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슨한 빌리지 Mar 13. 2019

나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46. 알렉산더 페인「네브레스카」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3월의 주제는 [노년]입니다.


*3월 주제 [성장] 업로드 일정표

- 3월 03일(수)  『딸에 대하여』(2017), 김혜진

- 3월 12일(수)「네브레스카」(2013), 알렉산더 페인 




<딸에 대하여>에서 주인공은 젠을 바라보며 늙음의 두려움 / 딸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젠을 집에 들이고 보살피면서 딸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만,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나의 노년은 어떨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는 노년이란 주제를 생각하며 영화 <네브라스카>를 골랐다. 





고집


첫 장면에서 한 노인이 차로 가득 찬 도로 길가를 걸어간다. 표정에는 비장함이 느껴진다. 그를 발견한 경찰이 어디 가냐고 물어보고, 다음 장면에서 그의 아들이 나온다. 아, 그 노인은 전단지로 온 ‘복권 당첨 광고지’를 보고 자신이 당첨됐다고 착각해 1200킬로미터나 떨어진 링컨市까지 걸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나이 들수록 고집이 늘어간다고 했었나. 아들과 부인이 아무리 말해봐도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링컨에 가서 백만 달러의 상금을 타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노인 ‘우디’는 몇 번을 더 집에서 나온다. 이를 보다 못한 그의 둘째 아들은 병가를 내고 아버지와 링컨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호손에서


하지만 우디의 몸은 늙었고, 호텔에서의 경미한 사고로 이마를 꿰매 입원까지 한다. 결국 그의 고향인 ‘호손’에서 친척들과 주말을 보내기로 한다. 여기서 우디의 상황이 바뀐다. 그가 살던 몬태나에선 복권에 당첨됐다는 소리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지만 여기, 호손에서 그는 유명인사가 된다. 


다 같이 늙은 처지가 된 친척들과 동네 주민들은 그가 정말로 당첨이 됐다고 믿는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지긋이 쳐다본다. 자신이 가고 싶지 않았던 곳에서 오히려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만난 아버지. 당신이 편한 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 순간이다. 


종종 이런 순간을 마주친다. 어른들의 고집. 누가 봐도 비효율적인 일을 고집하며 하려는 노인들. 나이를 먹어가면 아이가 되어간다는 말이 있듯 자식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몇십 년 전에는 봤던 그의 부모님의 모습이 없어진 슬픔 때문일까. 이제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다.




과거에 대한 조각들


<네브레스카>에서 많이 나오는 장면은 노인들이 과거에 대해 말하거나 회상하는 장면이다. 수십 년을 살아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적절하지 못한 타이밍에 나온 적절하지 못한 말들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처음에는 우디를 축하하던 사람들이 과거로 그와 가족들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다. 과거를 들먹이며, 내가 너를 많이 도와줬었다고 네가 나에게 빚을 졌었다,라고 고백한다. 그중에서 가장 추악하게 비치는 것은 우디의 오랜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에드 필그램이다. 


우디가 복권에 당첨됐다고 생각한 그는 처음에는 축하해주고 치켜올려주지만, 결국 그가 그랬던 이유는 우디에게서 1만 달러를 받기 위함이었다. 회유가 통하지 않자 그는 우디의 아들에게 우디의 불륜 사실까지 내뱉는다. 그러면서 ‘자기가 없었다면 넌 이 세상에 있지 않았어.’라고 말한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다른 장면들이 귀엽게 까지 느껴진다. 



복권의 종착지


에드 필그램에게 망신을 당한 우디는 길가에 주저앉는다. 아들은 그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왜 그렇게 복권을 받고 싶냐고. 새 트럭과 새 가스압축기를 갖고 싶고, 나머지 돈으로는 두 아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었다 말한다. 


결국 우디의 행동의 저 아래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끊임없이 링컨으로 이끌었던 동력도 그것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누가 비웃어도,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고집스럽게 갔던 아니었을까. 


병원에 입원한 순간에도 우디는 밖으로 나왔고, 결국 링컨에 도착하고 자신이 복권 당첨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모자를 받고 돌아가는 그의 모습은 쓸쓸하다. 그런 모습을 본 아들은 그동안의 여정을 새 트럭과 새 가스압축기로 사서 호손으로 향한다. 잠시 트럭을 몰며 사람들과 인사하고 자신을 업신여겼던 사람들에게 미소로 답하는 마지막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계속 생각나는


인물 중심의 영화를 보면, 내 주변의 일들이 생각난다. 내가 시골에 가면 아버지와 삼촌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치하곤 했다. 어디 나무를 자르면 보기가 좋다. 지금 비닐하우스에 있는 씨앗을 심자. 우디가 링컨에 가자고 하는 것처럼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말도 어린 내가 듣기에도 고집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와 삼촌은 한숨을 쉬고 대들 진 못하고 짜증을 내며 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장면이 너무 웃기면서 한 편으론 씁쓸하다. 


우리 엄마 아빠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까? 배가 부르다 말해도 계속 밥과 반찬을 주려고 하고, 냉장고가 꽉 찼는데도 음식을 가져가라고 한 보따리를 싸는 모습.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될까라는 두려움이 아닌 두려움이 있다. 


또 한 가지. 정적인 자세로 정적인 대화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노년이란 재미없고 쓸쓸한 것일까?라고 생각해본다. 


링컨에 가는 도중 주유소 펍에 들려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멍하니 티브이를 보는 장면, 집에 옹기종기 모인 노인들이 티브이 화면을 응시하며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대화의 목적이 어쩌면 내가 살아있음을 인지하기 위한 순수한 ‘발화’에 있지는 않은가 생각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 모습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때가 되면 그때만의 감성이 생기는 걸까. 수십 년 후에 되고 볼 일이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