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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Apr 21. 2019

낯선 세계를 통해 마주하는 현실의 면면

51. 발터 뫼르스, 『꿈꾸는 책들의 도시』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4월의 주제는 [낯선 존재]입니다.


* 4월의 주제 [낯선 존재] 업로드 일정표

- 4월 5일(토) 책 『우부메의 여름』(2017), 교고쿠 나츠히코

- 4월 13일(토)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2017), 길예르모 델 토로

- 4월 21일(일) 책 『꿈꾸는 책들의 도시』(2005), 발터 뫼르스

- 4월 27일(토)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아녜스 바르다, 제이알


* 책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낯선 존재로 가득한 '꿈꾸는 책들'의 도시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여기에 바로 '꿈꾸는 책들'이 있었다. 그 도시에서는 고서적들을 그렇게 불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장사꾼들의 눈에는 제대로 살아 있는 것도 그렇다고 제대로 죽은 것도 아니고 그 중간인 잠에 빠져 있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오직 무언가를 찾는 수집가의 손에 의해 어떤 책이 발견되어 그 책장이 넘겨질 때만, 그것을 구입해서 거기에서 들고나갈 때에만 그 책은 새로이 잠에서 깨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모든 책들이 꿈꾸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한번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세계를 꿈꿔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님 말고...) 책을 좋아라 했던 10대의 나에게 발터 뫼르스의 책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책들의, 책들에 의한, 책들을 위한 도시를 보여주며 나를 사로잡았다. 책 속의 배경이 되는 도시 '부흐하임'은 수천 개의 고서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온갖 형태의 인쇄물, 수백 개의 출판사(오, 대한민국이 출판사 수는 더 많습니다), 그 외 인쇄소 및 종이공장으로 가득 찬 도시다. 어떤 형태든 '책과 독서'와 관련한 사업이 주류를 차지하며, 희귀한 초판본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책을 나열한 '황금 목록'에 속하는 책으로 한몫 차지하고자 '책 사냥꾼'은 책을 빼앗기 위해 살육도 서슴지 않는다.



* 그래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나요? (줄거리를 원치 않으면 패스해주세요!)


  "작가를 업으로 삼는 이족보행 공룡들이 사는 '린트부름 요새' 출신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어떻게 하여 『피비린내 나는 책』을 손에 넣고 '오름'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한 줄 요약이 가능하다. 공룡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공룡, 슈렉스, 상어구더기, 부흐링, 예티, 노루개, 야생돼지 등 낯선 존재들이 사는 새로운 세계('차모니아 대륙')를 배경으로 하며, 작가가 만든 다양한 개념과 용어, 신화와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1. 린트부름 요새 출신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는 그의 대부 시인이 숨을 거두며 남긴 작자미상의 원고를 읽고 (그 훌륭함에) 큰 충격과 감동에 빠지고, 대부 시인의 유언에 따라 원작자를 찾아 나서기 위해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간다.

2. 그는 '부흐하임'에서 원고를 보여줬다가 서점상들에게 문전박대나 당하고, 문학 에이전트인 야생돼지 '하르펜슈톡'의 조언에 따라 상어구더기인 고서점상 '스마이크'를 찾아갔다 (독 묻은 책을 펼쳐 몸이 마비되는) 함정에 빠져 부흐하임의 지하묘지로 쫓겨난다.

3. 사실 부흐하임은 바닷속에 훨씬 큰 영역이 있는 빙산처럼 지하에 상당한 영역이 존재하며, 갱도, 협곡, 통로, 목숨을 위협하는 책, 미로, 위협적인 미지의 생물 등이 종합 선물 세트로 지하동굴에 존재하고 있다. 거기에서 값어치가 있고 사라진 책을 발견할 수 있어 목숨을 걸고 지하를 탐험하고 책을 빼앗는 '책 사냥꾼'이란 직업이 생겨났다. 책을 발견하면 부흐하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헥헥... 요약이 요약이 아니군요. 이야기가 길어지니 빠르게 진행해 보아요!)

4. 알고 보니 스마이크는 친척으로부터 탈취한 막대한 유산을 통해 마치 비선 실세처럼 부흐하임 전역의 서점 네트워크와 행정력을 주무르고 있었다. 도시 주민들을 정신적으로 마비시키기까지 하며 그저 그런 책들(가치 없는 싸구려 덤핑 책)만 통용되게 하여 실권을 지킨다. 그래서 (바로 그) 격이 다른 원고를 써서 찾아온 작가에게 위협을 느, 그를 온갖 연금술을 통해 종이로 발라 햇빛을 보면 불에 타 죽어 평생 지하묘지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존재인 호문클로스(일명 '그림자 제왕')로 만들어 지하로 쫓냈던 것이다. 

5. 미텐메츠는 지하묘지를 탐험하며(그는 지상으로 올라가려 하나 그럴수록 자꾸 내려가기만 한다) 책 사냥꾼이나 흡혈괴조 등의 생명체로부터 위험에 처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하에서 유일하게 평화롭고 이성적인 존재이자 책을 읽으면 배부름을 느끼는 독자이자 책 덕후, 최면술 능력자 종족 '부흐링'의 도움을 받고 그들의 아늑한 동굴에 머무른다. 그러나 책 사냥꾼들에게 해당 공간이 발각되어 달아나다가 미텐메츠는 '그림자의 성'에 다다르고, 그곳에서 살아있지도, 죽지도 못한 상태로 머무르는 호문클로스를 만나고 그가 원고의 저자임을 확인하고 함께 복수를 다짐한다.

