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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Mar 11. 2019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45-1 김혜진, 『딸에 대하여』녹취록

* 느빌의 책장 발제-녹취를 개편했습니다!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마감에 늦는 건, 나만은 아닐 거예요...)

* 이 뒷담화는 노년 키워드의 첫 번째 텍스트 <딸에 대하여>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박루저, 일벌레, 연연, 이주, 다희 님이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늙어가는 일에 대하여>를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딸에 대하여


박루저 :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어요. 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잘 썼다고 생각했고요. 83년생인 작가가 어떻게 이런 감성을 가지고 엄마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썼을지, 기성세대란 새로운 세계에 대해, 자신의 엄마에 대해 고민하며 썼을 텐데,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며 엄마를 이해하는 긴 터널을 지나갔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오랜만에 역시 소설만 한 게 없다고 느꼈네요. (웃음)


다희 :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주인공의 시점인 경우가 많고, 거기에 이입해서 소설을 읽게 돼요. 주인공이 (작가와) 전혀 다른 세대의 사람인데 1인칭으로 썼고, 문장이 간결하고 현재형이 잦아 3인칭처럼 객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신선했어요.


이주 : 저 역시 최근에 읽은 작 중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딸의 입장이 아닌 엄마의 입장에서 썼다는 점 때문에 엄마와 나의 관계에 대한 생각할 여지가 많았어요.


연연 : 중편이라 빠르게 읽을 수 있었고, 응집력이 좋은 편이라 생각했어요.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실제로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엄마는 어떻게 저렇게 속터지는 말을 하지?' 싶었는데, 그 심리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어요. 보수적이었던 엄마도 (소설처럼) 변화하고 있긴 하고요.


일벌레 : 저는 저의 엄마가 떠오르기보다는 소설 속 엄마의 변화를 보면서 제 자신의 변화가 생각났어요. 저도 소설 속 엄마처럼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사회에서 원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표준화된 인생 경로 외에 다른 길이 많고, 달라도 괜찮다는 걸 몰랐어요.


네가 연고 없이 가지 않길 #엄마와 젠과 딸 #딸과 그 애


다희 : 주인공은 요양원에서 홀로 늙어가는 젠을 돌보며, 동성애자인 딸이 남편도 없이 젠처럼 늙어갈까 봐 걱정해요. 엄마가 저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네요. 젠처럼 기부도 하고 멋있게 산 사람이 똑같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박루저 : 주인공이 젠을 돌보며 자기 일이 아닌 일에도 열을 내는 딸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 부분이 진하게 드러나서 아쉬웠어요. 화해의 구도를 예상할 수밖에 없어서, 이 부분의 농도가 옅었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주 : 창작론을 잘 배워서 잘 쓴 것 같은 병렬 구조로 느껴지죠. 하지만 이해하는데 도움되는 점도 있어요.


일벌레 : 그 부분에서 주인공이 생각을 바꾸자마자 금방 변화하는 것처럼 보여서, 실행력이 좋은 사람이거나 이미 변화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연연 : 주인공은 젠을 보고 나도 저렇게 늙어갈 수도 있다고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아는 어른들 중에는 "나는 저렇게 안 살 거야"라거나 "저 사람은 노력을 안 해서 그래."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다희 : 책에서 한 축을 형성하는 것이 딸과 그 애의 동성 연인 관계예요. 그렇지만 관계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책에서 많이 드러나지 않는 둘의 연애 관계는 어떨지 궁금했어요.


박루저 : '그 애' 혼자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 캐릭터성을 갖고 있어요. 그 애와 엄마의 관계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온갖 모진 말에도 그 애가 한 번의 틀어짐도 없이 처연하게 얘기하는 것도요.


연연 : 익숙한 혐오였기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딸과 그 애의 관계에 대해선, 제가 영화 캐롤을 보며 불편하게 느꼈던 것처럼 (남녀 서사였으면 너무 뻔한) 권력관계를 답습하는 부분이 동성애 텍스트의 한계일까요?


