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 두 번째 밤
두 번째 날 밤은 조금 더 설레고 부푼 마음으로, 조금 더 큰 기대를 품고 오로라 빌리지로 향했다. 오로라와 별 사진 등 천체 사진, 야간 촬영에 관련된 지식도 공부했고 레퍼런스도 찾아봤기 때문에 오늘은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도 더 컸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막무가내로 대충 아무렇게나 찍은 어제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들었다.
야무진 꿈을 갖고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하자마자 티피에 간식 더미와 이런저런 짐을 내려놓고 카메라와 삼각대만 들고 바로 호숫가로 향했다. 거침없이 삼각대 발을 내리고 카메라를 세팅했다. 미리 어느 정도 예상해서 세팅값을 생각해왔기 때문에 준비는 일사천리로 순식간에 끝났다. 이제 오로라를 향해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어제는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하자마자부터 하늘에 초록빛이 감돌더니, 오늘은 잠잠했다. 눈부시게 밝은 달만이 고요한 호수 위를 비추고, 밤하늘 가득 수놓은 별들이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또렷하게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어제 처음 오로라 빌리지에 와서 넘치게 가득한 별들을 보며 분명히 어디서 한 번씩은 들어본 적이 있을 수많은 별자리가 북두칠성 외에는 어느 것도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어 아쉬워서 별자리 앱을 준비해왔다.
천체 관측 앱 중에서 앱스토어에서 가장 상위에 랭크되어 있어 다운로드 받은 ‘Night Sky’라는 어플리케이션.
AR(증강현실) 기반으로 GPS로 현재 위치에서 하늘에 떠있는 별자리는 물론 행성과 위성 정보까지 카메라 화면에 수퍼임포지션시켜 보여주는 앱으로, 가령 하늘에 W자를 이루고 있는 별들이 카시오페이아 자리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앱을 실행시켜 그쪽 하늘을 비추면 그 위치에 있는 별자리를 잡아내서 별자리 이름은 물론 각 별들의 정보까지 알려주는 굉장히 직관적이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었다.
앱을 켜서 하늘 이쪽저쪽을 비추어보며 별자리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자리는 물론 백조자리, 사자자리, 오리온자리, 영어라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기타 여러 가지의 별자리들을 구경했다.
카시오페이아 자리가 대형도 특징적이고 사진에도 잘 담길 것 같아서 카메라를 맞춰보고 몇 장의 테스트샷을 찍고 있었는데 배경에 점점 녹색 오로라가 나타나는듯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다 말고
오빠 이리 와 봐, 저기 이제 오로라가 나타날 것 같애
남편을 불러 세우고 가만히 그쪽 하늘을 응시했다.
과연 녹색 빛이 점점 짙어지더니 긴 띠 같은 형상으로 나타났다. 사진으로 담으려고 할 때마다 오로라는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었다. 처음엔 얇고 긴 하얀 띠처럼 보이던 오로라는 리본이 풀어지듯 점점 주변으로 엷고 넓게 펼쳐지더니, 갑자기 바람에 살랑이는 커튼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리듬 체조할 때 리본을 흔드는 것처럼 구불구불 꼬물 거리기도 하고 바람결에 이는 얇은 천처럼 흩날리기도 했다. 파도가 치는 것처럼 몰려들었다가 바람에 흩어지는 연기처럼 쓸려갔다.
그러는 와중에 호수 앞쪽 하늘에서부터 점차 정수리 위로, 이내 머리 뒤쪽 하늘로 자리를 옮겨가기도 했다. 더 이상 머리를 젖히고 보는데도 한계가 있어 몸을 돌려 뒤돌아 오로라를 좇고 있는데, 또 다른 방향에서부터 초록빛 물결이 일렁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늘 이쪽저쪽에서 연두빛 물결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흔들리며 빛을 냈다.
이게 ‘댄싱 오로라’ 구나.
아름다웠다.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면 자꾸 자리를 옮겨가며 모양을 바꾸는 통에 카메라 뷰파인더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남편은 연신 나를 불렀다.
‘그만 찍고 이리 와서 봐, 너무 멋있어.’
사진으로 찍으려 해도 어차피 움직이는 오로라의 한 찰나의 단면만이 담길 뿐이어서 나는 몇 장 찍다가 포기하고 삼각대에서 손을 떼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유려한 오로라의 움직임에 매료되어 뚫어지게 하늘의 공연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몇 분쯤 지났을까, 수평선 너머로 노을이 지듯 서서히 허공을 엷은 초록빛으로 물들이던 오로라는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져 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아쉬움이 덜했다. 오로라가 지나가고 나서도 머릿속과 마음속이 초록빛 안개로 꽉 찬 듯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약간 허공에 뜬 것 같은 상기된 기분으로, 옆에 있는 신랑의 손을 꼭 잡고 우리는 다이닝 홀에 와인을 마시러 갔다.
여행은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 오직 현재, 김영하, ‘여행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