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낳아 텅장으로 기른 내 새끼들 자랑 타임!
메타-덕질이라고 들어는 보았니? 덕질에 대해서 덕질한다, 이 얘기지.
지금부터 느빌 에디터들의 출구없는 덕질향연이 벌어질테니까 청심환부터 하나 씹고 와서 잘 보라구. 맞아, 이 글은 덕후 양산을 위한 덕질 뽐뿌글이야.
음, 먼저 내가 생각하는 덕질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해볼게.
우리 삶에서 우리의 선택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학창 시절엔 [중간고사-기말고사- 다시 중간고사]의 무한루프. 이렇게 몇 년 지내다 정신 차려보면 입시 준비. 입시 후에 정신 차려보면 다시 대학에서 [중간고사-기말고사-다시 중간고사]의 무한루프. 이렇게 몇 년 지내다 다시 한번 정신 차려보면 대학에 맞춰서 취준. 그리고 이때쯤 되면 '으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흐잉 ㅜㅜ' 같은 뻔한 고민. 이 고민마저도 멘토와 역술가에게서 쉽게 답을 GET! 그렇게 값싼 힐링을 얻고 다시 그저 그런 삶으로 컴백. 얼마 못가 또다시 현자 타임 반복. 이게 우리들의 삶이라구. 맞지? 으, 끔찍해라.
그러니까, 이 끔찍한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내 취향' 혹은 '내 스타일'을 만들 기회가 거의 없단 말이지. 엄빠의 경제력이나 본인 대학으로 그 클라쓰만 나뉠 뿐, 우리가 다 비슷하게 저런 삶을 살아간다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유행에 민감해지고, (나처럼) 억지로 힙한 곳에 집착하고 급식체를 쓰는 자신을 발견한다능? ㅇㅈ? 겉으로는 어떻게든 '나는 잘 살구이써어!' 라구 보여야 하니까. 근데 이럴수록 스스로의 자존감은 더 낮아진다는 거, 너도 알고 있지? 여전히 '으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흐잉 ㅜㅜ'라는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구.
이 모든 끔찍함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덕후'가 되는 거야. 갑자기 무슨 명상래퍼 김하온 쌍욕하는 소리냐고? 자, 들어봐 봐.
내 삶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나만의 취향과 내 선택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거, 다르게 말하면 내 스타일을 만드는 거. 그게 덕질의 뽀인뜨거든. 그렇게 덕후가 되고 나면,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자신만의 무엇이 생겨. 유행 따위에 민감하지 않고 내 취향이 생겨나가는 거지. 잘 생각해봐. 덕후라고 놀림받아서 덕질 그만두는 사람 봤니? 덕후가 되면 그 따위 주변 시선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어지는거야. 그렇게 남들 죽어라 따라만 했던 자신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좋아하는 걸 찾아나가는 거지. 이렇게 삶에서 덕질이 중요해.
그럼 오덕이 되고 난 뒤는 뭐하냐고? 다시 현타가 오는 거 아니냐고? 훗, 귀엽긴. 걱정 마. 아직 십덕까진 갈길이 멀다구. 그러니까 하루빨리, 유쾌하게 덕밍아웃 하자고!
아 참. 끝으로, 덕질마저도 지식인에 "어떻게 덕후가 되나요?"라고 물어볼 것 같은 답답한 너님을 위한 팁을 줄게. 오덕에서 십덕으로 가는 지름길 말이야. 간단해!
1. 일단 뭐든 하나 꽂혀본다.
2. 내가 꽂혔다 싶으면, 거기에다가 MONEY를 쓴다.
그렇게 되면... 덕질지옥 START!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십덕이라 불리고 있는 돈 없고 외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럼, 조만간 너에게 찾아올 무사하지 못할 덕통사고를 기원할게!
덕질하기 딱 좋은 봄 날씨에. 에디터 박루저가.
아 진짜 로맨틱펀치 개좋음ㅠㅠ배인혁 미쳤지 않습니까? 어떻게 안 좋아?ㅠㅠ
힘들고 지겹고 우울할 때 목소리 들으면 다 풀림 이게 인생의 행복이 아니라면 무엇?
(feat. 로펀 단공 보고 온 날)
진정하고. 일단 입덕을 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해줄게. 사실 내가 락밴드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더랬지. 그건 정말 예상치 못했던 덕통사고였어. 2013년도 그린플러그드 D-1이자 입덕 2일 전, 나는 그때 락페도 첨이었고 꽤 거금 들여서 가는 공연인데 제대로 즐기려면 미리 예습이라도 하고 가자며 라인업 밴드들의 노래들을 듣고 있었어. 로펀의 목소리가 특이해서 이 무대는 꼭 보자고 했었다. 근데 그때도 얼마나 성의가 없었냐면 목소리만 좋다고 생각할 뿐 검색조차 해보지 않아서 실제 얼굴이 어떤지도 몰랐다? 그래서 처음에 기타리스트 콘치가 먼저 무대 위에 올라왔는데 그걸 보고 보컬인 줄 알고 '오 목소리랑 생김새가 매치가 꽤 되네(?)' 이러면서 기다렸다니까.
