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 영화『스윙키즈』를 보고 나눈 이야기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이 뒷담화는 몸 키워드의 네 번째 텍스트인 영화 『스윙키즈』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학곰, 연연, 다희, 박루저가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춤이라는 거이 사람 미치게 하는 거드만’를 읽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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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연 : 저는 우선 이 영화가 ‘춤’에 대한 영화라서 골랐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최근에 일보다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춤’이거든요(웃음). 일단 영화에 대한 제 개인적인 리뷰 이전에, 다들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지 궁금하네요.
박루저 : 저는 재밌게 봤어요.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서 캐릭터를 배치한 균형이나 결말 등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개봉 당시 왜 이렇게 이슈가 안되었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아니면 저만 몰랐던 걸까요?(웃음)
학곰: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영화예요.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어떤 부분은 조금 과장되었다 싶기도 했고 또 어떤 부분은 매우 리얼하다 느껴졌는데, 오히려 이런 대비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으로는 유쾌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속도로 잘 유지된 거 같았어요.
다희 : 아마 개봉 당시에 마블이나 다른 블록버스터에 가려지지 않았을까요. 저도 아이돌이 나온 영화라고 흐릿하게 기억만 하고 있다가, 이번에 보게 되었어요. 아마 아이돌 출신이 주인공인 영화에 대한 편견이나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있을 텐데, <스윙키즈>는 그런 이미지 때문에 피해가 본 사례가 아닐까 해요. 저도 기대했던 거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거든요.
연연 : 영화를 보면서 가장 주목했던 포인트는, 발제에도 써놨지만 ‘몸’이라는 키워드였어요. 영화에서 다루는 춤이라는 소재는,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자신이 완전히 갖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어요. 가장 본질적이기도 하고 또 직관적인 ‘나’는 결국 ‘몸’이 느끼는 감각과 분리될 수가 없지 않을까요.
다희 : 맞아요. 덧붙여서 말하자면 영화의 배경이 냉전시대였다는 점이 ‘춤’이라는 소재를 부각하는 데 큰 몫을 하는 것 같아요. 당시는 개인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인 조건들에 의해 개인의 신체와 사상이 구속되는 시대였다는 점에서요. ‘춤’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권을 잠시나마 되찾는다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영화 속에서 양판래가 “춤을 추면 전쟁이고 뭐고 다 잊는다”라고 말하잖아요. 몸에 대한 통제권뿐만 아니고, 정신도 그 순간만큼은 자유로워지는 거죠.
박루저 :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아마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 명준이 있었던 장소가 영화에서 나오는 거제수용소이지 않았나요? <광장>도 결국은 국가-이데올로기에 완전히 휘둘리고 망가지는 개인의 삶을 보여준 작품이잖아요. 소설에서는 그 구조에서 개인이 벗어날 근본적인 방법이 결코 없는 것처럼 묘사한 것에 비해서, <스윙키즈>는 춤이라는 소재를 탈출구로 모색해본 게 아닐까요. 어찌 보면 소극적이고 한계가 있는 탈출구이긴 하겠지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기도 하구요.
학곰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아마 시대적인 차이도 있을 거 같아요. <광장>이 쓰인 시기는 이미 전쟁으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이긴 했지만, 여전히 국가를 단위로 한 거대 사상들이 지배적이었을 테니까요. <광장>이 발표된 것도 4.19 직후인 1960년이었구요. 그런데 그 후로는 거대한 서사나 이론들이 무너지고, 역사에서 늘 등한시되었던 개개인이나 일상의 영역들에 주목하는 흐름이 꽤나 중요한 이슈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그런 차이가 1960년의 소설 <광장>과 2018년 영화 <스윙키즈>의 차이점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해요.
