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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Feb 06. 2018

11-1.<립반윙클의 신부> 뒷담화

SNS를 둘러싼 기상천외한 관계들에 대하여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 이 뒷담화는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 이어 작성된 (도시) 키워드의 두 번째 텍스트입니다.



*이번 모임엔 학곰, 박루저, 다희, 동석, 이주,  해정, 일벌레, 최생, 연연 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이전 게시글인 '발제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 링크 : ( https://brunch.co.kr/@neuvilbooks/64 ) "자기혐오와 새로운 연대"




<립반윙클의 신부>를 읽거나 본 후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


학곰 : 개인적으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쿠로키 하루라는 배우를 좋아해서가 큽니다.(허허) 지난 시간까지는 도시의 감각이라는 정의를 내렸었죠. 오늘의 행복을 이월해서 내일을 살아가는 감각들, 갈등을 회피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야기의 대부분이 부부나 곧 부부가 될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정상가족, 중산층에 포함되고자 노력하는 혹은 포함된 이들의 이야기였죠. 이번에는 정상적인 가족 범주에서 넘어와 그것이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다희 : 지난 이야기들로부터 '정상가족'이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내고, 맥락을 잡으려고 했던 발제의 시도가 좋았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텍스트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웠는데요. 일단 여성 주인공에 대해 감정이입이 조금 어려웠던 것 같고. 영화의 경우 그 답답함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로와의 관계를 '연대'로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루저 : 저는 반대로 굳이 맥락을 연결시키는 시도 때문에 발제가 아쉬웠던 것 같아요. 오히려 억지로 이으려고 하니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하게 된 느낌? 저도 개인적으로 나나미가 맺고 있는 관계가 연대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또 처음에는 굉장히 현세대의 SNS 사용에 대해 현실감 있게 그렸다고 느꼈는데, 점점 비현실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고 생각해요.


동석 : 저는 오히려 현실감 있게 읽었어요. <립반윙클의 신부>의 소재가 SNS잖아요. 오히려 우리에게 현실적이고 밀접한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작품은 전 시대에 통용해서 좋게 읽히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딱 그 세대에 맞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은 후자에 속하고요. 저는 소설 속 일들이 실제로 있을 법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조금 비현실적이라도 말이에요. 예컨대, 30년쯤 전에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에서 나오던 미래의 발명품이 지금 실제로 쓰이고 있잖아요.

한편 발제에서 이야기했던 느슨한 연대는 오히려 실패했다고 생각했어요. 주인공이 연대를 해보려고 하던(동창, 배우)들과는 결국엔 실패하거든요.


해정 : 개인적으로 소설 영화 둘 다 봤는데, 영화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여주인공의 연기가 참 좋았고, <중쇄를 찍자>에서 조금은 과장된 밝은 연기보다도 훨씬 좋았어요.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 나온 것처럼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 대한 연결 때문인지 제가 느낀 것과는 조금 결이 달랐던 것 같아요. 그럴싸한 정상 가족이기 위해서 연기를 하는 모습,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이런 관계로 까지 나아갔는지를 더 세밀하게 추적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일벌레 : 저도 여주인공에게 조금 공감하기 힘들었어요. 이유는 나나미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스크린 속에 한 장면에 있는 대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특히 강간 미수 장면부터는 이 인물에 감정 이입하는 걸 포기했던 것 같아요. 대상을 점점 더 심각한 상황에 빠뜨리고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결과를 보는 <프린세스 메이커>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최생 : 깊은 감정은 안 느껴졌던 것이, 주인공이 완전히 가상의 세계로 넘어간다고 생각하고 읽었기 때문이에요. 아무로한테 놀아나는 순간부터 가상의 세계에 들어간 것 같았고, 집중이 잘 안되었어요. 새로운 연대라기 보단, 사기당한 것이죠. 가상의 관계를 오프라인까지 어쩌다 보니 연결한 거예요.


연연 : 발제문에서 정상가족과 SNS의 관계를 반대로 보는 것은 이해가 가요. 최근 사회에서도 연대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비로소 SNS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관계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대'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되어야겠지만요. 또 저는 이 소설을 일본 소설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봤는데 수치심의 개념이 생각났어요. <국화와 칼>에서 읽은 것인데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다고 해요. '할복'도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극단적 선택인 것이죠. 마시로의 경우에는 '암'이어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게 되지만, 나나미가 왜 기꺼이 죽겠다고 했던가 생각해보았어요. 그리고 그건 마치 나나미에게 평생을 따라다니던 '부정한 여성'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느낌이었어요. 이것이 할복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트라우마와 자기혐오, 그리고 연대

나나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숨기려 노력한다

학곰 : 이 소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발제문을 쓰며 참고한 텍스트가 <이젠 내가 밉지 않아>라는 책이에요. 자기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인데요. 제가 만약에 최생을 보고 '넌 수염 너무 더러워'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최생이 상처받는다면 강박적으로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겠죠. 수염이 평생 신경 쓰이게 될 거예요. 그 사소한 지적이 트라우마가 되고 평생을 지배하는 것이죠. 저는 이런 감정은 세대로 묶을 수도 없고 공통된 감각으로 묶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립반윙클의 신부>는 이 감정선을 잘 살렸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비현실적이고, 소설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정 : 저는 나나미가 그 좁다란 현실의 세계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아마도 좁은 세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정상적인 기로'를 걷는 사람이기를 애쓰는 것이요. 그랬던 그녀가 지금껏 상상해보지 못했던 세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출발해 자기 긍정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이번 작품의 내용 같아요.