근데 공연 시작되고 마지막에 겁나 멋있게 보컬 배인혁이 등장하는데 헐 비주얼 쇼크.. 와씨 뭐지? 했잖아. 무대 시작하고 right now-미드나잇신데렐라 떼창 하는데 진짜 가사 그대로 '우린 미쳤어'더라. 처음 무대 본 소감은 '오 미친 이분들 진짜 약 한 거 아님?'이었어 충격오브충격. 와 이런 게 락페의 묘미구나 싶었지. 내가 왜 이런 걸 모르고 살았지 싶은 마음? 그래도 사실은 그날만 해도 나의 첫 락페를 젤 재밌게 만들어준 '약 한 것 같은 밴드'그 정도였는데.
홀린 듯이 다음날쯤 유튜브에 로맨틱펀치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근데.. 이 사람 뭐지? 락페에서는 거의 멘트 없이 미친 듯이 노래만 달렸는데 단독 공연에서는 멘트도 되게 차분하게 잘하는 거야. 썰 푸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네? 게다가 당시엔 아직 싸이월드 할 때였는데. 싸이월드 다이어리 갬성이 내 취향을 한번 더 저격한 거야. 글솜씨도 예사롭지 않으니까 막 더 섹시하잖아. 내가 이런 이외의 모습에서 나오는 섹시함에 약한 거 어떻게 알고... 게다가 개인 유튜브 계정에는 미발표 개인 곡들을 통기타 치면서 불러주는데 가사가 쩌는거야. 지금은 음원으로도 출시된 배인혁 - '나는 당신에게 그저', '딱 죽기 좋은 밤이네', '아냐' 같은 곡들.
그냥 약빤것처럼 가창력쩔고 신나게 노는 게 다가 아니라, 이 남자 매력 미쳤는데? 이거 그건데? 내 껀데? 그렇게 나는 덕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어. 그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단독 공연 + 가끔 열렸던 버스킹 + 무료공연 + 로펀이 라인업 되어 있는 락페에 열심히 출근했음은 물론이고. 로펀 나를 십덕으로 인도하사 공연 가서 손이 잡히거나 쓰담쓰담해주는 일명 계도 타고, 로펀 강림하사 퇴근길 기다려서 셀카도 찍고, 말그대로 로펀 충만한 덕후 생활을 누렸어. 로멘. 그러다 작년 취업준비로 바쁘기도 하고, 여러 일들이 겹쳤던지라 공연도 못 가게 되고 그러드라. 이렇게 한 시절의 추억으로 덕질이 끝나는구나 싶었어.
근데 이번에 오랜만에 클럽투어를 갔었거든. 처음에 뭔가 서먹할까 봐(혼자 친해졌다 멀어지고 난리) 걱정도 했는데, 첫 노래 시작하자마자 다시 덕통사고 그날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덕통사고는 정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고 벗어나기도 쉽지 않단 걸 새삼 다시 느꼈지. 그래 탈덕이란 게 있을 리가 있나. 난 잠시 충전 중인 휴덕이었을 뿐이야. 이제 푹 쉰만큼 열심히 놀아야지 또. 지금도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인데 로맨틱펀치 공연 영상 보면서 실실 대고 있다? 덕질이 없었음 내 현생 얼마나 황량했을까. 여러분 로펀 만나고 구원받으세요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말, 한 번쯤 들어봤을 거야. 농담처럼 통하는 이 말은, 내가 덕질하는 분야로 오면 진리가 된다고. 나는 한국 성우 덕후거든.
[명사] 〈연영〉목소리로만 연기하는 배우. 영화의 음성 녹음이나 라디오 드라마 따위에 출연한다.
응? 그런 게 있어? 싶겠지만, 그런 세계가 있어. 심지어 한번 인식하기 시작하면 찾기 싫어도 어디서나 접하게 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들리는 다음 역 안내부터,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는 '60초 후에 계속됩니다' 속 수많은 광고는 물론, 게임 속 캐릭터 목소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열일하거든!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이 알려지고, 성우 덕후의 대다수의 입문작은 애니메이션이지. 90년대 생이라면 공감할걸? 〈이누야샤〉,〈카드캡터 체리〉,〈원피스〉로 시작해 〈개구리중사 케로로〉,〈학원앨리스〉, 〈오란고교 사교클럽(원제: 오란고교 호스트부)〉로 이어진 투니버스의 황금기를 말이야. 다들 2D 남친을 열심히 팔 때 성숙한(?) 나는 목소리 남친을 팠지. 그렇게 필연적으로 초등학교 6학년 즈음 귀르가즘에 눈을, 아니 귀를 텄어(?!).
