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느빌사람들의 열띤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겠습니다.
* 발제문과 녹취록은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우왕좌왕 첫 모임을 만들고 나서, <제5도살장>을 첫 텍스트로 다루었다. 전쟁과 개인의 관계를 묻는 이 소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던 중, 책을 미처 다 읽고 오지 못한 다희가 물었다.
그런데.. 여성은요?
전쟁에 동원되는 것은 남성만이 아닐 테고, 그 속의 피해자도 남성만이 아닐텐데..
이 질문에 다른 에디터들은 소설 속에 묘사된 여성들을 급하게 떠올려보지만, 여기에서 답을 찾을 순 없었다.
<제5도살장> 자체가 지극히 군인으로 동원된 남성 개인의 파편화된 기억이기 때문에.
그래서 전쟁 속의 여성을 다룬 서사를 찾기로 했고, 그렇게 선택된 게 영화 <그을린 사랑>이다. 책방에서 책만 보란 법은 없으니까!
* 이번 모임엔 학곰, 박루저, 다희, 이주, 정미 님이 참여했습니다.
* 영화를 다 보고 온 사람들이 떠드는 지라, 스포가 마구마구 있습니다.
* 본 녹취록은 이전 게시글인 '발제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 참고 링크 : 그을린 사랑 파워 발제문
https://brunch.co.kr/@neuvilbooks/25
* 이 발제문 이전엔, 예전 게시글인 <제5도살장>에 대한 발제문을 읽고 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전쟁과 개인'이라는 점에서 이어집니다!
* 참고 링크 : <제5도살장> 파워 발제문
https://brunch.co.kr/@neuvilbooks/6
*이주의 발제문을 읽고
박루저 : 음 우선 발제문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 보자면, 생각해볼 지점들이 정리가 잘되었다고 생각해요. 읽으면서 영화 내용에 대한 정리도 다시 한번 되구요. 근데 발제자만의 시각이나 좀 더 새로운 문제제기가 없다는 점이 개인적으론 조금 아쉽네요.
발제문에서 ‘남성 감독’을 지적하는 것은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남성이 여성을 그려내는 것 자체로 문제 삼아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그 의도와 관점이죠.
이 영화에선 여성이 당한 폭력을 수없이 그려내는데, 그게 ‘남성’ 감독의 시각으로 담아낸 폭력적 시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영화를 보면 여성에게 가하는 남성의 폭력이 결국 강간 - 임신이라는 형태로 수렴되는데, 다른 선택을 했다면 오히려 남성 감독이 현실을 왜곡하고 숨기는 것처럼 보였을 거 같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런 불편함이나 폭력적인 편견 없이 여성을 재현했는가 하면, 또 완벽히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쌍둥이 중에 여성은 피해자인 엄마를 찾아 나서게 되고 남성은 가해자인 아빠를 만나게 되는 서사인데, 이 구도는 오히려 전쟁 속 인간이 겪는 복잡하고 설명할 수 없는 비극을 여성-피해자 남성-가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로 단순화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거든요.
근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이 남성의 전유물처럼 되어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것도 솔직한 현실반영이라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으 모르겠네요. 그래서 페미니즘 관점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비판한다면, 어떠한 점을 지적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이 부분은 아직 판단이 잘 안돼요.
이주 : 하지만 제가 이 영화에서 여자의 모습이 어떻게 드러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한 것은 물론 남성 감독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나왈로 형상화되는 여성의 모습이 실제 진짜 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전반적인 여성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직접 학살자를 죽이거나 감옥에 수감되고 하는 일들을 겪는 것이 사실 보편적이지는 않잖아요. 때문에 특정한 한 사람(이자 여성)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영화를 가지고만 전쟁 속의 '여성'을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이야기를 넣었어요.
다희 :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기존의 틀에 박힌 시선으로 여성을 그려낸 불편한 부분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딸이 엄마를 찾으러 가는 와중에 만난 현지 여성들은, 완전히 문명화되지 못한 여성들로 그려져요. 반면에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의식 있는 선택을 하는 여성은 ‘도시’에서 ‘배운 여성’인 주인공과 그 딸로 매우 소수구요.
그래도 큰 틀에선 저도 딱히 영화를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전쟁 중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강간’이 되는 사실을 반영하면서도, 구체적인 장면 묘사로는 이어지지 않잖아요. 그런 장면들은 감독의 고민들이 잘 보이는 부분이었어요.
박루저: 맞아요. 영화 곳곳에 감독의 고민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아마 그래도 누군가에겐 분명히 불편한 지점들이 있긴 할 텐데, 그래도 이렇게 고민을 거쳐서 나오는 현상 자체는 매우 바람직한 것 같아요. 특히나 최근 한국에서, 이제는 서사 속에서 여성을 다룬다는 게 매우 예민한 문제가 되면서, 많은 남성 작가들이 그냥 안해버리고 마는데, 사실 그건 안전할 진 몰라도 게으른 태도죠. 사회적 소수자를 서사에서 지워버려선 안되고, 감수성을 높이고 고민을 해서 담을 노력을 하는 게 맞다고 봐요.
