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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Feb 20. 2018

13-1. <꿈의 궁전> 뒷담화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 이 뒷담화는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에 이어 작성된 <디스토피아> 키워드의 첫번째 텍스트입니다.


*이번 모임엔 학곰박루저다희, 이주,  (책을 읽지 않은) 해정, 최생 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이전 게시글인 '발제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 링크 : https://brunch.co.kr/@neuvilbooks/82 "디스토피아와 그 평범한 공모자들" 발제문







작품 선정의 이유



최생 – 일단 작품 선정의 이유를 말하자면, 부커상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일동 - (웃음)

     

박루저 – 정말 일관적인 분이시네요.

     

최생 – (웃음) 부커상에 대한 세간의 평이 좋더라고요. 디스토피아가 새로운 주제가 되었는데, 저자가 묘사한 디스토피아는 기존의 디스토피와 다르다고 느꼈어요. 역사 속에 존재하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디스토피아라는 점이 특히 그랬어요. 이 사람이 묘사하는 디스토피아가 알바니아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씌여진 거지만, 현대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아직 정리가 덜 되어서 발제문에 쓰지 못한 내용도 있어요. 이 작품은 민족문학이라 생각이 되는데, 쿠폴리가의 경우 친일파 같은 느낌이잖아요. 알바니아의 입장에서는. 그런데 작가는 왜 이 사람들의 입장에서 썼을까, 싶었어요. 이 작품이 바라는 건 알바니아의 독립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세도가의 입장에서 썼을까. 디스토피아라는 키워드로는 이해되지만, 민족이라는 키워드로 보면 그런 선택이 잘 이해가 안 되더라구요. 그런 얘기들도 해보고 싶어요.

     



   

  


발제문 이야기



다희 –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두꺼워서 걱정했는데 금방 잘 읽혀서 좋았어요. 최생이 발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좋은 발제라 생각했어요. 특히 4번 문단이 중요하다고 봤구요. 우리 현실에 맞춰 해당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할지, 그리고 그런 과정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그 부분이 너무 짧아서... 더 자세히 써줬으면 했어요.

     

(감기에 걸린) 최생 – 그런 걸 의도하고 쓰려했는데, 감기 때문에 (웃음) 머리가 아파서 길게 못썼습니다.

     

박루저 – 저도 비슷한 게, 지금까지 발제문들은 발제자들이 어떤 키워드를 찾아서 그것을 현실에 적용해 해석해보는 경향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그게 잘 안 느껴졌어요. 고전을 다루든 최근의 문학을 다루든, 문학 내적인 해석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의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고전, 그러니까 대문호라고 말해지는 작품을 다루는 태도에 두 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좋은 소설이라 전제하고 받아들이느냐. 고전이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현실의 기준으로 해석하는가. 이 두 개는 선택하기 나름이고, 섞여도 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가 잘 안 이뤄지는 게 최생의 고전 다룸 방식인 듯해요. (최생은 느빌에 합류하기 전 최초 독서모임에서도 꽤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고전을 다뤄왔다―편집자 주) 독자가 고전을 읽으면서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짚어주는 발제이든지, 혹은 고전이냐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현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텍스트로 접근하든지. 그 둘 중 어느것도 달성하지 못한.... 일반적이고 당연한 얘기들이 많은, 아쉬운 발제문이었어요!  

          

학곰 – 발제문의 죄의식이라는 포인트는 좋았지만, 동의는 안됐어요. 저는 세도가인 줄도 몰랐어요. 끝까지.

     

최생 – 제대로 안 읽으신 것 아닌지... 

     

학곰 – (웃음) 제대로 안 읽은 것 같아요. 그냥 얘네 이름 있는 귀족이구나, 하고 말았는데. 발제에서 동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일반인으로 확장하는 부분이었어요. '의무적으로' 꿈을 가져다 바치는 구조라면 일반화 될 수 있고 거기서 발생되는 죄의식을 공유할 수 있겠지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내 꿈 좀 들어봐주세요" 하고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구조였거든요.

     

최생 – 의무적인 거 아닌가요.

     

학곰 – 의무적인 건...

     

박루저 – 의무적이라 생각해요.

     

학곰 – 진짜? (당황) 그럼 제가 뭘 읽은 거죠. 저는 ‘꿈을 잘 팔아서 일확천금을 얻었다'든지 '왕족이랑 결혼했다'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거로 이해했어요.

     

최생 – 그것도 맞지만 의무적인 게 기본이라고 봤어요.

     

학곰 – 저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 이해해서, 이 사람들이 고문당하는 장면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이해했어요. 의무이기 때문에 꿈의 내용을 말했다기보다, 자신의 꿈을 자발적으로 고백했는데, 어쩌다 추궁 당해서 억울하게 끌려간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죄의식을 만든다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꿈을 고백하게 해서 통제하는 구조로 이해했는데, 제가 맥락을 잘못 받아들인 느낌이군요.

