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네 다 신천지 아님?

-동아리경연대회를 둘러싼 의혹-

by 홍밍치

나는 동아리 회장으로 2년간 활동했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좋은 경험을 하고 인격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성장은 고통을 수반한다. 예전보다 커진만큼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저 쉬고 싶을 뿐이었다.


2024년 10월의 어느 날, 후임자 선발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인수인계도 준비도 끝났던 터라 평소처럼 휴대전화를 하며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에브리타임에 접속했다. 에브리타임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커뮤니티앱이다. 시간표 기능을 제공하고 대학교 관련 정보가 많이 올라와서 사람들이 즐겨 쓴다.


images?q=tbn:ANd9GcT-BFVyPpOJjlPF0169swNrY8i25NpzgJ4k9g&s 에브라타임 인앱 화면


뭐 재미있는 글이 없나 싶어 게시판을 죽 훑어보는데 이상한 글이 보였다. "얘네 다 신천지 아님?". 이게 무슨 소리지 싶어 클릭해보니 동아리경연대회에 관한 글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교내 동아리들을 대상으로 대회를 연다. 한 해 동안 활동한 결과물을 보고서로 제출하면 그걸 심사하여 점수를 매기고, 고득점 동아리들에겐 상금을 시상한다.


해당 글에서 지적하는 부분은 뭐하는지도 모르는 동아리들이 2년째 상금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나름대로 근거는 있었다. 대부분 동아리들이 에브리타임에 게시하는 신입부원 모집글이 '단 하나도' 없다는 점. 동아리와 접촉할 수 있는 전화번호며 인스타 따위의 연락수단이 전혀 게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 이렇게만 보면 진짜 좀 의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676626981964552.jpg 일반적인 홍보게시글


하지만 나는 전혀 믿지 않았고 외려 질 낮은 여론몰이라며 일축했다. 나도 동아리 운영을 해본 입장에서 해당 글이 들고 온 근거들은 충분히 반박 가능했기 때문이다. 먼저 에브리타임에 글이 하나도 없다는 점. 보통 신입부원 모집은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과 8월에 가장 활발하다. 홍보글은 그때 몰아서 올리는 편이다. 모집기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쓴 게시글 목록에는 온통 홍보글로만 가득 차기 떄문에 썩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많은 회장들이 모집기간이 지나면 써둔 게시글을 지우곤 한다.


연락처도 마찬가지다. 동아리 회장이라고 해봤자 임기는 한 학기, 길어야 1년 정도다. 전화번호나 카카오톡 아이디를 게시해두면 임기가 끝난 뒤에도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어서 귀찮은 걸 싫어하는 회장들이나 개인정보 공개에 민감한 회장들의 경우 한시적으로 공개했다가 내려버리는 경우도 많다. 신입부원 모집글이 없는 것도, 연락처가 없는 것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들 외에도 내가 저 게시글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던 이유는 결론이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미심쩍은 동아리들이 상금을 받은 걸 보면 저 동아리들과 심사를 맡았던 학생자치기구 관계자들이 싹 다 신천지 아니냐?"라고 했다. 물론 의심되는 지점은 있었지만 결과가 자기 맘에 안든다고 해서 애먼 사람들을 사이비 집단으로 몰아가다니...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다운로드.jpeg 여론몰이의 사전적 정의


근데 이게 의외로 파급력이 있었다. 관심 못 받고 묻힐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추천하기 시작하며 인기게시글이 되더니 나중에는 학생자치기구를 대상으로 해명을 요구하기 이르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학생자치기구(편의상 '기구'라고 하겠다.)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보상도 못 받으면서 남들 하기 싫어하는 일 하는데 억울하게 마녀사냥까지 당하다니! 뭔가 방법이 있다면 내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며칠 후 기구 명의의 해명문이 올라왔다. 이제 입장정리 됐을 테니까 사건도 일단락되지 않을까 싶어 찬찬히 읽어보는데 좀 묘했다. 논란의 핵심은 '의심되는 동아리들이 어떻게 상금을 받을 수 있었는가'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채점결과나 순위표 같은 정량지표는 하나도 없고 그냥 '미안하다', '앞으로 문제 없이 운영하겠다'와 같은 피상적인 미사여구들로만 가득 채운 입장문이 게시되었다.


나는 원래 도와주고 싶은 입장이었지만 내가 봐도 이건 적절한 해명이 아니다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반박을 하거나 타박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너무 지쳐있기도 했고 굳이 따지자면 기구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엔 질타하는 취지로 입장문을 쓰게 되었지만 말이다. 당시 나는 영어동아리에서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회장하고 친한 사이였다. 사석에서는 형동생하는 사이였기에 신천지사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눌 수 있었는데 이 친구는 나와는 정반대 입장이었다.


다운로드 (1).jpeg 글로는 별 일 아닌 듯 썼지만 굉장히 화가 많이 났었다....


평소 기구의 일처리 방식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도 생각했던 와중, 해명문까지 엉성하게 올라오니 화를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더군다나 학교 예산 나눠주는 행사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믿을 수 없다며 하소연을 했다. 맘같아서는 본인이 나서고 싶지만 총대를 맨다는 게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내용을 글로 엮어 쓰기가 영 난감해서 나보고 대신 목소리를 내주면 안되겠냐고 거듭 부탁을 했다.


처음엔 무시할까도 싶었지만 듣다보니 설득되었다. 특히 예산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그랬다. 한두푼이면 모르겠지만 한 해 집행하는 시상금만 몇백 단위였으니까. 그뒤로는 뻔했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 기구가 취해야하는 태도, 입장문에 포함되었어야 하는 내용 등을 담백하게 써내려갔다.


내가 예상한 흐름대로라면 사람들은 내 말에 크게 관심가지지 않고, 기구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뒤 자료를 공개하며, 사건은 마무리되었어야 했다. 근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동아리 회장들이 모여있는 단체방에 올린 입장문은 몇십개가 넘는 공감을 받았고 내가 한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기구 쪽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다.



다운로드 (2).jpeg 이게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었나



입장문을 올린지 며칠이 지나 동아리방에 모여 친한 후배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라 왠지 모르게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나: 여보세요?

???: 네, 00동아리 회장 00학과 000님 되시죠?

나: 네 그런데 어떻게 아셨죠?

???: 카톡방에 올리신 입장문 봤습니다.

나: 아 넵, 전화주신 이유는 혹시...?

???: 조용한 곳에서 저랑 이야기 좀 하실까요?


상황이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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