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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an 17. 2019

선생이 아닌 '전성기'

42. 뮤리얼 스파크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1월의 주제는 [성장]입니다!

*이번 녹취는 짧게 진행되어 발제와 함께 업로드합니다.


*1월 주제 [성장] 업로드 일정표

- 1월 9일(수)  「위플래쉬」, 데이미언 셔젤(2014) - 지각하였습니다

- 1월 16일(수)『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뮤리얼 스파크(2018) - 저도 지각하였습니다

- 1월 23일(수)    미정

- 1월 30일(수)  『폴리나』, 바스티앙 비베스(2018)



은사와 교실이데아


성장기에 섭취하는 영양이 나이 들어서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비단 육체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귀가 열려있고 자신의 것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기에 주변 사람들(특히 어른들)은 정신의 성장에 퍽 큰 영향을 준다. 

나는 초중고 12년과 대학 4년, 그리고 재수 1년을 비롯해 퍽 많은 학원교육을 받았다. 다시 말해 인생의 절반 이상은 누군가한테 배우며 자란 셈이다. 수십 명의 선생들이 나를 가르쳤고 그들 덕에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을 게다. 나를 스쳐간 수많은 선생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대개는 나에게 힘을 쥤거나, 상처를 준 이들만 가끔 떠올릴 뿐이다.


브로디 선생은 이런 캡틴은 아니다.  * 다음 영화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기억에 남는 선생'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제목과 도서 소개만 읽고 이 책을 골랐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발제가 다가온 후였다.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캡틴! 오 마이 캡틴!" 하는 장면은 안다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감동을 바랐지만 진 브로디 선생은 나의 예상보다 인간적(?)이었고 덕분에 뻔한 글은 나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진 브로디 선생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보수적인 학교 '마샤 블레인 여학교' 초등부 교사다. 그녀는 학교의 주입식 교육을 혐오하고 커리큘럼을 벗어나 자신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을 학생들에게 전한다. 브로디 선생에게는 그녀를 따르는 여섯 명의 학생(모니카, 메리, 제니, 샌디, 유니스, 로즈)이 있었고 학교에서는 그들을 '브로디 무리'라고 불렀다. 브로디 선생은 아이들에게 정치, 문학, 예술, 고전, 역사 등 자신이 믿는 소중한 가치들을 가르치며 그들을 '크림 중의 크림'(나는 진짜 중의 진짜 정도로 이해했다.)으로 키워내려 한다. 브로디 무리는 브로디 선생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크림 중의 크림 후보들이었고 초등부를 떠나 진학을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선생과 교류한다.


여기까지 읽으며 나는 두 가지 프레임을 떨칠 수 없었는데 하나는 '은사 프레임'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실 이데아 프레임'이었다.(두 용어는 발제자가 임의로 명명한 단어입니다.) 먼저 은사 프레임은 선생 = 은사님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때의 선생은 선생'님'이 되어 학생의 성장과 인생의 깨우침을 이끄는 조력자다.


교육(education)이라는 단어는
밖을 의미하는 ex의 어근 e와
이끈다는 뜻의 duco에서 나온 단어야.
밖으로 이끈다는 의미지.
나에게 교육이란 학생들의 영혼에 이미 있는 것들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거야.


브로디 선생은 스스로를 은사를 자처한다. 학생들을 걸가이드(영국의 걸스카우트)나 하는 후진(?)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크림 중의 크림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멋진 시들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올곧은 정신과 파시즘(?), 성(性)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는 치명적인 매력을 쏟아낸다.

초등부 어린이들을 현혹하는 브로디 선생은 전략적으로 '교실 이데아 프레임'을 사용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가사처럼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를 외치며 기껏해야 학생들을 '현모양처'로 만드는 공교육이 아닌 진짜로 인생에 쓸모 있는 것들에 대해 설파한다. (물론 시대적인 배경 탓일까 브로디 선생이 찬양하는 가치들은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것들이다. 수학이나 과학, 운동은 걸가이드 애들이나 하는 것이고, 정말로 중요한 건 예술과 고전과 종교와 문학!)


여기까지 읽는다면 브로디 선생이 故로빈 윌리암스 선생님처럼 캡틴이지 아니한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그녀를 '인간적'이라고 말한 까닭은 바로 전성기라는 단어 때문이다.



전성기


Photo by Silver Screen Collection/Getty Images - © 2013 Getty Images

진 브로디 선생은 본인이 바라듯 은사로 남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당대 평균의 사람들보다 높은 수준의 텐션과 자신감을 유지하며 사는데, 그 원동력은 '나는 지금이 전성기이기에'라는 자기 확신에서 나온다. 하이텐션은 주변 사람들에게 불꽃같은 열정과 동기부여를 주는 한편 따라갈 수 없는 피로감을 동반한다. 그녀의 텐션은 학교 측 특히 교장과 불화를 만들었고 책잡힐 거리가 생기면 언제든지 쳐낼 생각을 할 정도로 악화된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마따나 보수적인 학교에서 브로디 선생의 존재는 튀어나온 못 이상이었을 것이다. 허나 선생은 마샤 블레인 여학교 외에 다른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다. 진보적인 성향의 학교를 고를 수 있음에도 학교와 마찰을 빚으며 남아있던 까닭은 추측건대 자신의 전성기 때문일 게다.


