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한 권이면 충분! 여행가서 읽기 좋은 책 추천
이슬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일상에서 잠시 나와 떠난 여행에서 무얼 하든 마음이 조금 더 부드러워 진다. 그렇게 부드러워진 마음은 애틋함이나 그리움에도 자리를 쉽게 내주는 편이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감정 과잉 상태라고도 하는 건가? 어쨌든 그런 감수성이 풍부할 때 읽으면 애틋함이 배가 되는 글들이 있다. 바로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정과 일상에 대한 깊은 시선은 여행에서의 내 마음도 깊이 건드리면서 믿음직한 동행이 되어 준다. 매일 이메일로 연재되었던 글들이 묶인 것이라, 실은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무관하다. 그래서 여행 중 이동하며 한 편의 글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단, 최대 단점이 있다면 책 두께가 매우 두껍다는 점. 그래서 나는 책을 분권해서 여행에 가져 갔는데, 책을 망가트리는 것이 싫다면 전자책 구매를 추천한다.
Editor. 다희
리처드 맥과이어, 『여기서Here』
나의 여행은 대개 9 to 6 직장인 사이클을 돌다가 연차를 쓰고 떠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제한된 일정때문일까 시간 투자대비 효율을 고려하면서 계획을 짜곤했다. 하지만 계획은 항상 어그러지기 마련(?). 걷다가 힘들어서, 늦잠을 자서, 폭우/폭설이 와서, 태풍이 상륙해서, 열차가 탈선해서 같은 별의별 통제불가능한 변수들이 나타나 나를 생각지 못한 곳으로 이끌더라. 그럴때마다 내가 그리던 여행은 '그곳에 가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어! 라거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어!' 같은 조건부 환상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만다.
『여기서Here』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 일어나는 순간들을 포착(혹은 상상)하여 한 장면에 표현한 그래픽노블이다. 1980년대에 사교모임을 하는 쇼파가 있던 자리는 1950년대의 결투의 현장이었고, 1930년대 벽난로가 있던 자리는 기원전 수천년전 공룡이 걸어다니는 길이기도하다. 나에겐 여행지일지어도 누군가에겐 일상인 공간을 걸으며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한 것은 아닐까하는 반성을 하게되는 책. 꽤 무겁지만 대사가 적고 이미지 위주이기때문에 금방 읽을 수 있다. 출국 전에 후루룩 눈에 담아가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Editor. 학곰
김수영, 『김수영 전집』
여행으로 '자기객관화'를 한다거나, '자존감'을 찾는다는 얘기들은 다 SNS용 인증 멘트를 위한 포장된 표현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인생에 도움되는 모든 여행들은 결국 '내가 얼마나 무력하고 찌질한 지 알게 되'는 것으로 수렴한다. 그런 진짜 여행은 SNS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겨우 기차하나 타는데도 긴장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무력하고, 날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은 자격지심을 자주 느끼고, 피부색만으로 차별받고, 그럼에도 이 모든 상황에 떳떳하게 항의조차 못하고 닥치고 있어야 하는, 찌질한 경험의 반복이고 연속이다. 말하자면 여행은 내 배경(학력, 집안, 부모, 경제력 등등)을 떠나 오롯한 '나'로 지내는 거의 유일한 경험인데,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인생에는 꼭 찌질한 여행이 필요하다.
이런 찌질한 여행과 무척이나 닮아 있는 텍스트가 바로 김수영의 텍스트. 김수영은 한국 문학 역사상 자신의 찌질함을 제일 진득하게 바라보고, 인간으로서 마주한 작가가 틀림없다. 우리가 젊은 시절의 귀중한 큰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을 가서야 겨우 겨우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텍스트로 마주하면 어떨까. 혹은 여행지에서 이 책을 펴본다면, 그때는 스스로 매순간 느끼는 '찌질함'이 결국엔 '자기객관화'가 될 수 있다는 힌트 정도는 받을 지도!
Editor. 박루저
이병률, 『끌림』
5년 전 ‘어딘가’를 찾아서 꽤나 긴 여행을 떠나던 나에게, 절친한 이가 어디를 가든 결국은 ‘나’를 찾아오길 바란다는 메시지와 함께 선물했던 책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이라고 하니 이 책이 떠올랐다. 거기다 이병률 시인이 여행을 다니며 직접 찍은 사진들과 겪은 일들을 엮어낸 여행기이기도 하다. 즉, 이 책을 여행에 들고 간다는 것은 내 여행지에서 남의 여행을 엿보는 것이다. 이 여행을 나라면, 또는 그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생각하며 읽어나갈 수 있다. 또한 짧은 산문은 묶어놓은 글이다보니 여행지에서 읽기에 좋다.
당시의 나는 이동하는 구간 구간마다 책을 꺼내어 읽곤 하였는데 언젠가는 이 책처럼 이 여행의 이야기를 잘 엮어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만나는 순간순간마다 무언가 영감을 찾아내기 위해 온 감각을 열어두고자 발버둥치기도 했다. 조만간 찾아올 다음 여행에 다시 한 번 이 책을 들고 떠나볼까 한다.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Editor. 이주
마크 스트랜드, 『빈방의 빛』
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기적으로 떠나는 이유는 '복잡하고 유난스러운 도시가 싫어서'. 가끔은 어떤 사정도 고려하지 않고 오롯이 혼자이고 싶으니까. 그래서 여행지에서 읽는 책도 고요하길 바랐다. 『빈방의 빛』에서 시인이 소개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그렇다. 빈 방에 떨어지는 빛, 넓은 방에 홀로 앉아있는 여성, 어둑한 거리에 홀로 밝은 카페. 익숙한 공간이건만 어쩐지 낯선 풍경들. 시인 마크 스트랜드는 이러한 감정을 "심란할 정도로 조용하고, 방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끝내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113쪽)"이라고 말한다. 일상 속 풍경과 닮았지만 일상이 아니고, 그렇다고 일탈하는 통쾌함은 느껴지지 않아 묘하게 불안한…. 이거 여행 떠난 내 모습이잖아? 얇은 데다 그림이 많아 부담없으면서도 교양 쌓는 기분은 만끽할 수 있는 그림 비평 에세이. 누군가 '호퍼를 좋아하세요…?'하고 물어와 새로운 인연이 시작될 수도(?).
Editor. 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