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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Apr 20. 2019

당신은 어떤 모양인가요?

50-1.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을 읽고 나눈 이야기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당분간 매주 토요일 발제 / 수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이 뒷담화는 낯선 존재 키워드의 첫 번째 텍스트 <셰이프 오브 워터>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일벌레, 학곰, 이주, 다희, 연연이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낯설어서 더 아름다운' 읽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neuvilbooks/312



0. 영화를 보고


이주 : <셰이프 오브 워터>를 고른 이유는 발제문에도 썼듯이 낯선 존재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전 작품인 <우부메의 여름>과는 달리 진짜로 낯선 존재가 등장하고 거기다가 낯선 존재와 사랑에 빠지는 텍스트를 다루고 싶었어요. 사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동화 같은 아름다운 미장셴이지만 발제문은 '낯선 존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썼어요.


연연 : 저도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봤었는데 굉장히 좋았고, 또 동화를 영화로 어떻게 잘 만들지에 대한 좋은 표본 같다고 느꼈었어요. 그리고 처음에는 엘라이자가 낯선 존재, 어인에게 어떻게 이렇게 두려움 없이 다가가지 싶었는데, 중간에 '나도 말을 못하는데 나도 인간이 아니냐.'라고 호소하는 장면에서 먹먹함을 느끼고 설득력을 확 느꼈어요. 이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바가 응축되어서 나타난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다희 :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영상미나 음악이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저도 연연이 이야기했던 장면이 정말 좋았어요. 영화 제목인 '셰이프 오브 워터'를 국내에서는 '사랑의 모양'이라고 번역했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애와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이 어떻게 차이가 있고 다른지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학곰 : 사실 표스터와 예고편을 보고는 바닷속에서 무슨 일인가 생기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바닷속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마지막 장면과 중간 화장실에서의 물 속의 장면이 다 였어요.(웃음) 아틀란티스에 가서 모험하는 더욱 판타지스러운 영화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는데 그럼에도 아름다웠어요.


일벌레 :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못 봤었어요. 엄청 보고싶었던 기억이 남아있어 기대보다는 별로였어요. 그래도 동화적인 면이 좋았어요. 특히 옆집 화가 자일스가 처음에는 안 돕는다고 하다가 자신도 거절당하고 좌절하는 경험을 겪으면서 돕게 되는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이주 : 저는 원래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좋아해요. 특히 동화적인 스릴러 영화들이요. 감독에 대한 애정으로 개봉하자마자 달려가서 봤었죠. 저는 기대한만큼 만족스러웠던 영화였는데, 포스터, 예고편만 봤으면 달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 사랑과 사람의 모양


연연 : '셰이프 오브 워터'라는 제목과 함께 '사랑의 모양'이라는 부제가 있는 것이 좋았어요. 물과 사랑이 대치되잖아요. 물은 컵에 담기면 컵의 모양이 되고 또 얼리면 그 모양대로 얼음이 되는 것처럼 사랑도 어떤 모양이 되든 사랑이며 그 모양을 특정할 수 없다는 부분이 좋았어요.


이주 : 저는 한편으로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부제를 붙이는 과정에서... 조금 원제의 의미가 왜곡되는 느낌도 있었어요.


일벌레 :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사랑, 모험 같은 키워드가 없으면 영화를 잘 보러가지 않는 것 같아요.


연연 : 영화에서는 단순히 남녀 사이의 사랑 뿐 아니라, 일련의 모든 상황, 즉 이방인들이 낯선 존재를 포용하려는 과정 자체를 모두 사랑이라고 말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다희 : 저도 마찬가지로 느꼈어요. 주인공과 이 존재의 사랑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과학자가 양심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나, 흑인 친구가 같이 도와주는 것, 자비스가 도와주는 것을 통해 약자들끼리의 연대도 보여줬던 것 같아요. 사랑이 여러 형태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대치하고 있는 사람의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도 비교하면서 볼 수 있었어요. 스트릭랜드가 아내를 대하는 모습도 그렇고, 사실 스트릭랜드도 똑같이 '너가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같은 말임에도 정말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학곰 : 과학자가 양심적인 인물이었나요?


연연 : 말은 못하지만 교감을 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생물체이므로, 사람은 아닐지라도 죽이는 것이 맞는가 라는 부분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 때 지시를 하는 인물의 답변도 인상적이었는데, 인간도 죽이는데 왜 못 죽이냐는 식으로 답했어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냉전 시대인 것에 함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에서 출발하지만 인간이 인간적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도 같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2. 시대를 보여주는 다양한 인물들


연연 : 또 좋았던 장면은 어인이 고양이를 죽였을 때, 자비스가 '판도라를 죽였어.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쟤는 야생동물이니까.'라고 말하는 부분이었어요.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장면이었죠. 자비스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었어요.