다희 : 맞아요. 한편으로는 냉전을 다루는 방식이 시대에 따라 바뀐 거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일상’이나 ‘몸’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이죠.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시각들은 요즘 특히나 눈에 띄는 거 같아요. 제가 2년 차 직장인이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이제 직장이나 사회적인 관계에서 벗어난 자기 일상의 통제권이 매우 중요하잖아요. 퇴사, 워라밸, 브이로그, 원데이 클래스. 요즘 이런 키워드들이 떠오르는 것도 그런 현상 중 하나구요. 내가 온전히 ‘나’로 보낼 수 있는 시간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점점 더 많이 가지는 것 같아요.
연연 : 내가 나로 존재하려면 어떤 걸 채워야 하고, 혹은 어떤 걸 해소해야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흘러가는 대부분의 시간에서 내가 나로 사는 기분은 잘 안 드니까요. 그걸 가장 쉽게 느끼는 게 ‘몸’인 것 같아요. 직관적으로 바로 어떤 기분이나 행복으로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몸을 쓰는 취미나 내 몸에 좋은 시간들을 갖는 게 소중하다고 느껴요.
박루저 : 맞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로 자기 시간을 채우는 거. 그거만큼 중요한 게 없죠. 개인적으로 저한테는 그게 바이크에요. 저는 20살 때부터 늘 ‘바이크가 내 인생의 토템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웃음). 농담으로 시작했던 말인데, 이제는 점점 진심이에요(웃음).
연연 : 토템이라뇨(웃음). 더 설명해 주셔야 될 거 같은데요(웃음).
박루저 : 학교, 아르바이트, 회사, 면접. 이런 대부분의 중요한 일들은 사실 우리가 온전히 원해서 하는 것들은 아니잖아요. 굳이 나누자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속하는 것들이죠. 그런데 그 일들을 수행하러 가고 오는 시간들을 바이크를 타는 시간으로 채우는 거예요. 시작과 끝을 내가 좋아하는 시간으로 덮어버리는 거죠. 그러면 일상에서 제가 주도권을 훨씬 갖게 되는 거 같은 비스무리한 느낌이 들어요(웃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장학금을 받거나 면접에 합격하거나 알바로 돈을 모을 수 있었다거나 이런 건 모두 바이크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학곰: 저도 요즘 비슷한 걸 느끼는 거 같아요. 집을 직장 근처로 옮기게 되면서 출퇴근을 걸어서 하기 시작했거든요. 근데 그 걸어가는 시간들이 너무 좋아요. 그전까지는 출퇴근 시간들이 매우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거든요. 지하철이나 버스는 제 맘대로 전혀 안되잖아요. 눈이 오면 멈춰버리고. 늦어도 더 빨리 가거나 이런 게 전혀 통제가 안 되는 거죠. 제가 집이랑 멀리 떨어진 직장을 다니면서, 통제되지 않는 출근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출퇴근할 때 걷는 30분 정도가 너무 좋아요. 박루저가 말한 시작과 끝을 좋아하는 시간으로 채운다는 거랑 비슷한 건가요(웃음).
박루저 : 맞아요 딱 그겁니다! 아직 학곰 얘기 안 끝난 거 같아서 끼어들기 죄송한데, 바이크 얘기 한 번만 더 할게요(웃음). 바이크는 차나 대중교통이랑은 다르게, 내 몸으로 매우 섬세하게 통제가 되고 몸이랑 온전하게 연결되는 기계거든요. 내가 스로틀을 돌리는 딱 그만큼 빨라지고, 내가 브레이크를 밟은 딱 그만큼 느려져요. 그리고 이 모든 메커니즘이, 진동을 통해서 제 몸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어요. 하 이제 바이크 얘기 그만해야겠네요. 무튼 학곰도 작은 배달 스쿠터라도 하나 사보세요(웃음).
학곰 : 안 그래도 저도 자전거 얘기를 하려고 했어요(웃음). 제가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시기를 놓쳤다가, 얼마 전에 가족 모임 차 시골에 갔다가 배웠거든요. 생각보다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 되게 좋더라구요. 내 몸의 균형을 잘 맞춰서 자전거를 통제하면서, 사람 없는 길들을 막 마음대로 다니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기회가 되면 출퇴근도 시도해볼까 해요. 물론 아직 직진밖에 못하지만요(웃음).
