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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Mar 09. 2019

성장의 기회비용

바스티앙 비베스『폴리나』녹취

* 느빌의 책장 발제-녹취를 개편했습니다!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잘 안지켜 집니다..ㅜㅜ)

* 이 뒷담화는 성장 키워드의 네 번째 텍스트 <폴리나>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박루저, 일벌레, 학곰연연  님이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성장은 언제나 늦되다>를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성장을 말하는 새로운 관점     


연연 : 성장이라는 주제로 폴리나를 정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로는 영화나 줄글 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를 택했어요. 두 번째로는 그 중 <폴리나>가 예술가의 서사이자,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서사를 잘 담아낸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건 ‘성장’을 보여주는 방식이었어요. <폴리나>를 보면, 폴리나 스스로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마침내 긍정하면서 폴리나의 ‘성장’이 완성되잖아요. 저도 비슷하게 생각하거든요. 스스로가 자기의 과거, 혹은 현재로 이어지는 과정을 돌아봤을 때만 성장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 시간들이 좋았든 힘들었든, 결국 자기 말고는 아무도 ‘성장’이라고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박루저씨가 어떻게 읽었을 지 궁금해요. 예전에 이미 읽었던 작품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박루저 : 네 맞아요.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근데 다시 읽으면서 감상은 조금 달라졌어요. 일단 제가 그동안 기억하고 있던 <폴리나>는,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를 가장 잘 활용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춤이라는 소재도 ‘그래픽노블’에 딱 맞는 좋은 소재였구요. 또 예술가의 삶을 다루는 방식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어요. 연연이 말한대로 기존의 관점들과는 조금 다르게 ‘성장’을 그려낸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번에 보면서는 조금 신선한 맛(?)이 떨어지더라구요. 힘들 때는 성장인 줄 모르지만, 그 버텨온 시간들을 이후에 ‘성장’이라고 이름 붙인다는 점에선 다른 텍스트들과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어요.     


학곰 : 저희가 정했던 주제는 성장인데... 발제문에서 스티브잡스는 갑자기 왜 나온 걸까요? (웃음)     


연연 : 그러게요. (웃음) 그때의 제 생각을 추측해보자면..(웃음) 아까 말한거처럼 성장은 스스로만 말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지나간 이후의 시점에서만 말할 수 있다는 속성 때문이었어요. 비슷한 메시지를 주는 텍스트가 스티브 잡스의 ‘점 잇기’ 텍스트라고 생각했거든요. 점을 찍는 시점에선 모르지만, 나중에는 그 점들이 이어져서 무엇인가가 된다는 이야기요.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이 의미있는 점찍기라고 믿는 이 태도를 좋아하거든요. 음... 그냥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텍스트라 넣었나 봐요. (웃음)

  



주어진 기회와 주어지지 않는 기회

 

학곰 : 전 <폴리나>를 보면서, 스스로 지워버린 선택들을 떠올렸거든요. 제가 요즘 자주하는 얘기인데... 녹취록에서는 아마 편집될 것 같은데 괜찮나요?


연연 /박루저 : 저희는 알지만, 독자들을 위해서 다시 해주세요. 못 들은 척 하고 잘 들어볼게요.(웃음)


학곰 : 네 해볼게요.(웃음) 저는 제가 최근에 살면서 스스로 선택지를 많이 지우고 살아왔다고 문득 느꼈거든요. 대학교 때까지 주어졌던 많은 선택들이, 그 당시에는 그 비용들이 아깝기도 하고 그 선택들이 가져올 변화가 되게 커보였어요. 근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까 별로 그렇지 않은 거에요. 비용들도 그렇고, 그게 가져올 변화들도요. 돌이켜보면 그렇게 대단하지가 않은 거죠. 근데 당시엔 지레 짐작으로 겁을 먹고, 많은 선택들을 다 미루거나 회피하면서 살았어요. 그 판단들도 굳이 후회하지는 않지만, 결국 그런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조금 삐딱하게 성장시킨 것 같아요. 그래서 <폴리나>가 보여주는 약간은 삐딱한 성장서사를 보면서 제 개인적인 경험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과거의 움츠러들었던 저한테 필요했던 건 보진스키와 같은 강력하고 효율적인 가이드가 아니었을까 해요. 그런 가이드가 있었다면 선택지가 더 많았을텐데, 하는 생각들이 들었어요. 쉽게 말하면 너무 과감하게 살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폴리나>가 보여주는 그 강력한 가이드와, 그걸 벗어나는 성장서사가 인상깊더라구요.