     

최생 – 디스토피아의 주체가 없고 피해자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이잖아요. 책 내용 중에 “우리가 무서워하기 때문에 그것이 무서운 존재가 된다.” 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요. '무서워한다'는 감정으로 유추해봤을 때, 그건 자발적이라기 보다 꿈의 궁전에 대한 위압감, 공포심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라 봤어요. 일확천금은 중요한 동기는 아니고 다만 시스템의 한 부분일 따름일 거구요.

      

(책을 읽지 않은) 해정– 책을 읽지 않고 발제만 읽었는데 발제에 대해 얘기하자면, 죄의식이라는 키워드가 좋았어요.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느끼는 것들인 것 같아요. <상냥한 폭력의 시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건, 가해자가 된다는 건 ‘나 가해자가 될래!’해서 되는 거라기보다 어쩌다보니 흘러가다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많잖아요. 그리고 가해자가 된 이상 더 이상 시스템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게 되는 처지가 되구요.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그런 게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본주의라든지 신자유주의라든지 그것의 문제점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의 혜택 역시 받고 있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가 애매해지는 상황과 매우 이어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어떤 시스템은 지지부진하게 계속 이어지고, 사람들은 어렴풋하게 죄의식을 느끼는 게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발제문 읽으며 장강명의 소설 <알바생 자르기>도 떠올랐어요. 조금 더 나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그런 보통의 사람들로 인해 분명 부조리한 어떤 시스템이 계속해서 굴러가는 상황과도 연관시킬 수 있지 않을까. <꿈의 궁전>은 해외 작품이니까 한국 내 작품이나 정치적 상황 같은 것과 엮으면, 추상적인 발제문의 내용을 좀더 구체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다희 – 저 역시 <첫숨> 때 얘기했던 시스템에 관한 것들과 겹친다고 생각했어요.  

     

박루저 – <첫숨>이랑 비슷한 건 그 지점인 것 같아요. 세계관이 하나하나 보이지 않고, 추상적인 세계관으로만 나오는 게.

     

다희 – 아예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것과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어떤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하나하나씩 알아가는 구조도 비슷해요.  

     

최생 - <첫숨>도 디스토피아 소설인가요.

     

다희 – SF 소설이에요.

     

박루저 – <첫숨>보다 <꿈의 궁전>이 더 재밌었어요.

     

최생 – (뿌듯) 이 사람 노벨상 받을 작가예요.








디스토피아, 그 이후     



박루저 – 저는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걸 못느꼈는데 발제문에서는 '현실 직시하기'라는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더라구요. 이건 최생의 개인적인 생각인지, 작가의 의도가 그러했다고 분석한 것인지 궁금했어요. 

     

최생 – 결말을 보면, 마르크가 꿈에서 벗어나면서 끝나잖아요. 꿈은 디스토피아를 내재화 시키는 기관이고, 현실은 자기가 살아가는 도시라고 했을 때, 그런 결말은 꿈의 실체는 허황된 것이고 꿈의 바깥, 그러니까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결국 중요하다는 작가의 개인적인 바램이 반영되어 있다고 봤어요. 

     

박루저 – 주인공이 꿈의 실체를 확인하고 수장이 되는데, 결국 꿈의 궁전이라는 세계에 매몰 되면서 끝나는 것 아니었나요?

     

최생 – 해결책이라 명명한 건, 소설은 물론 수장이 되면서 끝나지만, 글을 쓴 작가의 의도에 역사적인 배경이 깔려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당시 역사적 상황은 얼마 뒤에 알바니아가 독립을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결국 책의 결말 이후에 있을 변화를 암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알바니아 사람이 읽었다면 해결책이라 느끼지 않았을까요.

     

박루저 – 공산주의가 돌아가는 방식을 꿈의 궁전을 통해 까발린 건 사실이지만 변화 가능성을 꿈꾼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신입이던 이가 수장이 되기까지... 주인공이 윤리적인 죄책감은 느낄지 몰라도 ‘여기서 벗어나야겠다, 타파해야겠다’라는 암시는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최생 – 인물만 보면 그렇지만 작가는 결국 이 작품을 통해 문제의식을 제기한 걸 거예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해결을 전제하고 쓴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바꾸어야 한다’라는 필요성을 내포한 거니까요. 소설을 읽으며 '결국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욱이 그랬고요.

     

다희 –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으면, 그러니까 독자로서 거리를 두고 읽으면 '이렇게 행동하는 게 옳을까' 하고 생각하게 돼요. 그게 디스토피아 소설의 의미인 것 같아요. "이게 도대체 왜 그런 거야?"라는 질문에 "여기서 왜 따위는 물으면 안 돼."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결국 독자로 하여금 질문을 하게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어요. 

