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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an 12. 2019

이래도 '성장'하고 싶어?

데이미언 셔젤 <위플래쉬>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1월의 주제는 [성장]입니다!


*1월 주제 [성장] 업로드 일정표

- 1월 9일(수)  「위플래쉬」, 데이미언 셔젤(2014) - 지각하였습니다

- 1월 16일(수)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뮤리얼 스파크(2018)

- 1월 23일(수)    미정

- 1월 30일(수)   『폴리나』, 바스티앙 비베스(2018)



2019년 1월이다. 연초를 맞이하여 많은 이들이 올해의 목표를 되새겼을 것이다. 지난 한해동안의 수고로움을 자축 또는 반성하던 일도 이제는 전부 뒤로 하고 다시 출발선에 선 것이다. 이번 한 해는 또 어떤 '성장'을 이루어낼 것인지, 누군가는 설레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걱정되는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1월, 느슨한 빌리지에서는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첫번째 작품은 영화 <위플래쉬>다. 2015년에 개봉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작품으로 두 주인공인 앤드류와 플래쳐의 행동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광기 넘치는 캐릭터와 몰입감 있는 전개에 많은 이들이 극찬한 작품이기도 하다. <위플래쉬>에서 '성장'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미친 선생과 더 미친 제자


앤드류는 드럼을 좋아하지만 소심한 학생이다. 집안에 뛰어난 음악가가 있다거나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음악을 업으로 삼은 부모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주변의 가족들은 음악을 지도해주거나 실력을 인정해주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또한 어떻게 말하면 유전적인 재능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플래쳐 교수의 눈에 들어 그의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플래쳐는 정말 지독한 교수자이다. 약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박자에 맞추어 정확한 연주를 요구한다. 또한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할시 어떠한 인격적 모욕도 서슴지 않으며 연주자들끼리를 계속해서 경쟁시키며 심리적 압박을 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교수법에 대해서 자신이 잘못되었다거나 미안하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다. 한계를 깨기 위한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앤드류가 이런 플래쳐의 모욕적인 지도법에도 점점 더 성장한다는 것이다. 앤드류는 손에 피가 날 때까지 연습하고 드럼 연주에 대한 광기를 보여준다. 그것이 자신을 갈아먹는 것이라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폭력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앤드류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앤드류는 플래쳐를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드럼에 대한 열정도 있었겠지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또는 그를 이기고 싶어서 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결국에는 플래쳐를 넘어서거나 대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실력을 키워서 연주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오기 같은 것이리라. (물론 나라면 이런 교수 밑에서는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것 같지만 월급 주면 버틸 수도 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났던 여러 교수자들에게도 이러한 폭력은 알게모르게 존재해왔다. 어릴 때는 부모님에서부터 학교선생님, 교수님,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사수나 팀장님 등이다. 잘 할려면 그만큼 노력해야한다는 성장의 프레임 속에서 노력을 강요받는 것이다. 그 강요가 어느 정도의 강도와 형태로 드러나느냐에 따라 좋은 교수자이냐 끔찍한 교수자이냐가 결정될 뿐이다.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는 대게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성장해야만 하나요?

하지만 모든 성장은 대부분 고통을 수반한다. 어릴 때는 실력이 타고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십대 후반이 된 지금은, 실력(또는 성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은 만들어지는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뛰어난 교수자에 의한 것이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것이든 말이다.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기간동안의 갈고 닦음이 있었음을 보면서 깨닫은 것이기도 하고, 실력이 있더라도 그것을 세상에 알리고 어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앤드류의 경우는 좀 더 낫다. 스스로가 위대한 드럼 연주자가 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플래쳐를 넘어서는 오기와 열정과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성장하고자 하는가? 왜 이토록 성장을 쫓는 것인가.


솔직히 성장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든데, 그래도 뭔가 성장을 해야할 것만 같다. 그래서 고민은 끝이 없다. 이미 육체적인 성장은 끝낸지 오래고 이젠 노쇠해져가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사회적으로는 가르침을 베풀기보다는 성장을 해야하는 시기이다. 성장을 안 할 수 없다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을 성장시킬 것이냐와 스스로 성장에 투자할 수 있는 노력의 범위를 고민해보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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