6. 도시를 장악한 스마이크가 미텐메츠에 막대한 현상금을 걸고 지상(정확히 말하면 스마이크의 집이자 고서점)으로 돌아온 그와 호문클로스를 처치하기 위해 백여 명의 책 사냥꾼을 매복해놓았지만, 일전에 도움을 주고받았던 많은 부흐링들이 몰래 쫓아와 책 사냥꾼들에게 최면을 걸어 책 사냥꾼들이 서로를 죽이게 만들어버린다.

7. 마침내 스마이크를 만난 호문클로스는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마지막으로 커튼을 걷고 햇빛을 받고 불에 타오르면서 스마이크를 처치한다. 화염에 둘러싸인 스마이크와 그의 고서점에서 달아나며 미텐메츠는 책이 아깝다는 생각에 딱 한 권의 책을 빼오는데(그 와중에 작가 정신) 하필 그 책은 '황금 목록'에서도 가장 값진 책 『피비린내 나는 책』이었다.

8. 도시를 둘러싼 화재로 인해 꿈꾸는 책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그림자제왕 호문클로스는 불에 타 별이 되었음을 느꼈을 때, 미텐메츠는 작가로서 최고의 경지인 '오름'(Runner's High ?)에 도달하고 그가 겪은 일련의 일들을 1만 페이지의 책으로 출간한다.

9.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해당 책의 초기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이며,『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진주인공은 독자인 부흐링이다.



* 세상은 요지경!


 중학생 때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와 10년도 넘게 지나 지금 다시 읽었을 때 이 책은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책들의 도시 속 카페의 묘사를 볼 땐 알라딘 중고서점의 그것이 떠오르는 등 내 상상력이 좁아지고 현실감 있게 변했다고 느끼기도 했고, 줄거리와 반전을 알고 있어 재미가 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달랐던 점은, 흥미로운 모험으로만 다가왔던 책의 내용 하나하나가 실로는 거대한 은유의 덩어리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아래 대목에서 말도 안 된다며 피식 웃음 짓기보다는 그 통찰력에 감탄했다. 여기서 판타지만 살짝 덜어내면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 입주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아파트 집값 담합부터 젠트리피케이션 사례(“임차인이 원할 시 매년 계약을 연장한다"라고 특약에 넣었지만 건물의 가치가 오르자 주인이 바뀌고 수십 건의 소송과 강제 집행으로 예술가들의 공간이 폐점)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저는 책을 사들이지 않습니다. 제가 사들이는 것은 고서점 전체입니다. 저는 엄청난 양의 책들을 밀매합니다. 시장을 덤핑 책들로 넘쳐나게 해서 주위의 경쟁자들을 몰락시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파산하면 그들의 서점을 헐값에 사들입니다. 저는 부흐하임 전역의 집세 동향을 결정합니다. 이 도시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제 소유입니다. 거의 모든 종이공장들과 인쇄소들도 마찬가지고요. 부흐하임의 문학 낭송가들 모두가 저의 봉급 목록에 올라 있으며 독이 있는 골목에 거주하는 자들도 거의 모두 그렇습니다. 저는 종이 가격을 결정합니다. 책의 출판부수도 결정합니다. 어떤 책이 성공을 거둬야 하고, 어떤 책이 그래서는 안 되는지를 결정합니다. 저는 성공적인 작가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제 마음대로 그들을 파멸시키기도 합니다. 저는 부흐하임의 지배자입니다. 제가 바로 차모니아의 문학입니다."


 또한, (역시 스마이크가 뒷배경인) 음악 콘서트('트럼나팔 콘서트')이자 청각적인 연금술에 취해 미텐메츠는 쓰잘데기 없는 책을 대거 구입하고 자괴감에 빠지는데, 강제로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게 하고 속수무책의 상태로 빠뜨렸다는 점에서 인격 말살의 은유라 느껴졌다. 과연 우리 사회도 현재 진행형인 약물을 이용한 범죄 사건과 사법부와의 유착 등에서 나아질 단서가 있을까 하며.



* 낯선 세계의 창으로 마주하는 현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하기에


 참, 이 세상도 낯선 세계(차모니아)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부흐링이 가장 대표적인 예인데, 이 책 덕후 종족은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는 작가를 따 명명하고 해당 작가의 책을 모조리 암기한다. 그것이 체화되어 좋아하는 작가, 작품과 비슷한 성향이 되고, 작가의 물건을 수집하고 책 낭송, 연극, 그리고 작품의 한 구절만 듣고 작가를 맞추는 놀이까지 좋아하는 것으로 삶을 채우기 위해 자신들이 지하에서 가장 두렵고 무시무시한 외눈박이 괴물 종족이라는 소문을 일부러 만들기까지 한다. 그들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반전이 아닌 감동을 주는 존재들이다. 아직 아무것도 출판하지 않은 미텐메츠는 자신의 이름을 딴 부흐링을 보고 감동을 눈물을 흘린다. 책과 작가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는 부흐링이 반대로 작가에게 그것을 준 것이다.

 문제의 원고의 원작자이자 한때 작가였던 호문클로스는 자신이 더 이상 시인이나 작가가 될 수 없고 자신이 끔찍하게 여기던 존재와 같아졌음을 깨닫는다. 지하묘지에 쫓겨난 후, 책 자체의 가치는 뒷전이면서도 비싼 책을 얻고자 서로를 살해하려 하는 책 사냥꾼들을 대적하며, 자신도 죄의식이 희미해진 끔찍한 살육자나 다름없어진 것이다. 그는 지하로 돌아가는 것은 의미 없다 느끼고, 마지막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힘을 발휘하여 삶을 마감하는 것을 택한다.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이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뿐이다.


 어떤 세계에서든, 어느 날 와서 어느 날 떠나는 삶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뿐이고, 요지경인 세상 속에서도 좋아하는 일-미텐메츠는 작가가 되는 것이며 부흐링은 책 자체인-을 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뿐이라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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