그런데 눈을 뜨고 나니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제 나름 방대한 세계가 있는 거야. 애니메이션은 물론, 미소녀/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부터 오디오 드라마까지. 가장 충격적이자 만족스러웠던 건 〈The Jara〉시리즈. 한 성우가 여러 설정 안에서 양 세듯 자라를 세며 잠을 재워주는 CD인데, 깜깜한 이불속에서 온 감각을 귀에 집중하며 들으면 잠이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풍요로워졌지. (19금 버전 〈The Jaja〉도 있어. 장난 아냐. 잠 못자. 대놓고 안 재워..) 이후 영국 드라마 〈셜록〉 더빙이 초월 더빙으로 각광받아, 오랜 시간 시달렸던 더빙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오해와 편견, 핍박 속에서 잠시 행복했었어.
그러나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암흑기가 시작됐어. 대부분 분야의 덕질이 그렇듯, 내가 페미니즘에 눈을 뜨면서부터 시들해진 거지.
임ㄱㅁ 성우의 팬 성추행 파문과 'Girls do not need a Prince'란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벌어진 김자연 성우 부당 해고 사태에 대해 성우 협회가 피해자를 회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나미가 뚝 떨어졌거든. 그 후로 관심 있는 상대의 젠더감수성이 낮을까봐 한 걸음 물러나는 것과 같이, 덕질하고자 해도 그 사회에 대한 믿음이 낮아지니 마음이 시들해지더라고. (나만의 얘기는 아니지? 아이돌 덕질하는 친구도 그렇더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내 귀에 캔디'란 노래는 성우를 위한 헌사곡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광고에 좋아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가족 모두를 침묵모드로 전환시켜.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The Jara〉가 듣고 싶네? 다음에 본가에 갈 땐 묵혀 둔 아가(CD)들을 다시 꺼내야겠다. 요즘 삶이 많이 고단하거든.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여러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이들을 흔히 '잡팬'이라고 하지. 그리고 '잡팬'들은 은연중에 팬덤 내에서 '넌 진정한 우리 오빠들의 팬이 아니야' 라며 눈총을 받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어. 세상에 잘생긴 오빠들(어빠이기도 함)은 많고 그들은 하나 같이 각각의 매력을 뽐내며 빛나기 마련인데.
뭐 내가 어느 아이돌들의 잡팬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나는 덕후중에서도 이른바 '잡덕후'라는 말이야.(물론 잡팬이기도 합니다.)
내 덕질의 역사는 이랬어. 어릴 적에는 PC게임과 만화에 빠져 있었지. 당시에는 게임잡지를 사면 게임CD가 붙어 나오던 시절이었거든. 게임잡지와 게임 CD를 모아 공략집을 보며 플레이했어, 만화는 일주일에 3권만 빌려보기로 정해져 있었지만 언니와 함께 몰래 만화를 빌려보는 것에 용돈을 탕진하곤 했어.
좀 더 커서는 추리소설에 빠져 애거서크리스티전집과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일본 추리소설들을 독파했고, 비슷한 시기에 일본 드라마에 빠져 밤을 새워 드라마 전편을 보곤 했어.(일드의 장점 중 하나는 한 편이 40분가량, 한 시즌이 11편 정도라 몰아보기 딱 좋은 분량이랄까.) 뭐 이런 것들 외에도 영화 DVD나 보드게임을 사모으고 IT 기계 덕질(을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시늉만)을 하곤 했던 것 같아. 음악 또한 밴드 음악에서 일렉트로닉을 거쳐 힙합에까지 조금씩 발을 걸치며 흠뻑 빠져 있었지.
아마도 이런 내 덕질 성향은 금사빠인 동시에 금방 질려버리는 내 성격에서 기인한 것 같아. 다양한 영역에서 이렇게나 대단한 작품(or 물건)들이 제 각각 매력을 뽐내고 있으니 당연히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지. 그런데 이러한 잡덕질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무엇 하나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한 가지로 꼽기는 어렵다는 것이야. 어느 분야 하나 내가 진심으로 빠져서 좋아하지 않은 분야는 없지만 전부 적당히 좋아한 느낌이라, 정말로 한 가지 우물만 판 사람 앞에서는 명함을 꺼내기가 부끄럽더라.
하지만 분명히 장점 또한 많아. 우선은 한 가지가 질릴 때쯤이면 어디선가 또 다른 한 가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 있지. 요샌 좀 재미난 만화가 없네 싶을 때, 재밌는 신작 게임이 없나 찾아보고 그것을 즐기며 시간을 지내다 보면 새로운 명작 만화가 나와있곤 하는 경험, 누군가는 공감하지? 그리고 다음은 많은 사람들과 취향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야. 어느 누구를 만나든 좋아하는 것 하나쯤은 겹치기 마련이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감을 형성하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할 수 있거든.
그러니 어쩐지 좀 줏대 없는 사람 같아 보이더라도 꾸준히 잡덕질을 해보려고. 그렇게 멀티-덕력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간 어디쯤에 닿아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