     

박루저 – 근데 그 해결책이 ‘현실 직시’인 건, 너무 피상적인 것 같아요. 조금 더 구체적인 문장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꿈과 해석, 그리고 민주적인 디스토피아



박루저 - 꿈은 단지 ‘꿈’이기 보다 그 이면에 많은 의미가 담긴 메타포로 이해했어요. 그걸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는데 어렵더라구요. 


최생 – 저는 꿈이 전적으로 메타포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메타포라기보다, 물론 전체주의화 시키는 수단이긴 하지만, 꿈이라는 특성을 생각해봤을 때 ‘개인의 내밀한 부분’ 그 자체이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말하는....

     

박루저 – 그게 메타포 아닌가요.

     

최생 – (당황) 나는 그냥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박루저 – 제가 이 작품을 순수문학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꿈’을 건드렸기 때문이에요. 작가는 분명 꿈이라는 소재가 지닌 철학적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하구요. 꿈을 소재로 선택한 건 지극히 메타포를 위해서라고 봅니다.

     

최생 – 저는 꿈,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가 꾸는 꿈들의 특성이 메타포를 사용한다는 것이지, <꿈의 궁전>의 꿈 그 자체가 메타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다희 – (웃음) 결국 같은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책을 읽지 않은) 해정 – 이 소설에서 꿈은 그냥 나쁜 거로만 나오나요?

     

최생 – 나쁘게 사용될 수 있는 개인적인 부분이죠.

     

박루저 – 어떤 이들이 꿈을 선별하고, 꿈을 해석해요. 그런 과정을 왕한테 보고하는데 날조인 것도 많고...

     

(책을 읽지 않은) 해정  – 꿈 자체보다는 꿈을 해석하는 것, 이 권력인 그런 내용이네요. 해석이 큰 권력이라는 설정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권력자의 해석이 곧 정답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명한 이의 평론이 곧 정답이 되는 것처럼. 내지는 지금 굳이 남/여 얘기를 꺼내자면. 지금까지 해석의 장이라 할 수 있는 담론 안에 여자의 목소리가 유독 소외되었던 것처럼... 남성, 그것도 아주 소수의 남성만이 점유했던 그런 담론의 장이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요.

     

다희 – 금수저여서 빨리 진급하는 것 역시 우리나라 청년 문제 등과도 연관시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이 작품은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개개인들 심리가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해요. 공무원들처럼.

     

박루저 – 공무원 열풍과 연결해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책을 읽지 않은) 해정 – 민주적인 디스토피아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으면 해요.

     

최생 – 꿈이라는 건 개인적인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꿈의 궁전> 속 디스토피아는 다른 디스토피아와 다르게, 개인으로부터 힘이 나오는 구조죠. 개인으로부터 나온 것들이 다시금 개인을 압박하는 도구가 되는 구조가 '민주적인 디스토피아'일 수 있지 않나 싶었어요.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요. 한편으로는 ‘우민정치’라는 단어를 생각하기도 했어요. 


다희 – 일리가 있는 해석인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공포정치 상황을 진짜 살벌하게 그리고 있잖아요. 도대체 당시 역사적 배경이 어떠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술탄 한마디면 다 되는 상황이잖아요.

     

박루저 – 독재정치. 안기부 같은 거겠죠. 말 한마디 잘못하면 끌려가고.

     

다희 – 그런데 <상냥한 폭력의 시대>나 <꿈의 궁전>의 경우, 우리도 함께 복역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비단 절대적으로 나쁜 한 사람으로 인해 돌아가는 디스토피아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것과 이것을 같이 놓고 보려면 깊은 분석이 필요할 듯 해요.  

     

박루저 – 저는 그 사회 개개인이 디스토피아적 현실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는 것, 그 자체가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해요. 문제가 이렇게 적나라한데도 어떤 목소리도 없는 세계요. 그런 의미에서 '민주적인 디스토피아'는 일반적인 디스토피아에 다 해당되는 내용 아닐까 싶어요. 발제문에 인용된 디스토피아 작품들 중에서도...

     

최생 – 저는 1984만 읽었습니다.

     

박루저 – 그러면서도 인용한 거예요?!

     

최생 – (당황) 네이버에 써있었습니다..! 아무튼, 박루저가 말하는 디스토피아 작품들은 압박하는 주체가 분명하게 있다는 점에서 <꿈의 궁전>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 작품도 술탄이라는 지배자가 있지만요. 지배하는 힘은 국가에 가담하는 개개인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에서 분명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왜 하필이면 주인공이 잘나가는 집안 자제였을까를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 사이에는 '중간에 껴있는 자' 혹은 '암울한 정치적 상황 속 지식인' 같은 말들이 오고갔는데 글쎄. 다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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