한편, 마시로라는 친구는 어차피 죽을 운명에 처해있지만, 결국 자살을 했다는 점에서 연연이 말한 '할복'과 연결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나나미는 소위 '정상적인 여성'이고 싶지만, 자기가 '함께 죽겠다'라고 결심하는 대상이 평생에 걸쳐 부정해왔던, 결코 되고 싶지는 않았던 '부정한 여자'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협소했던 세계가 넓어졌다는 의미에서, 굳이 치자면 성장 서사... 그러니까 자기 긍정의 서사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해요. 반면 자기긍정에 실패한 존재는 마시로라고 느껴졌어요.


다희 : 맞아요. 저도 전체적으로 성장담으로 읽히기도 했어요. 성장은 분열된 자아의 모습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하거든요. 나나미가 SNS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합쳐지지 않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동일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을 발제에서 지적했던 '자기혐오'와 연결시키면 각기 다른 자아들이 있어서 스스로를 혐오하던 나나미가 뭔가 일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읽히기도 했어요.




SNS와 느슨한 연대


나나미가 찾아가는 행복과 진짜 자기의 모습은 무엇일까

해정 : 마지막에 가서는 '거짓말이면 어때'라는 말도 있잖아요. 두 사람 모두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는 순간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기보다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에 더 가까운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관계는 SNS에서 더 잘 이루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연연 : 제가 좋아하는 개념 중 '느슨한 공동체'라는 개념이 있어요. SNS도 어쩌면 느슨한 연대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말씀하셨듯 정보를 가두는 편이고 그로써 가능해지는 연대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늘 벗어나고자 하지만 고정관념이 존재하잖아요. 오히려 사전 정보가 없을 때 연대를 더 할 수 있기도 해요.


동석 :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일본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어요. 혼밥 혼술 등이 일본 문화의 특징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들도 고독한 면이 보였어요. 결혼하기 전에도 혼자 살았고, 소통을 하는 공간을 보면 대부분이 SNS상이죠. 혼자 만의 시간을 가질 때 미디어를 통해 타인과 자신을 연결하고 있고요. 그런데 이 책은 이런 온라인 상의 관계가 온라인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밖으로 나온 사례들이죠. 그래서 나나미가 겪는 다양한 일들을 보며 이런 사회관계망이 실제로 내 삶에 영향을 줬을 때 거기에서 나오는 파장은 예측할 수 없겠다고 느꼈어요.


박루저 : 제가 생각하기엔 현실에서는 말 못 하는 것을 표현하는 창구가 SNS가 된 것 같아요. 이제 우리들에게는 SNS가 어쩌면 더 솔직한 공간일지도 모르죠. 세대 때문인지 시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SNS 공간이 한 사람의 우울함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연연 : 그렇다면 우리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서 분출하는 감정들을 십 년 전에는 어디서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동석 : 요새 학교폭력이나 따돌림 문제가 나오면 크게 두 가지 견해로 갈린다고 생각하는데요. 한쪽에서는 '요새 애들이 정말 무섭구나.'라고 말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때도 다 그랬어. 미디어에 노출이 되지 아닌 것뿐이지.'라고 하죠. 이와 비슷하게 저는 현재 SNS의 역할을 대신해주던 매체가 과거에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나미를 둘러싼 기상천외한 인물들


아무로는 대체 누구였을까?

최생 : 저는 마지막 부분에서 아무로의 과장된 행동에 의문이 많이 있었어요. 작품 내내 아무로가 정체성이 많으니까 조금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인신매매단 아닌가요?(웃음) 혹시 아무로에 정체를 아시는 분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학곰 : 아무로를 SNS의 의인화라고 분석한 리뷰를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무로는 엄청나게 과잉되고 어느 순간에는 비즈니스처럼 칼 같다는 점이 기억에 남아요. '람바랄'의 이름의 뜻 자체가 '~과 차이가 있다'는 건데요. 결국 자신은 누군가와는 다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것이 아까 말씀드린 SNS의 의인화와도 연결되는 지점 아닐까 싶네요.


이주 : 작품을 보면서 일본 순정 만화 보는 느낌이 크게 들었는데요. 오히려 그것이 일본 작품이어서 문화적으로 크게 이상한 느낌은 아니었어요. 아무로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아무로는 '가상인물'아닐까요? 저는 처음에는 나나미와 연결될 것인가 예상했었는데요.(웃음)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름이 없는 무명인 것은 아닐까 싶어요.


다희 : 다른 인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저는 나나미가 교류하는 인물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던 인물이 '카논'이었어요. 처음으로 그녀를 긍정해주고 좋아한 인물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마지막에서도 집에 놀러 오라고 할 정도로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을 보면서, 정말 나나미가 변화했고 성장했구나 생각했어요.


학곰 : 나나미가 카논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아요. 도쿄에 놀러 오라고 하면서 덧붙이는 대사가, '도쿄는 기상천외한 사람들이 많아.'라는 묘사거든요. 지난 시간부터 이야기해 온 도시의 삶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컨대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서 처럼 전형적인 평균을 향해서 달려가는 인물들도 존재하지만, <립반윙클의 신부>의 주인공들처럼 파편화된 이들도 있겠죠.


그리고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를 다음 주 텍스트인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에서는 어떻게 묘사했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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