한 방에서 굳이 불을 켜지 않는 지영을 보면 무엇이 있든 없든 상관 없는 공간처럼 느껴져요. 지영에게 현재 머무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 같았어요. 사실 지영이 부모님도 지영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지영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이제 제발 그만 이사가자"고 말하는 걸 보면 지영이 부모네도 지영과 수현이처럼 모두 정착하지 못하고 이동 중인 것처럼 보여요. 안정적인 공간에 있지 않은 느낌? 언뜻 보면 한 도시에서 오래 살아온 수현이네는 이동 중인 두 가구와는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현이네 부모도 부모 간의 갈등 속 불안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이 굉장히 희미하다고 느꼈어요. 게다가 영화 전반에 침묵이 깔려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한 컷당 한 씬으로 찍은 데다 대사가 정해져있던 게 아니다보니까 침묵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그게 현실에서 마주하는 공백/침묵의 답답함을 잘 전달한다고 생각했어요.
연연: 제가 '영알못(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데 씬과 컷의 차이는 뭔가요?
해정: 씬scene은 시공간, 컷cut은 카메라 기준의 단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보통은 하나의 씬에 얼굴을 클로즈한 컷, 가슴까지 나오는 컷, 어깨에 걸치는 컷 등 여러 컷을 써요. 하지만 <초행>은 아파트 베란다 씬에서 보이듯 한 컷으로 계속 이어가죠. 그러면 대화의 공백, 침묵을 숨길 수 없게 되어요.
학곰: 그래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들었군요.
해정: 맞아요.
이주: 영화가 청년들의 삶을 아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인천이나 삼척처럼 고정된 공간이 아닌 두 사람이 계속 이동하는 도로 위 같은 공간에서요. 인천이나 삼척 모두 존재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졌어요. 수현과 지영이 그 공간에 애정이 없어 보여서요. 이삿짐만 쌓아두고 도대체 언제 이사할지 알 수 없는 전개도 방황하는 두 사람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요.
해정: 맞아요. 지영이네 부모 지하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했는데 딱지를 떼이는 장면이나 어디에 주차했는지 기억하지 못해 차를 못 찾는 장면들이 은유적으로 느껴졌어요. 집도 이사할 예정인데 차에서마저도 안정적이지 않다는.
이주: 한편으로 지영과 수현이 차를 왜 갖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두 사람 직업이나 상황에 딱히 자가용 차가 필요해 보이지 않거든요.
연연: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올해 비로소 운전할 수 있게 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동권을 자신이 갖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만족스럽고 좋아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는 택시로 이동할 때 느끼는 위협감이 있잖아요. 그런 데서 자유롭죠.
이주: 하지만 저는 서울에 살고 있으니까 주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차를 가질 생각은 못할 거 같아요. 영화에서도 지영과 수현이 계속 어디에 주차했는지도 모르고 딱지도 떼이고 그렇잖아요.
연연: 운전하는 사람으로서 초행길이 어려운 이유는 몇 차선을 타야 내 목적지로 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같은 이유로 운전 잘하는 사람도 초행길은 헤맨대요. 저는 그래서 티맵이 없으면 운전을 못해요. 티맵은 차선을 표시해주거든요. 반면에 일반 내비게이션은 어디로 가야할지는 알려주지만 어떤 차선을 타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봐도 그대로 못 가고 헤매고 말아요.
다희: 그런 면에서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길 잃는 모습이 좋은 은유처럼 느껴졌어요. 길을 알아도 제대로 가기 힘든 답답한 상황이 통상의 정답을 알아도 그대로 살 수 없는 청년들 모습과 닮았어요.
이주: 제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지영과 수현처럼 부모님에게 제가 만나는 사람을 소개하는 그런 시점이 올 거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현과 지영이 서로의 부모님을 만나는 장면을 보자 답답했어요. 두려운 상황이랄까요. 많은 딸 가진 부모님들이 그렇겠지만 저희 부모님도 지영의 부모님처럼 남자친구를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럴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하고요.
연연: 저는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한 결혼하지 않겠다는 주의에요. 그리 화목하지 않은 데다 보수적이어서 상대가 너무 괴로울 것 같거든요. 저도 그렇고요. 만약 결혼이 개인과 개인의 결합뿐이라면 다르겠지만요.
다희: 연연 말을 듣고 나니 이해되지 않던 수현이의 행동이 조금 이해가 되네요. 지영이가 생리 안 한다는 장면에서 물 마시러 가잖아요. 지영이 입장에서는 그걸 계기로 결혼에 대한 확실한 답을 듣고 싶을 수도 있는데 수현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가정사 때문에 고민되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렵네요.
연연: 아, 그러고 보니 저는 생리를 안 한다고 말할 때 수현이 반응을 보고 수현이를 왜 좋아하는지 처음에 이해를 못 했어요. 나중에 지영이가 자신의 부모님 집에서 상처 받고 수현이와 대화하며 추스르는 장면에서야 이해했죠. 자신의 의견을 밀어부치는 사람보다 답답한 사람이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고요.
이주: 맞아요. 저도 그 장면에서 이건 아니지, 싶었어요.
학곰: 그럼 어떤 반응이 적절한 건가요?
이주, 해정, 연연, 다희: 적어도 그 자리를 뜨지 않는 거요!
연연: 수현과 지영이의 부모님은 두 사람의 동거 사실을 알까요?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수현이 어머니 말을 보면 수현이네는 모르는 게 확실한 듯한데...
다희: 지영이 부모님의 경우는 동거에 대한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는 거 아닐까요? 수도권에 부모 집이 있는데 나가 살고, 수현이와 7년 만났고 그런 사실들을 종합해봤을 때 어림짐작으로 같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겠죠. 만약 연연 말처럼 결혼이 개인 간의 결합이라면 수현과 지영은 진작에 결혼했을 것 같아요. 서로 의지하고 있는 듯하고 이미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해정: 저는 삼척에서 지영이가 "나 너무 무서워!"라고 외쳤다가 바다가 너무 예뻐서 두 사람이 같이 셀카를 찍는 장면이 정말 좋았어요. 임신이든 아니든 결혼을 하든 아니든 두 사람이 어떤 결말을 맺든 두 사람은 함께 웃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이주: 그러고보니 영화 내내 두 사람이 길을 잃든 뭐하든 계속 같이 길을 걷고 있네요. 수현이 운전하면 지영이 네비게이션을 봐주는 것처럼요. 헤매더라도 말이죠.
다희: 수현과 지영이가 결혼을 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헤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둘한테는 두 사람밖에 없구나, 라는 느낌?
해정: 왜 감독이 굳이 그 시점에 마지막 배경으로 광화문을 선택했을까 생각해봤어요. (영화는 박근혜 탄핵 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찍었다.) 만약 박근혜가 탄핵되지 않았다면 지금 <초행>을 볼 때 느낌이 굉장히 달랐겠죠. 이렇게 모두가 거리에 나가도 사회가 변화하지 않았다는 우울감 암울함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모두 알 듯 탄핵되어서 그런지 막연한 낙관이 느껴져요.
지영과 수현이 어떤 정치적인 사명이 있어서 간 게 아니잖아요. 마치 주변에 일 있어서 온 김에 지나가듯 들르는 느낌이죠. 그런 부분이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거리에 나왔고 그래서 한 마음 한 뜻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학곰: 해정의 설명을 들으니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는 것이 맞는지 모른 채 헤매는 공간으로서 광화문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각각의 이유로 헤매고 있지만 함께 헤매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죠.
다희: 광화문에서의 엔딩이 확실한 결론을 내어주지는 않지만 잘 짜인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