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찾아온 기적

매일 장미꽃 백송이 꽃다발을 받는 이 기분,

오늘은 임테기 두줄,

10년전 너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날이다.

결혼전 오빠와 나는 강이 보이는 집에서 애 셋 낳아 오손도손 살자고 같이 소박한 꿈을 나눴었다.

신기하게 첫 아이 태몽도 실한 복숭아 세개,

토실토실 알밤 3개 였다.

태몽을 꾼 뒤 우리가족의 셋 중 하나가 태어나는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순탄하게 첫 아가가 태어났고,

첫째 이후 나의 육아휴직으로 생활비 통장에 -500만원이 찍힌걸 보고, 울며겨자먹기로 나는 직장에 복직했다. 복직후 치열한 직장생활이 이어졌고(에휴…….)

두번의 이직을 하고, 어느정도 안정이 되자 아이 생각이 또 났다.


그때는 이미 나이도 있고, 자궁상태도 좋지 않아 바로 인공수정과 시험관을 시도했는데, 4년여의 걸친 시간동안 성공하지 못했다. 한번 착상까지 했으나 유전자 이상으로 유산.


첫째 아이는 부모가 해준것도 없는데 토실토실 사랑스럽게 잘 자랐다. 첫째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러울수록, 저 아이 닮은 둘째, 셋째가 간절했다. 아이가 커 갈수록 하루가 다르게 아기 테를 벗는것도 아쉬웠다. 직장을 다니며 시험관을 하는건 결코 쉽지 않다. 시험관은 정해진 날짜에 병원에 방문해야하기 때문에, 그게 일이었다. 내 맘과달리 애는 안 들어섰다. “아니 신이시여! 이 저출산 시국에 애를 낳겠다는 가족이 있는데, 쌍둥이를 주셔도 모자를 판국에 애를 안 주시다니요“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외쳤다.


그 사이 내 자궁과 난소는 급속노화를 겪고, 원래도 만성생리통으로 고생하던 나는 더이상은 월경을 지속할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내 병은 신기하게 월경을 할수록 안좋아지는 자궁내막증, 이 병도 조물주의 창조 원리와 너무 반하는 병이라 신에게 따졌었다. ‘아니 어쩜 매달 당신의 창조원리에 반하는 행위가 제 몸에서 일어나는 건가요??’ 점점 생리통이 심해지고 출혈도 심해져 빈혈까지 겪게 됐다.


애를 가지려면 자궁과 난소 치료를 못하는 상황, 결국 애는 포기하고 첫 아이이자 마지막 아이에 만족하기로 했다.


어느 날 설교를 듣는데 목사님께서 장미와 가시 예를 들으셨다.

장미가 조물주에게 “하나님 저에게 왜 가시를 주었어요?” 라고 묻자 조물주는 “너는 원래 가시나무였는데 내가 장미릉 준거야”라고 대답하셨단다.

이 비유를 듣고 눈물이 났다. 나의 생리통은 중학교때부터 구토를 하고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심했다. 하지만 매달 어김없이 찾아왔고, 솔직히 나는 너무 힘들었다.


결혼 직후 산부인과에 갔을때 의사쌤이 빨리 애를 가지라고했다. 나 같은 케이스는 나중에 난임이니, 빨리 가지라고…… 맞는 말이었다. 첫째애 출산하고 병원에 가니 자궁이 콘크리트벽 같다고 했다. 푹신하고 촉촉한 흙들이 있는, 씨가 심기기 좋은 자궁이 아닌,



그런상황에서 자연임신으로 내게 찾아온

우리 아들은 기적과 같은 존재이다.

눈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말을 매일 아들을 보며 체감한다.


어제는 아들이

“엄마 진짜 갖고 싶은게 뭐에요?” 라고 묻는다

“엄마는, 우리 아들 닮은 동생을 갖고 싶어“

“아니 우리집에 있는 핸드폰 중에 뭘 가지고 싶어요?”

- 대화 핀트다 안맞았다. 늘 이런식이긴 하다. F인 엄마와 T인 아들의 대화

“우리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아들 닮은 동생. 딸도 좋고 아들도 좋고“

“내 동생이면 이름이 기철이, 기영이? 하면 되겠네”


내게 기적같은 장미꽃

늘 감사하고 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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