   

일벌레 : 음 맞아요. 저도 그런 선택들이 <폴리나>의 큰 주제라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마주치는 선택지를 문이라고 비유한다면, 문 자체를 열어보지도 못하는 건 새로운 가능성이나 또 다른 세계 자체를 인식할 기회도 없는 거잖아요. 그 새로운 문을 열고 나가는 게 폴리나가 보여주는 ‘성장’이 아닐까요.

근데 현실에서는, 이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애초에 공정하게 주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지방에서 자라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지금 제 입장에서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기회들이 애초에 많이 주어지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을 열 기회조차 없이, 닫힌 문이 너무 많은 채로 인생을 살아 가는거죠.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의 선택과 기준들이 있겠지만, 문을 열 기회조차 없는 환경은 안타깝기도 해요.


학곰 : 맞아요. 사실 ‘성공한 삶’이라는 사회적인 기준이 이미 있는 상태에선,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문 여는 선택지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죠.


박루저 : 근데 반대로 그 사회적인 ‘성공한 삶’에 포섭되었을 때 잃는 게 많다는 것도 분명히 인식해야하지 않을까요. 이게 결국 경쟁사회에서 ‘자기 계발’을 강요받는 사회에 귀속되는 삶이거든요.



버티는 시간에 관하여

 

연연 : 저는 <폴리나> 읽으면서 스승의 역할이나 ‘버티는 시간’에 대한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결국 ‘버티는 시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약간 꼰대스러운 텍스트로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난번에 같이 얘기 나눴던 <위플래시>도 그렇고, 성장을 다루는 텍스트에선 여지없이 ‘참고 버티는 시간’들을 다루잖아요. 성장을 다루면 꼰대스러운 텍스트를 피할 순 없는건가, 싶었어요.


박루저 : 음.. ‘과정’을 다룬다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그걸 어떻게 다루는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참고 버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위플래시>도 참 좋아하지만, 그 영화가 보여주는 성장에 대한 메시지는 싫어하거든요. 왜냐하면 참고 버티면 이룰 수 있는 게 있지만, 그 시간동안 철저하게 잃어버리는 것들도 많거든요. 이 잃어버리는 것들을 몽땅 비용으로 지불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겨우 이루는 거잖아요. 근데 <위플래쉬>는 이 망가지는 부분들은 보여주지 않은 채 낭만적으로만 보여줬다면, <폴리나> 같은 경우는 그 꾸역꾸역 버티는 시간들을 확실하게 보여줘요. 그 ‘버티는 시간’ 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조명되어서 좋았어요, 폴리나가 다른 예술가의 삶을 다룬 서사들과 다른 점이 이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연연  : 네 저도 그런 점에서 <폴리나>가 ‘성장’을 균형있게 다룬 텍스트라고 생각해요. 버티는 시간과 잃는 시간, 포기하는 것과 얻는 것들을 잘 교차시켜서 보여주고,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원하는 걸 잃지 않는 모습들을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되게 잘 그려낸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학곰 : 저도 비슷했어요. 엘리트 집단을 거쳐서 바로 성공으로 직결되는 게 아니라, 그 엘리트 사회에 들어갔을 때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을 보여줘서 좋았어요. 근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 폴리나가 엘리트 사회에서 벗어나서 나가는 곳도, ‘주변부’라기 보다는 또 다른 의미의 엘리트 사회이자 주어진 기회로 보이기도 했어요. 엘리트 발레 아카데미를 벗어나서 길바닥에서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바닥도 결국 베를린이라는 매우 강력한 메인스트림이거든요. 그래서 앞서 말했던 기회가 애초에 없는 삶과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힘들었던 걸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연연 : <폴리나>를 보면서 스스로 걱정스러워진 측면도 있어요. 폴리나도 결국 자기가 가진 걸 포기하고, 좌절한 뒤에야 새로운 가능성을 얻잖아요. 근데 이미 저는 그 포기와 좌절 자체를 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내 삶의 변화를 위한 작은 포기들이 어려운거죠. 사실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이게 뭐라고 오히려 포기가 어려워지는...


일벌레 : 맞아요. 현실에선 삶을 바꾸는 아주 작은 선택조차도 어렵죠. 그래서 연연이 발제에서, ‘그렇지만 힘들었던 걸 정당화 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인 말이 좋았어요. 현실이 성장서사랑 같을 순 없잖아요. <폴리나>에서 다루는 건 예술가의 삶이라서 그 좌절과 포기하는 과정들이 더 극적으로 비춰지는 것 같기도 해요.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야 가능한 성장들이니까요.


학곰 : 앗. 마치기 전에 한마디만 더 할게요. 뜬근없지만, 성장이라는 주제를 알려면, ‘고등래퍼’를 반드시 봐야해요.(웃음) 멋있는 성장이 마구마구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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