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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Feb 28. 2018

9. 요즘은 쓸모에 대해 고민합니다.

치명적 올스타 9: 장 자끄 상뻬,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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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 구독, 라이킷, 피드백 댓글 모두 환영합니다.

* 책의 전체적인 맥락보다는 임-팩트 있었던 일부만을 차용합니다.


1. 지난 이야기

지난 글에서,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예의를 갖추되 나의 존엄을 깎는 말, 행동에는 단호하게 대처하자고 다짐한 학곰. 오늘은 어떤 포인트로 치-명적인 인간으로 내딛을 것인가.




2. 요즘은 쓸모에 대해 고민합니다.



너는 지 잘난 맛에 사는 팔자야. 그걸 받아들여야 해.



2017년 2월. 신촌. 초면에 반말을 찍찍해대던 역술인 아자씨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학 졸업반이던 나는 괜스레 갑갑해서, 한편으론 미래가 어떨는지 궁금해서 혼자 사주카페에 찾아갔더랬다. 사실 물어볼 것은 없었다. 같이 정신 못 차리고(?) 4학년까지 글쓰고 그림 그리고 책을 읽던 친구들이 토익과 기업 인적성 책을 들고 인크루트와 잡코리아와 자소설 닷컴을 들락거리는 것을 보고 막연히 불안해져 간 것이었다.


지난 회차에 적었듯이 2017년 나의 키워드는 '자존감'이었다. 졸업반이 되어 나 역시 남들 하듯이 대학에서 개최하는 취업설명회나 컨설팅을 찾아다니면서 나의 과거를 살펴볼 일이 많아졌고,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지?라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에 쓸만한 에피소드는 마땅히 없었고 그래서 매일 좌절하며 과거를 떠올렸다. 과거를 캐면 캘 수록 나의 자존감도 닳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양반은 난데없이 '지 잘난 맛에 사는 팔자'라니. 아자씨의 반말도 짜증 나는데 헛다리까지 짚는다고 생각하니 영 기분이 별로였다. 그렇게 복채가 아깝다 생각하면서 사주카페를 나왔고 길기만 한 봄과 여름을 견뎌냈다.


2017 서울 국제 도서전 부스의 자기소개. "요즘은 쓸모에 대해 고민합니다."

물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은 아니다. 뭔가를 많이 하고는 있었다. 기린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근 2년째 하고 있었고(지금도 하고 있다), 브런치 개인 계정에 일주일에 2권 꼴로(여름에는 거의 매일 한 권씩) 책 리뷰를 올리고 있었고, 운이 좋아 서울 국제 도서전의 Kocca 부스에서 웹툰을 전시할 기회도 있었다.(잘 보면 유우-머라든지 본격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학곰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내가 쓴 글 같다. 후-후)


그렇지만 그때의 내가 나에 대해 소개한 문구는 이런 것이었다.


 요즘은 쓸모에 대해 고민합니다.


이 말이 나온 맥락을 기억한다. 나는 분명히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계속 움직이고는 있지만, 취업시장에 나온(정확히는 내몰린)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남들 다 따는 토익점수 하나 없었고 상경계열을 전공/복수전공/부전공하지 않았기에 지원할 수 있는 직무도 한정적이었다.(물론 대학을 나왔기에 할 수 있는 배부른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나의 쓸모에 대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민해보았다. 자존감의 바닥을 본 순간이었다.



