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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May 05. 2019

낯선 얼굴이 단단해질 때

52. 아녜스 바르다, 제이알,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4월의 주제는 [낯선 존재]입니다.


* 4월의 주제 [낯선 존재업로드 일정표

- 4월 5일(토) 책 『우부메의 여름』(2017), 교고쿠 나츠히코

- 4월 13일(토)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2017), 길예르모 델 토로

- 4월 17일(수) 책『꿈꾸는 책들의 도시』(2005), 발터 뫼르스

- 4월 27일(토)ㅠㅠ  5월 5일 (일)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낯선 얼굴과 장소가 만날 때




두 작가가 만났다. 나이 차이가 무색하리만치 귀여운 케미를 보여주는 두 작가는, 트럭을 타고 프랑스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낯선 얼굴들을 만난다. 이제는 곧 철거될 광산촌의 마지막 주민. 광부들. 어떤 남편들의 아내들. 그리고 그들의 얼굴과 기억을 단단한 건물에 새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다소 물렁이던 그들의 존재가 단단한 장소 위에 새겨질 때, 이상한 경외감이 스크린 너머로 전해진다. 보이지 않는 얼굴들을 단단하게 붙드는 일은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목소리가 된다. 사람과 장소, 그리고 거기에 서려있는 기억 전부를 사랑하게 되는 경험, 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거창한 걸까. 여튼, 이 영화는 그런 비슷한 것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노동자



얼굴을 새기는 존재는 대부분 노동자이다. (모두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없겠지만, 유난히 두 작가는 신체적인 노동을 감당하는 이들-또는 그 주변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지금에 와서는 다소 촌스러운 단어가 되어버린 듯한 그 단어를 끊임없이 환기시려는 그들의 여정은, 그들의 세계관을 어렴풋이 짐작케 한다.  




JR과 바르다 



 JR이 벽에 새겨넣는 이미지는 추상적이지 않다. 오롯이 사진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아주 구체적이다. 그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기반으로 벽에 그림을 그려넣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언제나 사진이 시작이라는 부분이 자꾸 눈에 띄었다.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 구체적인 의미로서의 삶-그래서 단단한 삶이 계속 그려진다.





 JR은 바르다도 찍는다. 그리고 그녀의 발과 눈은 열차에 새겨진다. 바르다의 신체는 열차와 함께 떠나간다. 어디로든. 어떤 모양과 어떤 장소와 어떤 움직임이 만날 때, 생기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이 역시 짐작뿐이지만, 그리고 나는 바르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열차가 떠나는 그 순간에 만큼은 그녀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 알 것만 같다는 (주제넘는) 착각이 들었다. 낯선 얼굴에 애정이 생겨버렸다. 





선글라스를 벗다



 생각해보면 두 작가도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존재였을 것이다. 영화 거장과 인플루언서, 라는 정도의 감각만이 서로에게 있었을 것이다. 각자가 서로에게 (당연하게도) 타자인 셈이다. 그건 내내 JR의 선글라스로 표상된다. 반짝이는 눈을 가리는 무엇으로. 바르다는 선글라스를 보며 고다르를 떠올린다. 언젠가, 선글라스를 벗고 반짝이는 눈을 보여준 적 있었던 그를. '반짝이는 눈'은 개인적 얼굴일 것이다. 그 개인적 얼굴을 공유하는 일은 이상한 위로, 또는 사건이 된다. 바르다와 JR이 커다란 건물에 낯선 얼굴을 아로새길 때, 그것이 완성된 모습 앞에서 느끼는 감정의 출처가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여기에 이토록 단단한 사람이 있다, 는 데서 오는 위안.


 마지막에 JR은 선글라스를 벗었다. 선글라스를 벗는다는 건, 기억과 얼굴을 커다란 장소에 새기는 일보다는 규모적으로 훨씬 작고, 그래서 보다 더 개인적인 일이고, 그래서 바르다만이 알고 있는 JR의 (흐릿하지만) 반짝이는 눈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바르다가 JR의 반짝이는 눈을 보았을 테고, 거기서 커다란 위안을 얻었을 거란 걸. 오래토록 기억할 또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는 걸.





상상을 해보자





"왜 발가락 사진을 화물칸에 붙였죠?"


한 사람이 바르다에게 물었을 때, 바르다는 이렇게 대답한다.


"상상력을 위한 거죠. JR과 저는 서로에게 상상할 권리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 그들의 영역에서 우리가 상상해도 되는지 묻죠." 




 그들의 작업은 매우 구체적이지만 그 시작은 상상이었고 그 끝도 상상이다. 낯선 사람과 함께 하는 놀이터-JR과 바르다가 조성한 생경한 풍경은 '상상'이라는 틀거리 안에서 만들어졌고, 또 그 틀거리를 넓힌다. 영화에는 그 여정이 내내 담겨있다. 


 현실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낯선 사람과 마주하기 위한, 그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기 위한, 그 시작은 상상에 있을 것이다. 상상이란 꽤나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안해도 딱히 불편할 것 없는 삶이다. 그렇다면 상상이라는 걸 꼭 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바르다와 JR이 하는 것만치는 못하겠지만 각자의 삶에서 가능한 만큼 우리는 상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상은, 바르다가 '권리'라고 얘기한 것처럼, 의무라기보다 권리에 가까울 것이다.  상상을 시작한다면 낯선 이가 가득한 이 세상 전부가 꽤나 다채로운 놀이터가 될 것이다. JR과 바르다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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