브로디 선생은 스스로 잘 알고 있던 것 같다. 자신이 지향하는 바와 극명히 다른 환경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속된 말로 관심종자였고 스포트라이트가 필요했다. 브로디 무리의 아이들의 추종은 선생을 우상 같은 이미지로 포장시킬 수 있었고 로이드(미술 선생)와 로더(음악 선생)와의 스캔들 역시 그녀를 학교 핫이슈로 자리 잡게 했다. '학생들의 영혼에 이미 있는 것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다는' 멋진 비전 전성기라는 워딩 그리고 높은 텐션이 삼위일체를 이뤄 센세이션 한 인물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특이한 캐릭터 구성은 내적 성장을 계속해서 이룰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자존감 또한 높을 확률이 크다.  자존감이 높은 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동기에서 행동을 선택한다. 그러나 공식처럼 일관되게 들어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브로디 선생은 타인의 관심과 시선을 즐기며 갈구한다. 로이드 선생의 집에 모델을 서는 제자가 그림이 브로디 선생님과 닮았다고 말하면 그 이야기를 재차 확인하고 듣기를 반복한다. 그녀에게는 듣고 싶은 말, 어떻게 평가되었으면 하는 모습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면서도 평소에는 정신이 깨인 선생의 역할을 지켜간다.


중등부에 진학한 제자 로즈와 샌디에게 선생을 그리스어를 배운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한 명이 배우고, 집에 와서 배운 사람이 가족들에게 가르치는 교수법(?)을 말하며 제자들에게 배우는 선생의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요소가 개입한다. 바로 그녀의 소명이다.


여기서(학교에서) 밀가루 반죽을 부풀릴 효모 역할을 해야지.
아직 말랑말랑한 나이의 소녀를 내게 주면
그 애는 영원히 내 것이 될 거야.
나를 핍박하는 무리는 절대 성공할 리 없어


브로디 선생이 생각하는 크림 중의 크림은 바로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제자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특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선생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계속 성장해야 했다. 나쁜 말로 아이들이 머리가 크면서 정신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힘은 점차 떨어진다. 브로디 무리의 리더로서 본인이 계속 성장하는, 앞으로도 자신을 믿고 따라올 수 있게 하는 모습을 어필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면 쓴 자아(멋진 선생님)와 듣고 싶은 자아(핫이슈, 크림 중의 크림)는 온전히 핀트가 맞지는 않았다. 나는 이런 자기모순적인 모습이 브로디 선생의 인간적인 면이라고 생각했다. 교묘하지만 솔직하고, 확신에 차있지만 의심스러운 이중적인 모습. 그 와중에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발버둥(?)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소개를 하자면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과거의 사건과 제자(특히 샌디를 중심으로)들의 회고를 번갈아 배치한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 어쩌면 초등부에서 열여섯 열여덟, 가정을 꾸린 성인으로 성장한 '브로디 무리'의 아이들의 시점에서 책을 읽었다면 발제문과는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이를테면, 점차 브로디 선생에 동화되어감을 자각하고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 그녀에 대해서 부정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이를테면 제자를 꼬드겨 스페인 내전에 참전시킨다든지... 자신의 성적 욕망을 투영해 로이드 선생과 사랑하게 한다든지... 하는 에피소드들은 참...)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더불어 나에게 전성기가 찾아와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찬란한 시절은 있다지만 어쩐지 내게는 그런 시간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나는 현실적인 인간이기보다는 이상적인 쪽에 가깝다. 대개 과거형으로 쓰이는 '전성기'이라는 말 앞에서는 애달파진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당신의 전성기입니다 따란! 하기엔 기력도 자기 확신도 떨어진다.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 작아지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어쩌면 자그마한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일단 텐션부터 끌어올려보자!)




녹취


* 느빌의 책장의 발제-녹취를 개편했습니다!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이 뒷담화는 성장 키워드의 두 번째 텍스트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학곰, 일벌레님이 참여했습니다. 이번 녹취는 짧게 진행되어 발제와 함께 업로드합니다.



브로디 선생과 학교 그리고 교육


학곰: 성장에 대한 책을 찾다가 문득 '교육'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중에도 '학교 교육'에 대해 다룬 이야기가 고르고 싶었어요. <위플래쉬>도 교수와 제자가 나오지만 '성장을 위한 개인의 노력'이 더 포인트라고 생각했어서 대학보다는 초/중등학교쪽으로 찾아보았죠(웃음). 그러다 만난 책이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였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소개를 보다가 보수적인 여학교에서 진보적인 선생이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책으로 이해라고 골랐는데요...  읽어보니... 음...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르더라고요(웃음). 바꾸기엔 늦었고 이 책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거 같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일벌레: 주제에 대해 먼저 얘기하자면 저 또한 청소년기의 성장같은 것 보다는 이를테면 이혼같은, 인생의 큰 사건을 부딪혔을때 한 사람이 성장하는 그런 이야기를 찾고 싶었어요. 물론 (브로디 무리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주인공 브로디 선생의 성장에 주목해서 보았는데요. 선생이 학교에서 쫒겨나는 대목이 큰 사건 앞에서 성장하거나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웠어요.


