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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Mar 18. 2019

방향을 잃은 후 뒤돌아보면

46. 알렉산더 페인「네브레스카」녹취록

* 느빌의 책장 발제-녹취를 개편했습니다!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이 뒷담화는 노년 키워드의 두 번째 텍스트 <네브라스카>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박루저, 일벌레, 연연, 이주, 다희, 동석 님이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나의 종착지는 어디인가>를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neuvilbooks/298


영화를 고른 이유


동석 : 20-30대가 현재를 살아가는 것아 가장 중요한 문제지만, 우리 세대가 노년이 되었을 때의 미래, 또한 곧 마주하고 있거나 마주할 부모님 세대가 노년이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내지는 행동)를 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며 영화를 골랐어요.


감상


연연 : 저번 주 <딸에 대하여>를 하며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의 아들의 이야기였죠. 영화에서는 마주하는 노년은 부모님을 통한 것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과거를 쫓아가며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인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좀 더 말해봐야겠어요.


박루저 : 영화가 지루했어요. 메시지는 강력하지 않았고 보여주는 방식도 옛날 느낌(흑백)이고 노년의 정적인 모습을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줘서 기괴했다고 생각해요. 동석이 어떤 포인트를 좋아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상황이 공감되진 않았어요. 아들이 아버지의 사고와 같은 것에 무디게 반응하고 극적이지 않았던 것이 기괴했구요.


다희 : 영화는 재미가 없었어요. 사건들을 보면 엄마가 등장할 때 재밌었어요. 아들이 엄마를 보는 눈은 다르겠구나,라고 느꼈어요. 노년에 대해 두려운 것은 갑작스러운 기술의 발달로 사회는 바뀌는데 내 판단력은 흐려지는 것? 나이 든 사람들이 왜 착각을 하는지를 느껴 슬프기도 했고요. 어떤 메시지 인지는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주 : 저는 재밌게 봤어요. 주제나 감독의 의도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진 않았으나, <딸에 대하여>와 연장선상에서 노인이라는 주제를 이어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주변에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어서 그런지 이해가 되는 부분도 많았고요.


일벌레 : (주중에 바빠) 영화를 끊어서 보는 바람에 큰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이 달의 마지막 발제를 맡아 노인 로드 무비를 골라놨는데, 이 영화랑 겹쳐서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이고..., 영화에 대해서는 미국 중서부의 현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년의 현주소


동석 : 박루저의 물음에 답하자면, 전체 서사가 흥미로웠어요. 발제문에도 썼듯이, 영화를 보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의 장면이 생각나고... 조금은 고집스러운 일을 시키는 할아버지와, 그걸 또 짜증을 내면서 하는 아버지. 복권 전단지로 시작된 노인의 고집으로 시작해서 겪는 일들을 리얼하게 풀어낸 것 같아요.

정적인 모습과 일상 모습을 보여준 리얼리즘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흑백으로 처리한 것도, 옛날이라는 것보단 노인이 되면 총천연색 꿈 대신 흑백의 꿈을 꾼다 들었어요. 주인공이 보는 세게를 흑백으로 처리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연연 : 오히려 리얼리즘이라 마주하기 싫었어요. 유년시절에 탈출하고 싶었던 도시에서 탈출한 주인공의 나머지 생이 그리 좋은 것 같진 않았고요.

내 것인 아닌 것으로 금의환향을 받고, 파란을 겪고 나서 아들과의 관계로 회귀하는 것. 작은 단위 안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며 아직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생의 결말 같은 느낌을 본 것 같아요.


박루저 :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정적인 것을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준 것 같고, 노인의 스테레오 타입을 생성하고 이를 아들이 도와주고 있는 모습이 나온 것 같았어요.


이주 : 영화는 딱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보여주는 내용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 또한 자식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는 전반적으로 이해가 갔어요. 다만, 그 아들이 정말로 아버지를 깊이 이해한다거나 더 나아가 노인의 입장에서 그려내는 것 까지는 가지 않은 것 같아요.


연연 : 메시지는 가족주의의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었던 것 같아요.


일벌레 : 그냥 그 삶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했어요. 낙후된 미국 중서부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들의 이야기.

 

다희 : 노년에 치매와 연관해서 생각해보았어요. 한국영화 <간 큰 가족>에서 신구가 통일이 됐다고 생각하여 연기를 가족들이 생각났어요. 노인이 되어서 그런 삶을 기쁘게 기억하도록 하는 아들의 마음이 아니었을 까 싶네요.


연연 : 리얼리즘 자체가 메시지가 있을 것아요. 그냥 우리네 삶을 영화적으로 보여준 것?


