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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Feb 23. 2018

2018년의 디스토피아 - <회색인간>

이 시대의 디스토피아에 대하여

*느빌의 책방에서는 "도시"라는 키워드에 이어 "디스토피아"라는 키워드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회색인간>은 "디스토피아" 3부작 중 두 번째 텍스트입니다.




0. 모든 세상은 디스토피아다


  지난 발제에서 '꿈의 궁전'을 통해 실체나 주체 없이 개인을 시스템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게 하는 디스토피아와 이러한 디스토피아가 현재에서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논의 중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는 결국 이 소설 속 디스토피아는 당시 알바니아 사회를 반영한 것이며 지금에서도 경각심을 주긴 하지만 온전히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는 디스토피아 소설이 갖고 있는 속성과도 연결될 것이다. 지난 발제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디스토피아 소설은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대회하여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을 그려낸다. 이러한 가상의 공간은 외부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약간의 공포감과 함께 그래도 이런 세상보다는 현실이 낫다는 위안을 얻기도 하겠지만,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는 두려움을 넘어서 더 큰 진실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디스토피아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지점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느껴지는 현실의 어떤 지점을 떼어내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디스토피아가 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동시대의 작가가 쓴 디스토피아 소설에 대해 읽어보고 싶었다. 최근 신선한 등장으로 주목 받고 있는 김동식의 <회색 도시>가 바로 그것이다. 현 시대의 젊은 작가가 그린 디스토피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1. 기꺼이 희생해줄래

 
  소설에는 '희생'이라는 키워드가 종종, 자주 등장한다. 희생시키려 했던 노인의 지혜 덕분에 무인도를 살아남을 힘을 얻기도 하고(<무인도의 부자 노인>),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억지로 희생시킨 끝에 세상이 멸망하기도하고(<운석의 주인>), 희생당할 뻔한 사람들이 이를 거역하고 살기 위해 했던 행동이 역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식인빌딩>).


자신의 목숨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바쳐야 하는 게 맞을까?
누구라도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걸까? (<운석의 주인>)


  이전의 시대에서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어머니는 희생해야 했으며, 우리 마을을 위해서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희생하고, 또는 더 큰 이념을 위해서 꽤나 많은 목숨이 희생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러한 희생이 대부분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의 수많은 여성이 전쟁에 참여하고 싶어 나섰던 것처럼 말이다.) 이전의 발제에서도 계속 논의해 왔듯이 지난 시대는 그 시대만의 감각이 있으니, 그들의 감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래서 우리의 감각은?’ 이라는 질문에 <회색 인간>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성공만을 좇으며 인간 같지 않은 삶을 살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있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당장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운석의 주인>)


  그렇다. 이제는 더 이상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으며, 공동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할 수 없는 시대이다. 무엇인가를(그리고 특히나 나 자신을) 희생해서까지 지켜야 할 거대한 이념과 담론이 사라졌으며, 이전에는 희생으로 여겨지지 않던 것들이 희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희생자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 청년 등 그 누구든 될 수 있다.


희망을 찾았단 소식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반면, 김남우는 절망적인 얼굴이 되었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공포심을 느꼈다. (<운석의 주인>)

“우리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살고 싶었던 소수였을 뿐입니다.”
“...” (<식인빌딩>)


  이처럼 회색도시의 디스토피아는 희생의 미덕이 아닌 다른 것을 보여줌으로서 지금까지 쌓아온 ‘가치 있는 희생’에 전복을 일으킨다. 이를 통해 이전에는 그려지지 않았던 희생된 인물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2. ‘나’만 아니면 돼


  그렇다면 이러한 희생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이는 바로 ‘차별’이다. <회색 인간>에서 ‘희생’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단어이다. 각 작품의 세계관에서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서로를 구분 짓고 계급화한다. 밤인간과 낮인간, 여섯 손가락, 뱀파이어 등. 서로 다른 것을 이유로 배척한다.  


 다만 한 가지, 정말로 무서운 한 가지는 바로 인간들의 차별이었다.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고, 쉽게 웃음거리와 가십거리가 되었으며, 어딜 가나 못마땅한 눈초리와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 (<아웃팅>)


  그리고 이러한 계급을 만드는 것은 언론이거나 무지한 대중, 기득권층이다. 인터넷 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책임지지 않을 말들이 넘쳐나고 결국에 희생되는 것은 다른 개인이다. 대중들은 끝없이 자신의 분노를 털어놓을 대상을 찾는다. 어느 누군가를 욕하다가 금방 잊고 또 다른 누군가를 욕한다. 또 아주 사소한 단면만으로 사람이나 사건을 판단하기도 한다. 또한 기득권층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그 차이를 견고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다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결말은 굉장히 바른 말로 끝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회색인간 속의 많은 서사가 희생당해 온 많은 소수자들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며, 많은 독자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을 했다는 것에 있다.



3.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답답해지고 불편해질 수 밖에 없던 이전까지의 몇몇 소설들과는 달리 굉장히 유쾌하고 상당히 통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우선, <회색 인간>은 꽤나 직접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폭로하고 지적질을 날린다.


“한국의 청년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빌어먹을 학교 폭력! 그동안 왜 이렇게 손 놓고 있었던 거야?”
“노인복지가 이게 뭡니까? 언제까지 폐지를 줍고 다니시게 할 거야?”
“경찰은 뭐 하는 거야? 어제도 살인 사건이 벌어졌잔아! 치안에 신경 좀 쓰라고!” (<사망공동체>)


  그리고 사회구조가 내면화되어 있는 모습들도 아무렇지 않게 표현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리고 나도 기득권층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그, 그런! 허! 우리도 나이 먹으면 영원의 구가 필요해질 수도 있다고!”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


  그리고 그러면서도 인간이 지켜야 할 마지막 존엄성이란 무엇인지를 당당하게 주장한다. 이를테면 부정적인 사회를 보여주고 비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은 바뀌기 어렵고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볍게 날려버린다. ‘그게 가능하겠어? 당연히 안돼.’ 라고 말하면서 외면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안될 것 같아? 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다 이런 것이니 네가 노력해야 돼’ 라고 말하는 입을 막아버린다.


"뭐야? 누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거야? 법은 또 왜 이래?"
"인종차별이 아직도 있다니? 이거 뭐 하자는 거야! 방송국들은 이런 걸 알리지 않고 뭐 하나?"
"뭐?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어디서는 아직도 동성 결혼이 불법이라고?"
"세상이 이래가지고, 나중에 신인류 아이들이 자라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겠어?" (<손가락이 여섯개인 신인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에 주목했으면 좋겠다. 커뮤니티에서도 많은 팬들을 거닐고 있었다는 이 소설의 현상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이 소설도 또 한물간 이야기들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살아남아 기록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았던 세상이며, 이것이 끔찍한 ‘디스토피아’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언젠가는 정말로 세상의 모든 차별들이 사라져서 지금의 이 소설이 이해가 안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넌 살아남아.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꼭 살아남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줘.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회색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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