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슨한 빌리지 Mar 03. 2018

15. 조작된 세계에 사는 우리

초록색 불꽃입니다. 희망의 색이지요.

*느빌의 책방에서는 "도시"라는 키워드에 이어 "디스토피아"라는 키워드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영화<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디스토피아" 3부작 중 마지막 텍스트입니다.


‘희생’이라는 키워드로 들여다 본 <회색인간>은 환상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또한 문단에 물들지 않은(?) 작가의 순수한 생각을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회색인간>의 단편소설 중 [디지털 고려장]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현실성이 있으면서도 기술에 발전과 그 기술을 사용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의 입장을 잘 풀어냈다고 생각했다. 


디지털 고려장 같은 소재는 실제로 미래와의 연결점이 보인다. 무덤과 납골당의 증가로 인한 토지 부족 문제와 현실의 육체를 사이버공간으로 옮기는 데이터 사이언스가 결합된 것이었다. 


인구증가가 계속해서 이루어지지만 우리가 지구 외곽으로 식민지 건설을 할 수 없을 때는 노인뿐만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몸이나 정신을 디지털화 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어 연결을 시켜보았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이하 아조세)는 시계를 좀 더 뒤로 돌려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석유와 원자력 없이 석탄으로만 돌아가는 스팀펑크를 그려냈다. 하지만 내가 작품을 고른 것은 아조세가 단순히 SF의 장르의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1. 대체역사 


과거와 미래를 움직이며 현재가 계속해서 바뀌는 타임슬립물과는 달리 아조세는 ‘대체역사’를 택했다. 대체역사는 과거의 한 시점에서 ‘그때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한 시점이 바뀐다는 것은 곧 그 후의 역사가 바뀐다는 것을 뜻하고 작가는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그려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대체역사 소설도 큰 틀로 보면 SF의 한 가지이기도 하다.(김진명이나 복거일의 소설들, 영화 2001 로스트 메모리즈 정도가 생각난다.) 



대체역사의 출발점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현재에 대한 불만’ 내지는 ‘현재에 대한 재해석’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아조세에서는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 전쟁 전날 한 과학자의 실험실로 찾아가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강한 군대를 원해 ‘강해지는 물약’을 원했지만 과학자의 실험으로 탄생한 것은 ‘말할 수 있는 도마뱀’이었다. 화가 난 그는 실험실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결국 폭발로 인해 숨진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나폴레옹 4세는 프로이센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나폴레옹 일가가 계속 프랑스를 지배한다. 한 가지 더. 전세계의 과학자들이 납치되기 시작한다. 기술발전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도 발명되지 못한다. 이처럼 아조세는 매력적으로 이야기를 출발했다. 이처럼 대체역사물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 자원 


아조세의 많은 것들은 석탄을 연료로 사용한다. 풉스의 자동차, 파리와 베를린을 잇는 케이블 카 그리고 열기구까지. 많은 것들은 아직도 석탄으로 돌아가는 증기기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석탄은 매우 싸고 손쉽게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재료지만 부작용 또한 크다. 


불완전연소로 인해 나오는 가스(일산화탄소/질산화물/황산화물)는 대기를 오염시킨다. 아조세에서 사람들이 방독면을 쓰고 다니고, 영화의 배경이 줄 곧 어두운 것이 이를 알려준다. 또한, 석탄이 아무리 흔한 것이라고 하지만 한정적인 자원을 두고 결국은 ‘석탄’을 두고 아메리카 연합과 싸운다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초반에는 아름다운 자원인 ‘석유와 원자력’을 쓰지 못한다는 설명도 나온다. 



사실 과거로 시점이 옮겨갔을 뿐 영화의 상황은 현재의 우리와 같다.

그들의 석탄이 우리의 석유와 원자력이다.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는 대기오염을 심화시키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자력의 무서운 면을 보여주었다. 또한 중동에서는 석유를 둘러싼 전쟁이 일어난다.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는 거대자본을 등에 업은 석유회사와 소위 말하는 ‘원피아’에게 거부당한다. 트럼프 정권이 들어온 뒤 미국은 전기차 보조금과 태양광 보조금이 끊겨 많은 신재생에너지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크기를 축소했다. 한편 몇 개월 전 한국에서는 신고리 원전 건설이 재개되기도 했다. 


