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과 강된장

반가운 음식들

퇴근 후 집에 왔는데 식탁에 찐 호박잎이 있었다.

어머님께서 호박잎을 좋아하는 며느리를 생각해 마트에서 호박잎을 보고 손수 손질하셔서 내놓으신 것이다.

쌉싸름하고 부드러운 호박잎에 짠 강된장을 한 숟갈 넣어 밥에 싸 먹으면 그야말로 일품이다. 여름밥도둑이 따로 없다.


경기도 안성이 고향인 어머님은 전라도 장흥이 고향인 남자와 만나, 전라도 음식을 배워갔다.

젓갈이 많이 들어간 시원한 배추김치, 게장, 새우젓무침, 갈치속젓, 창난젓, 고구마순김치…….

어머님 말에 따르면 전라도는 별 걸 다 먹는 동네였다. 그중 하나가 호박잎이었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 집에 갔다 오면 아빠차는 늘 흙투성이가 됐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기 30분 전 칼과 검은 비닐봉지 하나 들고 외할머니와 함께 밭에 갔다. 엄마 양손에는 비닐봉지 한가득 가지, 고구마순, 대파……. 할 것 없이 채소들이 담겨있었다. 다듬지 않은 날것채로 가져온 이것들은 고스란히 엄마의 일이 되었다. 다음날부터 엄마는 신문지를 펴놓고 다듬기를 시작했다. 부추 다듬기, 고구마순 껍질 까기, 마늘 까기 등

외갓집에서 돌아온 다음날에는 밥상머리 가득 시골반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건 방금 찐 따뜻한 가지를 찢어 간장으로 무친 가지무침.

저녁에는 어김없니 엄마가 멸치 한 줌, 다시마를 크게 넣은 진한 육수에 된장을 농도 짙게 풀어놓은 강된장에 호박잎을 내놓았다. 그것만으로 우리 가족은 한상 푸짐히 잘 먹었다. 아직도 그 짙파란 호박잎과 진한 황갈색의 강된장, 그 색과 맛과 냄새를 잊을 수 없다.


서울에서 홍보일을 하며 기자미팅을 강남, 여의도, 광화문 할 것 없이 모든 맛집을 섭렵한 내가.

그 음식을 그리워한다는 건 어느 날 여름 엄마집에 방문하고 나서부터였다. 엄마 냉장고에는 외할머니 댁에 다녀온 비닐봉지 그대로 야채가 보관돼 있었다.

어렸을 때야 줄줄이 새끼이니 새모이 먹이듯 얘네들 밥먹이려면 부지런히 다듬고 찌고 볶고 했겠지만, 지금은 엄마, 아빠 둘이 계신 집에 그렇게 부지런히 살림할 이유가 없다. 비닐봉지에서 수줍게 호박잎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본 반가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야채? 음식? 추억?)

“엄마 이 호박잎 뭐야? 엄마 먹을 거야?”

“아니 먹을 사람도 없고…”

“엄마 나 줘”

“그래라 냉장고에 네가 좋아하는 고구마순 김치 담가놨다”


그 길로 나는 시어머님께 고구마순김치와 호박잎 한가득 안겨드렸다. 어머님은 ‘경기도는 이런 거 안 먹는데……’ 하며 당황하셨지만, 다음날 식탁에는 껍질까지 고이 벗겨 차곡차곡 쌓인 찐 호박잎과 강된장, 고구마순김치가 차려져 있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은 나의 입이 잊지 못하는 저녁이 됐다.


요즘처럼 효율을 강조하는 시대,

음식도 정성이 아니라 시간대비 얼마나 맛있게 빠르게 요리하는 게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

이런 사회에서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맛도 호불호가 있는 음식이 살아남긴 어렵다.

그래서 두 음식을 먹을 기회가 적어져 아쉽기만 하다.


만약 나도 어렸을 적에 이 두 음식을 먹지 않았다면

지금 내 신랑처럼 손도 안 댔겠지.



가끔씩 나의 미각과 후각이 네 뿌리는 시골이야 를 말해주는 때가 있어 반갑다. 이런 걸 소울 푸드라고 하나? (우리 신랑의 소울푸드는 LA갈비이다)


우리 아들도 나처럼 그리워하는 음식이 이렇게 향토적인 음식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고구마순 하나하나 껍질을 벗겨 소금에 절이고,

호박잎 대봉을 꺾어 거친 털을 벗겨내고

어미의 거친 손맛이 있는 그런 음식.

그럼 한 번쯤은 어미와 그 어미의 사랑으로 마음이 풍성해지지 않을까. 지금 나처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참기름 참,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