연연 : 저도 요즘 춤을 배우는 게 딱 그 부분 때문이에요. 내 몸에 대한 통제권. 그리고 자기 통제를 하는 경험에서 오는 행복함이 분명히 있더라구요. 되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행복함이에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미로 마라톤이나 걷기가 떠오르는 것도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 싶어요.
학곰 : 중년 남성들이 그런 걸 많이 찾던데... 괜히 슬프네요(웃음).
다희 : 취미라는 거 자체가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내 에너지나 시간을 온전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꼭 ‘몸’을 꼭 쓰는 게 아니더라도, 내 감각을 내 의지대로 어떤 시간에 몰입한다는 점에선 취미라고 부를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연연 : 저는 그래도 취미 안에서도 조금 구분이 된다고 생각해요. 자신으로 존재한다고 했을 때는, 시간이랑 공간이 되게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시간’ 통제가 되는지가 중요한 거 같아요. 제가 책이랑 영상이 다른 본질적인 부분이 시간 통제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영상물에서는 내가 시간 통제를 못한다는 무력감이 있거든요. 책은 천천히 내속도로 맞출 수 있는 반면에 영상은 제가 아닌 흘러가고 있는 영상이 그 통제권을 주도하죠. 그래서 책은 내가 나로 존재하는 걸 확인하는 시간인데, 영상은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저한테는.
학곰 : 저도 정신을 쓰는 거랑 몸을 쓰는 거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점점 멀어지고 있기는 한데, 글쓰기가 한때는 저한테 박루저에게 바이크같은 대상이었거든요(웃음). 내 글 안에서는, 내가 가진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그 순간만큼은 나의 마음이나 내 내면에 대한 무척 자유로운 통제권을 얻는 거죠. 반면에 아까 말했던 걷는 시간이나 자전거 타는 시간은, 그런 마음의 자유로움이랑은 별로 상관없었어요. 그냥 몸의 문제였어요. 정신보다는 오히려 신체 호르몬의 영역에 가깝지 않을까 해요.
다희 : 음 저는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 순간 아무 생각이 안나는 느낌이 좋거든요. 하루종일 내가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잖아요. 근데 운동을 하는 순간은, 힘들어서라도 아무 생각이 안 나요. 그래서 그 순간들이 무척 귀하고 필요한 시간이라고 느껴져요. 말하자면, 몸이 몰입하니까 마음도 같이 비워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그 감각이 서로 딱 분리되는 거 같진 않아요.
연연 : 저는 평소에 명상을 하는데, 명상에서도 비슷해요. 지금 내가 어떤 감각을 느끼는지 알아차리는 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굳이 어떤 해답을 내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내가 내 몸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거 자체에서 해소되는 부분들이 많아요. 내가 내 몸을 정확하게 진단만 해도, 마음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거죠.
학곰 :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저는 요즘 오디오북을 많이 이용하는데, 그 이유도 책을 읽는 순간에도 몸이 자유로울 수 있어서 좋기 때문이거든요. 책을 들으면서도, 동시에 거기에만 매달려 있지 않고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으니까요.
박루저 : 음.. 몸과 마음의 문제보다는 주체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요. 그 시간이 온전히 주체적일 수 있으면, 몸을 쓰는 거나 마음을 쏟는 거나 비슷해요 저한테는. 그런 점에서 저는 학곰이랑 다르게 읽어 주는 책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제가 상상하는 목소리와 시간과 그림들이 중요하거든요. 근데 읽어주는 책들은, 그 목소리나 속도나 이런 선택권을 뺏기는 느낌인 거죠. 책을 읽는 게 되게 수동적인 행동으로 바뀌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제가 주체적으로 읽는 듯한 느낌이 잘 안 드는 거죠.
학곰 : 저는 오히려 고조 없이 같은 목소리로 쭉 읽어줬을 때 흘려듣는 느낌이 좋거든요. 저도 오디오북을 낭독으로 읽는 건 별로예요. 성우분들이 과할 때가 분명 있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