3. 따뷔랭을 못 타는 따뷔랭과 학곰할 수 없는 학곰


 자전거 못 타는 아이(2009)


장 자끄 상뻬의 동화 <자전거 못 타는 아이>의 주인공 라울 따뷔랭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담장에서 공중제비를 하면서 뛰어내릴 땐 완벽한 착지를 할 수 있지만 자전거'는' 타지 못한다. 그는 자전거를 타보려고 자전거에 대해 연구한다. 해부도 해보고, 개조도 해보고, 수없이 시도해도 결국 타는 것에 실패한다. 대신에 자전거를 오래 들여다보니...  고치는 데는 재능이 있음을 깨달아 자전거 가게의 견습생으로 일하게 되고,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따뷔랭의 자전거를 고유명사 '따뷔랭'이라고 부른다. 그 정도로 라울 따뷔랭의 '따뷔랭'은 가치를 인정받고, 그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준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따뷔랭이 '따뷔랭'을 타지 못 탄다는 사실을 모른다. 본인의 입으로 탈 수 없다고 말해도 그저 농담으로만 생각한다. 따뷔랭은 결국 입을 닫고 만다.


책의 포인트는 후에 나오는 '우정'이라든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선'같은 것이겠지만 내가 임-팩트 있게 읽은 부분은 내가 정리한 부분까지다.


따뷔랭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 경우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까지 받으며 '따뷔랭'이라는 고유명사까지 헌사받았으니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가 가진 결핍은 누구도 채울 수 없다. 아무도(심지어 그의 가족까지도) 그에 대해 잘 모르고, 잘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우는 다르겠지만 내가 이 대목에서 따뷔랭의 입장에 퍽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쓸모를 알려고 하지 않을 때 오는 씁쓸함 때문이었다. 사실 취업이 어렵다거나 청년실업이 몇백만을 돌파했다거나 하는 뉴스가 날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를 힘들게 했던 것 나름의 방법으로 쌓아온 나의 작업들과 결과물이 토익 점수와 같은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필터링(보지 않고 거르는)된다는 것이었다. 나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참담했다.


몇 번 기준조건 미달로 면접전에 탈락을 당하고나서 나는... 역으로 행동했다. 내가 해오던 것들은 더욱 열심히 했다. 독서모임을 나가고, 읽은 책은 리뷰를 남기고, 그림을 그렸다. 팟캐스트를 계속하고, 전년도부터 해오던 스토리텔링 교육의 결과 발표회(위 사진이 결과 발표회의 이름표)를 준비했다. 정신 못차린 짓을 계속했다.


그렇게 하니, 나는 취업시장에서 더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없었고, 이유모를 자신감도 사라졌다. 밤에 리뷰를 마감하며 자주 울었고, 못하는 술도 종종 마셨다. 그저 관성으로 움직였다. 글쎄... 나는 이상한 똥꼬집으로 나의 쓸모를 나의 방식으로 증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쓰다 보니 쓸모의 의미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정도로 쓰인 것 같다. 그것이 맞다.) 그러다가 운 좋게도 나의 어학점수를 보지 않았던 어느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취업설명회/박람회/워크샵에서 알려주는 직업분류에 없는 직업이었다.


애석하게도 해피엔딩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끝까지 외길인생을 걸었으면 더 멋진 이야기가 탄생했으련만... 그래서 글을 쓰며 계속 경계한다. 이 글이 자칫 "나처럼 해봐. 그럼 성공해."라고 비칠까 봐 두렵다. 또 배부르고 안정되니 여유가 있을 때 쓰는 글이라고 생각할까 봐 또 무섭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는 이것이다.



세상이 당신의 쓸모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은 자신의 쓸모를 믿어야 한다는 것.



드럽게 오글거리고 교훈충같은 말이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함부로 "세상의 기준에 너를 맞추지 말어!" 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외길인생을 살다가 인생 망하면 내가 책임져줄 것도 아니니까. 다만 '당신의 쓸모를 믿고 지켜나가는 것'만은 감히 권하고 싶다. 내가 아니면 누가 또 나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겠는가.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신에 대해 관심이 없다. 있더라도 당신보다 더 당신에게 관심을 가질 타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쓸모를 응원한다.



★치명 포인트 9
세상이 당신의 쓸모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은 자신의 쓸모를 믿는 것.





요샌  맥주 대용으로 블랙보리 파워-원 샷함. 크으- 난 너무 멋져! 치명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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