박루저 : 동성애 텍스트라기보다 이런 형태의 서사가 가지는 한계가 아닐까요? 권력관계가 없어지면 이상적인 사회가 올 것처럼 이야기해도, 실제로는 그게 없어져도 새로운 권력관계가 생기겠죠. 너무 PC하게 그리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네요.


늙는다는 것 #나이 듦과 가난 #선택지는 무엇


이주 : 엄마나 딸에 대한 부분도 인상 깊었지만,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어요. '숨 쉬면서 살아있기만 해도 드는 돈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 부모님의 것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하고요.


연연 : 늙음에 대한 두려움은 트렌드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걸 포함해요. 예를 들어, 맥도널드에서 기계로 주문하지 못하면 생존의 관점에서 나의 선택지가 좁아지는 거예요. 또 다른 차원에서는 하고 싶은게 많은데 그런 것을 점점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는 거죠.


박루저 : 저는 늙는다는  게 약해짐을 뜻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30대의 나는 20대의 나보다 어떤 걸 더 잘할 테고, 젊다는 걸 부러워하진 않을 것 같아요.


일벌레 : 저 역시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늙는다는 게 별로 두렵지 않아요. 늙음보다는 외려 가난이 훨씬 두렵죠. 돈만 있다면 늙어서 체력이 달려도 택시를 탈 수 있고, 기계가 어려우면 웨이터가 맞아주는 식당에 갈 수 있으니까요.


연연 : 젊을 때는 가난하더라도 돈을 벌 가능성이 있지만, 늙으면서 가난하면 탈출구가 없다는 게 큰 것 같아요. 생계력이 없을 땐 뭘 먹고 살지 모르겠어서, (일하고 있을) 40대까지밖에 상상이 안 돼요. 특히, 퇴직 후 연금 공백기는... 어렵네요.

젊음을 부러워한다기보다는 내가 축소해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약이 많아져요. 가난해질 거라는 두려움부터,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예를 들어, 부동산을 봐도 이걸 넓혀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이 너무 큰 재산이고, 투자 대비 수익성이 높은데, 내가 여기서 점점 더 밀려나는 알고리즘이나 공식들이 너무나 명백하게 보여요. 아직까지 (노년기가)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다는 건 알겠는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라는 물음표가 생겨요. 성공한 직장인은 알겠는데, 그 외에는요?


다희 : 홀로 잘 늙어가는 사람들의 예시가 40대까지는 있는 것 같은데, 50대 이후엔 모르겠어요. 그땐 알바도 어렵고, 전문직이 아니라면... 과연 혼자만 있을 때 그게 가능할까? 하는 고민이 들어요. 특히 소설 속에서 식당에서 위축되는 장면이 공감 갔는데요. 저는 지금도 이런 위축감에서 계속 벗어나려고 하거든요. 예컨대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한정 짓는 것들, 두려움, 생각들. 여행을 가든 무슨 일에 대해 선택하려고 하든 내가 하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자유롭지 않은 느낌이거든요. 물론 그런 생각들에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소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문제와 장애물들이 나이가 들면 더 생기겠구나- 싶었어요.


이주 : 그래서 저는 귀농이라는 선택지도 생각하곤 해요. 다 늙어서 갈 데 없으면 어떡하지? 고향으로 시골로 돌아가야지. 최후에 보루 같은 거죠. 부모님을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다희 : 부모님의 의사도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요새 가끔 나이 든 내가 평생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어하면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도 하거든요. (일동 웃음)


박루저 : 혼자서 행복하게 늙는 모습을 우리 부모 세대가 잘 몰라서, 혼자서 50대가 되면 불행할 수박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예시를 한 번도 못 보고 살았기 때문에 결혼해야지, 안정적인 직장 가져야지, 말버릇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앞으로의 사회적인 변화를 보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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