일벌레 : 일본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는데,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외판원들이 파는 쓸데없는 물건을 사는 경우가 왕왕 있대요. 적적하고 남은 친구들도 없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외면할 수가 없어 물건을 구매하고 마는 것이죠. 영화에서도 지역의 경제 상황이나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타지에서 살던 우디가 복권에 당첨됐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슈였고, 그런 화젯거리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석 : 우디가 호손에 돌아와서 겪는 일들의 연속에서 한편으로 인간의 비열함을 봤어요. 사실 복권 당첨 없이 왔다면, 그냥 지나치며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 하는 인사가 그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었을 텐데, 영화가 지나가며 우디에게 빌붙는 상황이 나오며 오히려 적반하장의 모습들도 보였으니까요.


다희 : 외국 가족의 모습을 엿본 것 같아요. 특히 엄마의 대사들이 재밌었어요. 아버지를 보면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는 조용하고 소심한 것 같은데, 아들에게 하는 대사는 또 그렇지 않거든요. 과거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아들을 버리다시피 키웠던 것 같아요.


이주 : 이 가족에 대한 이전 관계에 대한 부연설명이 조금씩 등장하기는 하지만 거의 없어서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첫째 형은 엄마의 편에 가까운 것 같고 둘째인 주인공은 좀 더 아빠 편을 좀 더 들어주는 것 같은 정도만 알 수 있었죠. 아쉬웠던 점은, 초반에 주인공이 여자친구와 같이 살다 별거하고 헤어짐을 앞둔 장면이 나왔었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랄까요?


연연 :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입체적이진 않았어요.



뒤처지지 않는 것


다희 : 어떤 실험을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마을에 40~50대 사람들에게 그들이 20대일 때의 환경을 조성해 주고 살게 했더니 신체나이가 젊어졌다는...


일동 : 와.. 아이리버를 구매해야겠다. 역시 추억팔이가 필요하다.


다희 : 내가 어떤 것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고 좌절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 슬픈 것 같아요. 기계와 과학에 의한 것도 있지만 사회적 나이라는 것도 있기 때문이죠.


연연 : 현재 엄마와의 관계가 점점 역전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내가 보호자가 되어가는 시기? 엄마를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보게 되고 그런 행동을 하며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지레 하게 되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노인이라는 대상에 선을 맞추는 게 어려운 것이니까요.


이주 : 저 또한 부모님의 요청을 받을 때가 많은데 대부분이 전자기기와 관련된 내용이에요. 앱 이용법이나 온라인 쇼핑 같은. 알려주어도 한 번만에는 잘 못하시는데 두세번 알려드리기 귀찮아서 그냥 제가 할 때가 많아요. 사실 차근차근하면 되는 건데. 전에 집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혼자서 인터넷 뱅킹을 하시는 것을 보고 기분이 묘했어요.


연연 : 우리는 인터넷에 검색을 하며 모르는 것을 아는 시대인데, 부모님은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세대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세대의 차이점이고요. 방금 다희가 언급한 실험에서 보면 환경이 20대 일 때 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뒤처지지 않고 있다, 라는 안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연령에 상관없이 비교되면 위축이 되니까요.


다희 : 내가 지금 10대라면 유튜브도 어려움 없이 했을 텐데. 세대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해요. 이렇게 늙어 가는구나 싶고요.



사회적 시선, 주체적인 장場


박루저 : 아버지를 이해하고 느끼는 시점이 너무 늦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속으로 용서를 하고 화해를 할 것인데, 이런 방식으로 될 것이라 생각하진 않아요. 아버지가 약자가 아닌 대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방식이면 좋겠고요.


동석 : 영화에서 주인공은 아버지를 대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시기를 지나치고 그다음 ‘도움이 필요한’ 아버지를 대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다희 : 한 트윗을 본 적이 있어요. 부모님이 자식에게 못해줬을 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말에 반박하는 트윗; “그래도 자식은 해보셨잖아요.” 이런 걸 보면 부모님을 이해하는 강박에서는 벗어나서 상처 받는 것은 인정하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 이로운 것 같아요.


일벌레 : 누군가의 선택으로 가족의 일원이 상처 받았다 해도, 내가 그 누군가의 입장이 되면 어떤 선택을 할지 또 모르죠. 가족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보다는 또다른 객체로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네요.


연연 : 확실히 이전 세대와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가족이 기존과는 다른 것 같아요.


일벌레 : 그런 시선에 대한 키는 무엇일까…


연연 :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다른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는 게 그들에게 주체적인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동력일 것 같아요. 보호도 받아야 마땅하지만? 어쨌든 주체적인 장을 그들에게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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