다희 : 영화의 시작부터 그런 고민이 보였다고 생각해요. 전쟁서사라고 했을 때, 전형적으로 여성을 그려내는 방식을 분명히 피하고 싶었던 것 같고요.
영화의 첫 장면이 일반적으로 전쟁으로 표상되는 폭탄, 무기, 전투 장면 등이 아니죠. 미혼 여성의 임신과 애인과의 도주, 그리고 그것을 처단하는 여주인공의 가족들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돼요.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비난받는 것으로 시작되는 장면은 어쩌면 ‘여성’으로서의 삶이 전쟁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지난 소설 <제5도살장>에서도 전쟁 자체가 개개인의 체험에 있을 테고, 때문에 전쟁의 의미는 광범위하다고 한 기억이 나는데요, 이 맥락과 통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감독은 의도적으로 전쟁 속 '여성'의 모습을 말한 거죠.
학곰 : 근데 한편으로는 어떤 식의 서사도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이건 요즘 제가 하는 고민이랑도 겹쳐요. 요즘 제가 습작을 하면서 느꼈던 건, 결국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20대의 남성이 보고 듣고 느낀 정도의 시야에서 나온 것밖에 쓸 수 없다는 거예요. 어쭙잖게 여성의 입장에서 뭔가를 쓰는 것은 외려 실례죠. 그런데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다고 하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서사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게 돼요. 함부로 쓸 수가 없으니까요.
아마 다른 작가들도 이 정도 고민을 할 텐데, 그래도 결국은 소수자를 삭제시키면 안나온대로 욕먹고, 나오면 또 나온대로 욕먹게 되는 거죠. 이건 표현의 주체가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곰 :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장면은, 마르완이 수영장에서 가해자인 아들을 알아보는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이때 그 아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해요. 가해자는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가해자는 기억해서도 안되고, 기억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아마도 개인에게 남는 전쟁의 기억들이 결국 피해자의 것으로 밖에 구성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거 같은데,
그런데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없어지는 게 진짜 전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후적으로 기록은 모두의 상처의 형태로만 남는 것이 전쟁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도 결국은 그을릴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결말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으로 마르완의 시점으로 본 전쟁이긴 해도, 가해자의 대다수는 남성이에요. 불평등하게 성별 간의 힘의 발란스가 무너져있는데 피해를 받은 사람이 모두 사랑하고, 평화롭게 용서를 하면서 끝내는 것은 조금 아쉽네요.
박루저 : 분명 아쉬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거 같아요. 그런데 용서의 주체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영화에서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면,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곤 매우 이분법적으로 갈릴 수밖에 없어요. 자기 가족들이 다 종교 때문에 눈 앞에서 다른 종교에게 무참히 죽어나갈 때, 여기에 대해선 결국 증오나 용서(사랑) 두 선택지 밖에 갖지 못할 거 같아요. 이 죽음은 결국 자신에게도 언제는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주인공의 선택은, 증오를 거친 뒤에 용서(사랑)로 가게 되는데, 이 증오를 거친 사랑이 결국 '그을린 사랑' 아니었을까요.
다희 : 저랑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네요.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을린 사랑이라는 제목이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영화를 본 후에는 잘 어울리는 번역이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주인공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버스의 폭발 사고였죠. 이 사건 이후, 삶 전체를 통해 나타나는 전쟁의 후유증은 정말 불에 그을려서 새까매졌다고 비유하기에 적절한 것 같아요.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전쟁의 피해가 신체 훼손이나 트라우마 등 단편적인 상상인데, 영화는 구체적인 삶 전체를 통해 발현되는 전쟁의 피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그런 점에서는 이주님이 발제에서도 지적했듯, 이 영화를 모성애나 위대한 사랑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게으르고 1차적인 해석인 것 같아요.
이주 : 맞아요. 제가 아쉬웠던 것은 물론 감독이나 작가가 이 이야기를 '어머니의 사랑'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주인공이 여자이고 스토리상 어머니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할 지라도 몇몇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머니의 사랑'이나 '용서로 모든 것이 끝난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에요. (사실 어머니라고 해서 다 모성이 있거나 관대한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가 연극을 봤었는데, 연극은 영화보다 훨씬 길고 영화에는 담지 못한 부분도 많이 나오고, 설정이 다른 부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연극에서는 왜 이런 결말이 되었는지를 좀 더 이해하기 쉬웠는데, 영화에서는 결말이 너무 급격하게 전개가 되고 끝나는 느낌이라서 아쉬웠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