다희 : 화가인데, 사진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쓸모가 없어지는 과정... 외롭고 쓸쓸해보였다. 좋아하는 파이집에서 실망하는 장면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았다. 흑인도 좋았고. 남편은 정말...별로였다.


학곰 :  저는 오히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어요. 시대가 만든 악인이랄까요. 야망에 차 있는 사람, 냉전의 가치를 온몸으로 흡수를 해서 그게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물 같았어요. 요즘에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좀 짠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당시에는 힘과 권력이 있어서 누릴 수 있었겠지만 그게 사라지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잖아요.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인데 현실에서도 이런 인물들을 보면 묘한 감정을 느껴요. 별로이지만 동시에 안 됐다는 생각도 들고요.


일벌레 : 저는 반대로 그 주변의 인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아내나 가족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의 모습이요. 아무래도 권력을 지녔던(?) 경험보다는 권력을 지닌 사람 때문에 열받았던 경험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주변 사람들에 이입하게 되더라고요.


연연 : 저도 학곰의 말에 어느 정도는 이해해요. 저런 시대에 태어나서 저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사실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약을 먹으면서까지 손가락을 지키려고 한 건 손가락을 잃으면 자기가 싫어하는 장애인과 똑같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여러 기회들이 있었지만 그걸 계속 부정한 건 스스로이고 그래서 그런 결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학곰 : 내가 믿었던 것이 사실 틀렸을 지도 모르는데,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제까지 살아온 것이 전부 부정당하기 때문에 그것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 같아요. 안쓰럽죠...


다희 : 시대가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것도 맞는 것 같다. 높은 장군이 왔을 때, 이제껏 잘 해왔는데 한 번 실수하면 끝인거냐는 질문에 장군이 끝까지 밀어붙이죠. 그 후로 폭주하게 된 것 같아요. 성공하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지 않을까요.


학곰 : 자비스도, 내가 아예 일찍 태어났거나 늦게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시대 때문에 내 인생이 휩쓸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요즘 시대의 사람들에게 피해 의식이 생기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래서인지 저는 엘라이자와 어인의 관계나 교감보다는 스트릭랜드에 꽂혀서 봤어요. 어떻게 보면 제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죠.



3. 왜 여자만이 낯선 존재와 사랑할까?


이주 : 영화의 전체 서사는 <미녀와 야수>나 <개구리 왕자>와 같은 아름다운 여자가 낯선 존재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마법이 풀린다는 이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이죠. 그런데 왜 여자만이 이렇게 다른 존재와 사랑을 하게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상대방을 이해하고 교감하다 결국 사랑을 하는 그런 스토리요.


다희 : 저도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낯선 어인과의 사랑도 삽입 섹스를 통해 결국엔 남-녀 이성관계로 이어진다는 부분이었어요. 정말 새로운 존재와의 사랑이라면 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사랑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연연 : 저도 남성의 야수성을 길들이며 사랑하게 되는 기존의 이야기와 맞닿아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어요.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결국은 엘라이자가 어인의 세상으로 들어가면서 끝나잖아요. 그 방법 말고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없었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엘라이자가 결국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다희 : 그러게요. 정말 왜 이런 이야기는 여성들에게만 적용되는 걸까요. 여자가 상대적으로 정신적인 성숙을 담당하기 때문일까요.


연연 :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여자는 본인이 괴인나 야수이기 보다는 오컬트적인 존재를 보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 같아요. 마녀 같은 경우에도 모습이 괴기한 것이 아니라 괴기한 것을 보거나 주문을 하죠. 외형 자체는 인간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심지어 인어공주나 메두사도 예쁘고요. 여러 신화도 이런 것이 반영되어 있는 게 아닐까요.


일벌레 : 어쩌면 여성의 외모에 대한 강박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성이 기괴한 모습을 지니는 걸 상상하기 어려워서가 아닐까요.


이주 : 결국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남성들에 의해 씌여진 스토리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 편으로는 조금 다른 모습이거나 부족한 모습이 있더라도 누군가의 인정이나 사랑을 받고 싶은 로망을 이루어주는 느낌도 들고요. 이 반대의 이야기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정말 잘 쓴 이야기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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