 아조세에서는 ‘전기’가 그 역할을 맡는다. 전기가 발명되지 못한 세계는 어둡다. 전파도 활용하지 못해 파리에서 베를린까지는 이틀이 넘는 시간(극중묘사)이 걸린다. 전기가 발명된 현재,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파리에서 베를린까지 10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더 나은 자원과 기술을 혹시 인간 스스로가 눈앞의 이익에 멀어 막고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조세의 결말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전기가 전지전능한 것처럼 다루어지지만 그것을 얻는 소스에 대해서는 묘사가 없다. 발전소가 아조세의 배경처럼 석탄을 사용하거나 석유 혹은 원자력을 사용한다면 환경문제는 풀리지 않는 같은 굴레로 들어갈 뿐이다. 전기가 훌륭한 에너지원임은 틀림없지만, 세부적인 설정은 섬세하지 못했다.


3. 미래를 바라보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루어진 것이 과학기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욕망이 향하는 방향이 더욱 중요하다. 극중 ‘쉬멘’이 이루고자 했던 프로젝트는 더러워진 지구를 버리고 아브릴이 개발한 ‘궁극의 물약’으로 새 생명을 우주로 퍼뜨리는 것이었다. 여기에 현재의 인류(와 도마뱀)는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는 인터스텔라에서 현재 사람을 구원하는 plan A가 아닌 다량의 복제 인류배아를 퍼뜨리는 plan B와 유사하다.) 



하지만 ‘로드리그’는 기술을 소수가 독점하는 것을 꿈꾼다. 결국 그의 이기심은 영화에서 그와 같은 종의 파멸로 이어진다. (과학이 죗값을 치루는구나, 라는 대사가 와 닿는다.) 사람들은 좋은 기술, 나쁜 기술이 있다 말하지만 기술은 그냥 기술 그 자체일 뿐이다.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브릴은 로켓이 날아가기 전 궁극의 약물을 뿌렸고, 70년 뒤 그 약물은 달과 화성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는 결과가 되었다. 비록 영화적 상상력이긴 하지만 아브릴의 판단은 인간이 우주선을 타는 기술만 개발된다면 자연스럽게 정착을 할 수 있는 연계가 된 것이다. 


가사노동에 대한 논의 역시 나는 기술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가사노동을 할 수 있는 진보된, 혹은 편리한 물건이 나온다면 성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그 제품을 사용하거나 제품의 혜택을 받아 남는 시간에 다른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보고 자란 세대는 자연스럽게 인식 역시 바꾸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 이야말로 진보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 바로 바꾸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아브릴와 쉬멘이 그랬던 것처럼, 기술은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환경문제라면 지금의 우리는 빛을 보지 못할지라도 미래의 우리나 혹은 후손에게 좋은 지구를 물려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가야 한다. 로켓이 발사되고 다시 에펠탑은 하나가 되었다. 아조세의 인류는 조금 늦은 발달로 2001년에 달에 처음 발을 밟았고 이제 우주의 시대로 나아가려 한다. 


<earth rise> 1968년 아폴로 호가 달에서 찍은 사진. 출처 :  NASA 홈페이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어디일까. 과거 1960년대, 인류는 아브릴의 조작된 세계에서보다 50년이나 앞서서 달로 향했다. 비록 우주탐사의 배경에는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의 경쟁이 밑거름이 되었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은 21세기에는 우주로 인류가 나아갈 줄 알았을 것이다. 


같은 로켓기술이지만 그 안에 핵탄두를 싣느냐, 사람을 싣고 다른 행성에 가느냐는 천지차이다. 나는 단연코 후자가 인류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


디스토피아는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려주고 그것을 미리 생각해보고, 그 선택지를 지울 수 있게 해주는 장르가 아닐까 생각한다. - 끝-



다음 주제는 '반격' 텍스트는 손원평의 <서른의 반격>으로 이어집니다.


* 영화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

   배경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위한 자기계발서 BEST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