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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an 11. 2019

우리는 함께 걸을 때 가장 예뻐

40-1. <런던 프라이드>  뒷담화

* 느빌의 책장의 발제-녹취를 개편했습니다!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이 뒷담화는 혐오와 연대 키워드의 네 번째 텍스트 <런던 프라이드>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박루저, 다희, 이주, 해정님이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어쭙잖게 '평등'을 들먹여 본다>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neuvilbooks/273

         





<런던 프라이드>를 보다


박루저 : <런던 프라이드>는 1년 전에 봤었어요. 사실 영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는데, 영화마다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때 <런던 프라이드>가 제게 남긴 이미지는 ‘연대할 수 없는 사람과 연대하는 이야기’였어요. 이번에 다시 보니까 좀 뻔하고 오글거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인상적인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저한테 제일 어려운 건, 발제문에도 썼지만, ‘선’이에요. 성소수자 혹은 그 외에 소수자를 마주했을 때, 옳은 태도가 뭔지 늘 헷갈리거든요. 그 선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른 것 같고요. 그래서 ‘편견 없이 대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위축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광부의 부인들은 위축되지 않고 선을 막 넘기도 하잖아요. ‘저런 질문까지?’ 싶은 말들을 많이 해요. 편견 섞인 질문들을요. 영화에서 성소수자들도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고요. 그런 점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광부의 부인들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죠. 그게 쉬우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질문하고,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위축되는 것보다 당사자에게 감히 물어보는 것. 그런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이주 : 영화에 등장하는 게이들이 너무 멋있었어요.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도 그렇고. 그리고 영화 중간에 게이들을 조롱하는 신문 기사가 나왔는데 ‘뭐라고 불리든 그걸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바로 우리야.’라면서 오히려 그걸 하나의 유희로 받아들이잖아요. 그게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광부와 성소수자의 연대에서 광부가 성소수자에게 먼저 다가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잖아요. 이때 게이와 레즈비언이 먼저 광부에게 다가갔다는 점도 멋있었어요.      


다희 : 저도 영화를 재밌게 봤어요. 준기가 예전에 <빌리 엘리어트>*와 함께 얘기했던 영화였는데, 시대상황이 같은 이야기여서 더 흥미롭게 봤어요. 광부와 게이의 연대라는 게, 정말 준기 말마따나 한남과 페미니스트가 연대하는 느낌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성소수자들이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저는 마을 사람들이 참 멋있었어요. 특히 마을의 여자들이 멋지더라고요. 영화에서 아쉬웠던 건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었다는 점이에요. 다만 각 캐릭터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기보다, 캐릭터들은 영화의 어떤 역할에 충실하다는 인상이었어요.   


*느슨한 빌리지가 얘기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궁금하다면.



해정 : 저도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전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약간 스포츠만화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뭔가 그 특유의 오글거림(?)과 에너지가 느껴지더라고요...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가장 마지막에 있었던 행진 장면이었어요. 성소수자들이 먼저 내민 연대는 엄밀히 말하면 실패한 셈이에요. 그들의 적극적이었던 정치적 행보는 실패했어요. 축제에서 주최자는 주인공들에게 ‘정치적인 메시지는 no!’라고 얘기도 하고요. 그것 때문에 아웅다웅 하려는 찰나에 광부 마을 사람들이 탄 버스들가 들어서는데, 그때 뭔가 마음이 흥분되더라구요. ‘성소수자 축제’에 성소수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성소수자와 함께 ‘성소수자 축제’를 즐기는 다른 사람들이 있게 되었다는 것. 그 부분이 좋았어요.        



함께 걸어서 가장 예쁜 사람들




역사를 엿보다


이주 : 지금은 프라이드런던이 축제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잖아요. 저도 영국에 있었을 때, 마침 프라이드를 한다고 해서 런던에 구경을 하러 갔었어요. 그때 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행진을 하고 구경온 사람들은 우비를 쓰고 구경했었어요. 그들도 처음에는 투쟁을 위해 퍼레이드를 했을 텐데, 막상 그때는 이런 부분들을 잘 생각하지 않았어요. 축제가 지닌 ‘투쟁’의 성격을 이 영화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박루저 : 영화에서 가장 먼저 마크가 등장해요. 위층에 사는 사람이 마크한테 ‘경찰 부를 거라고’ 얘기하면, 마크는 ‘얼른 경찰 불러’ 얘기하죠. 그리고 마크는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일상이었구요. ‘내 정체성을 지키려면 운동을 해야해!’라는 비장한 태도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무브먼트스러운 삶인 것 같았어요. 그게 저한텐 인상적이었어요. 


영화에서 나오는 연대와 행진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성소수자 축제는 지나치게 정쟁화되어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축제를 하려는 사람에게도, 그 축제를 막으려는 사람에게도요. 일상의 투쟁이 이어진 느낌이라기보다, 부자연스러운 느낌이에요. “이건 운동이고, 무브먼트야.”라는 비장한 태도로 임하는 것 같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필요 이상의 제스처를 취하게 되는 것 같고요. <런던 프라이드>처럼 되려면 많은 역사와 시행착오들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일상과 운동이 더 가까워 질 때 한국의 퀴어축제도 영화와 같은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다희 : 영화를 보면서 ‘쌓이는 역사’를 확인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는 그만큼 ‘쌓인 역사’가 없잖아요. 이어지는 다리 없이 뭔가를 건너 뛴 듯한 느낌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서 무브먼트는 준기 말처럼 부자연스럽게 표출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금 씁쓸했고요.      