학곰: 학교에서 짤린 다음에 대한 이야기는 없긴하네요.


일벌레: 그렇죠. 읽으면서 브로디 선생은 어떤 사람 같던가요?


학곰:  음... 생물학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애 같다?


일벌레: 중학생 같은 정도?(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중학생에게 미안하지만 그냥 넘어간다)


학곰:  맞아요. 딱 그정도 느낌이었어요. 전성기라는 말은 보통은 과거형으로 쓰잖아요. 20~30대 그도아니면 10대를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하는거처럼요. 그런데 책에 나온 브로디선생이 활동시기는 30후반 ~ 40대 거든요. 아이처럼 사는 어른 아니었을까요?


일벌레: 어쩌면 성장하지 못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학곰: 저는 오히려 계속 성장하는 인물로 보았어요. 어른이 되면 남한테 뭔가를, 이를테면 타인의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지식을 받아들일 수없는 시기가 온다고 생각하는데, 브로디 선생은 아이처럼 계속해서 자기 편을 만드려고 하고, 자신이 옳다는걸 증명하려 노력하죠. 전성기라는 말을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거 같았어요.


재밌는 부분이 '선생님인척(?)'하는 대목이었는데요. '이 학교의 시스템은 별로고, 진짜 중요한게 뭔지 알려줄게!'라면서 파시즘이며 예술이며 역사며 설명하는 부분이요. 선생으로서 아이들에게 끼칠 자신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던진 말들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이것이 어른의 세계다라는 듯한? 그러면서도 미술선생 로이드가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이미 들은 대답을 제자에게 반복해서 확인하는 장면들을 보다보면 다시, 이 선생은 애구나 싶고...


일벌레: 한편 저는 브로디가 굉장히 선생으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그녀의 학생이었다면 파시즘보다 다른 부분을 더 문제로 느꼈을 겁니다. 논리가 좋고 말을 잘해서 학생들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혹은 확신을 심어 주기위해 메리를 희생을 시키는 장면은 마음이 아팠어요. 선생으로서 자격미달인거죠.


학곰: 선생의 자격 이야기를 하다보니 문득 선생을 다루는 미디어나 픽션들에서 선생을 스테레오타입화 해서 다루는 느낌이 있어요. 이를테면 '은사 프레임' 같은거요. 친구들과 얘기 하다보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인생의 은사님보다는 체벌이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해요. 여담이지만 처음에는 발제의 메인테마를 은사님 / 우리들의 선생님 이런 컨셉으로 가져가려했었거든요. 하지만 뭐... 읽을수록 은사라기보다는 아이같아서 발제를 틀었죠(웃음)


일벌레: 발제를 쓰기는 애매한 책 같아요. 학교에 대해 다루기도 뭐하고 제자들 개개인에 대해 다루기도 어렵고... 책 내용은 되게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이기도 했어요.  어린 제자들의 디테일한 감정묘사는 많이 공감이 되었어요.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브로디 무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브로디와 제자들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래도 파시즘에 대해 얘기 안할 수 없겠죠. 파시즘을 다루는 이야기, 그것도 교실에서 파시즘은 다룬다면 대개는 막판에 깨지거든요.


학곰: 깨진다는 게 무슨 뜻이죠?


일벌레: 이 이야기는 파시즘은 잘못된거야 라고 하면서 우리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고 끝나지 않는다는거죠. 브로디 선생의 파시즘에 구속되었던 제자들이 내가 그때 어떻게 그랬을까 하는 얘기를 하지 않죠. 자신의 자아를 못 찾았기에 고통받고 시달리고 그러지 않아요. 과거를 부정하기보단 그땐 그랬지 같은 스탠스? 자의로 결정한건 아닌 시기지만, 실제로 불행하지도 않았고 나름대로 행복한 지점도 있었다고 그대로 인정하는 모습이요. 한편으로 한국의 교육열(공부 신화)과 연관이 있는 거 같다고도 생각했어요.


학곰: 한국은 주입식 교육에 가깝지 않나요? 브로디 선생처럼 밖으로 이끌어 가는 스타일보다는요.


일벌레: 브로디의 주장을 거부할 수 없거나 거부하고 싶어하지 않는 브로디 무리의 아이들 모습이, 한국의 교육은 인생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걸 알지만 그럼에도 (탈락하지 않기 위해) 룰을 따르는 모습과 비슷해보였어요.


학곰: 교육의 시스템적인 부분과 한 명의 선생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남긴다는 건 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그렇게 둘은 선생에 대해서, 학생에 대해서 그리고 학교에서의 성장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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