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의 재발견
인천공항에서 출발이 30분 딜레이되어 총 5시간 끝에 도착한 사이판. 새벽 3시라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공항과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도로에서 대략적인 이곳의 느낌은 느낄 수 있었다. (케냐 킬리피 마을과 몸바사 중간 정도의 느낌)
많이 개발되지 않아서 낙후되었다는 평이 지배적인데, 낙후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이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 기준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색채가 짙지 않고 자연이 많이 남아있는 느낌. 개발되지 않았다는건 높은 건물이 없고 도로나 대중교통 같은 도시 인프라도 크게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인데 그렇다고 지저분하거나 엉망인건 전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있는 동남아의 유명 휴양지들에 비해 인프라나 상업시설 등이 턱없이 부족한 편이긴 한데, 오히려 훨씬 깨끗하고 정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길도 깨끗하고 도로도 한산하고 무엇보다 공기가 너무 좋고!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아 하늘은 원래 이렇게 파란색이었지 하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낯설었다.
사실 우기라고 했다. 특히 7,8월은 우기의 한복판이라서 날씨의 노예인 나는 이 사실 때문에 여행을 망설였었다. 여행을 갈 때 그 시기에 우기인 나라는 가급적 피하려고 하는 편이라. 숱한 후기들과 정보들을 찾아봤을때, 사이판은 우기라도 비가 스콜성으로 잠깐 오다 말다 하는 편이라서 내내 비가 오는게 아니라 여행에 큰 지장은 없다고 하길래 일단 가보기로 했다. 예약을 해놓고도 막상 올때까지 큰 기대가 없었다. 워낙 동남아 같은 여행지에 큰 감흥이 없기도 하고 이때까지 사이판은 나에게 듣보잡이었으며 (아이를 데리고 가는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다고 하여 처녀때나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1순위 기피 대상이었다.) 날씨가 너무나 중요한 나에게 우기라니 별로 기대가 안되는 것도 당연했다. 그냥 강원도 갈 돈으로 더 싸게 해외여행 한다는 정도의 소기의 목적만 가지고 떠나왔을 뿐이었다.
운이 좋게도 6일 내내 비를 만난건 세번 정도, 시간으로 따지자면 다 합쳐도 5분이 채 안된다. 구름이 있긴 했지만 회색빛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게 아니라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거라 오히려 예뻤다. 해질녘엔 구름이 짙으면 오히려 노을 빛이 더 아름다웠다.
스콜은 정말 신기했다. 한 번은 다이빙을 나갔다가 포인트로 이동중이던 보트 위에서 해상의 스콜을 볼 수 있었는데, 정말 국지적으로 한 지점에만 반경 수 미터 정도로 작은 회색 구름이 마치 샤워기처럼 비를 퍼붓고 빠르게 이동해 지나갔다.
호텔의 복도가 개방형이었는데 복도의 왼쪽 산쪽으로는 비가 쏟아지는데 오른쪽 바다쪽으로는 해가 쨍쨍하기도 했다. 평균 기온 27도 정도로 덥긴 더웠는데 우리나라보다 덜 더웠다. 적도 근처라 그런지 해가 엄청 뜨거웠고 그늘에 바람이 불면 그래도 좀 시원했다. 다만 내가 묵었던 켄싱턴 사이판에는 수영장이나 해변에 그늘이 거의 없다! 마나가하 섬도 마찬가지. 그래서 해가 가장 뜨거운 한낮에는 어차피 아기 낮잠 시간이기도 해서 방에서 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