이주 : 광부 마을에서 술 먹고 놀고 하다가, 과거에 배우였던 게이가 춤을 추잖아요. 그 모습을 보고 광부 마을의 남자들이 “나도 춤을 배워야겠어.”로 바뀌어요. 그 모습이 좋아보였어요. 남자는 춤을 추면 안된다는 가부장적인 권위를 내려놓고 게이들과 여자들과 동화되는 모습처럼 느껴졌거든요. 성소수자와의 연대가 남녀 간의 문제도 조금이나마 해소시키는 인상이었어요. 연대로 사회가 조금씩 바뀌는 느낌? 연대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인 것 같아요. 




연대를 엿보다


해정 :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연대는 가능할까요. 저는 어떤 문제에 대해 ‘당사자만 얘기해야 해’라는 분위기가 연대를 막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박루저 : 어떤 문제에 있어, 관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당사자성이라는 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어떤 사안에 대해 ‘당사자’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요즘의 우리나라에는 ‘당사자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당사자든 비당사자든,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 같고요. 당사자가 나뉘어져 있으니까, 각각의 당사자들끼리는 대화를 못하게 되는 거죠.


다희 : 트위터 같은 곳에서도 느껴지는 것이 모든 걸 지나치게 세분화시킨다는 느낌이에요. 이게 아니면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이걸 안하면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당사자 안에서도 계속 분파(?)가 나뉘고, 같은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다른 당사자를 혐오하기도 하죠.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한 사람이 게이를 혐오하는 문제처럼 말이죠.     

 

이주 : 왜 그럴까요. 붕당 정치의 역사 때문인가요? (웃음)      


다희 :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온라인 상에서 얘기를 나누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터넷인만큼 논의가 더 과열되는 것 같아요.      


해정 : 영화에서 저에게 가장 신기했던 인물은 마크였어요. 뉴스를 보고 ‘내가 저들을 도와야겠다. 저들은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으니까!’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저는 까마득할 것 같거든요. 내가 만약 마크였다면, 나는 당장 내 문제만으로도 버거웠을 테니까. 그래서 마크가 참 감수성이 남다른 선구자 같다고 생각했어요.      


다희 : 저는 연대의 출발은 ‘내가 소외당했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내 경험이 타인에게 이어질 때, 그때 연대가 시작될 수있는 것 같아요.     



경험이 이어질 때 가능한 연대



이주 : 대부분의 운동들이 핍박받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핍박받지 않는 사람들은 사실 운동을 할 필요성을 못느끼잖아요.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기도하고.      


박루저 : 그럼 연대가 가능했던 건 대처 덕분인가? (웃음)


다희 : 그렇다면 같은 맥락에서 촛불시위도. (웃음)      


이주 : 외부에 큰 적이 있어서! (웃음) 




박루저 : 아까 세분화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저는 그거에 대한 피로감이 커요. 예전에 페니미즘 작가들의 논평을 모은 책을 읽었어요. 한 세대 전의 페미니스트들이었어요. 하리수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페미니스트들이 하리수에 대해 거의 모독에 가까운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여성성을 왜 망치냐’면서요. 그 논리들은, 페미니즘을 인권이나 평등의 차원에서 외치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소수자의 인권을 짓밝으며 내는 목소리에 가까웠거든요. 정말 그들이 성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면, 저는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그때보다 더 입장들이 세분화 되어있고 온도차가 심해져서,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하는지 늘 선택해야 해요.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등 돌리기도 쉬워졌고요. 연대가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다희 : 그런 것들을 생각해봐도 여기서 나오는 퀴어퍼레이드 같은 운동은 정말 필수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퀴어 퍼레이드에서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다른 젠더 특성도 인정을 해주는 것이잖아요. 결국 궁극적으로는 여러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괄하려는 태도가 전제인 운동이죠.

   

이주 : 퀴어 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녀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고까지 생각했어요. 퀴어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감수성으로는, 남녀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것 같아서요.     


다희 : 퀴어를 제외하려는 태도들은 아쉬운 것 같아요. 같이 가든, 전제가 되어서 출발을 하든 해야 할 것 같아요.


런던 프라이드의 주인공들, 퀴어



박루저 : 저는 요즘에 핍박받는 사람들 볼 때보다 오히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돈을 아끼려는 모습이 너무나 애잔하더라구요. 훨씬 생생하게 슬픔을 느껴요. 이 영화에서 광부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대부분 돈이 없고 늙은 사람들이었어서, 그래서 그 연대가 훨씬 와닿았던 거 같기도 해요.

      

해정 : 박루저가 할아버지 얘기를 하니까, 등장인물 중에 클리프가 생각나네요. 부인 헤피나에게 커밍아웃을 했잖아요. 클리프가 마지막에 함께 퍼레이드를 하는데, 쭈욱 둘러봐요. 요즘 젊은이들(?)의 얼굴과 걸음걸이를. 그때 기분이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그 사람의 기분이 가늠이 안 되었어요. 커밍아웃 했을 때, 할머니의 대답과 태도도 굉장하다(?)고 생각했어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침묵하고 있었던 그 시간이, 제가 알 도리가 없는 시간 같았어요. 두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요.      


다희이주 : 맞아요. 해리포터 선생님이 너무 멋있었어요.



뒷담화의 결론은 클리프와 헤피나는 멋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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