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노란집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여기, 지금

박완서 작가님의 <노란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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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작가님이 작고하시기 전 약 10여 년 넘는 시간을 사셨던 <노란집>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치울 마을 이란 곳,

서울과 가까우면서 시골 자연풍경을 가진 마을,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곳,


왠지 그곳에 가면 나도 작가님처럼 작은 들꽃이 내는 소리를, 하늘과 달과 새와......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 영장들과 나도 조화가 돼, 작가님처럼 순수한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을 졸라 지난 주말 아치울 마을에 두 번이나 갔다 왔다.

나는 아치울마을 골목을 구석구석 돌며 작가님의 노란 집을 찾기 위해 애썼다.

마치 고등학교 때 사모하는 은사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 은사님이 수업시간에 말한 책 저는 읽었어요.

하는 마음으로,

작가님의 노란집을 읽고 이렇게 작가님을 조금이라도 담아내고 싶어 아치울 마을까지 왔답니다. 하고 말이다.



글이란 거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좋은 글은 좋은 마음에서만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있는 물욕, 인간관계에 질린 마음들,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 상태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그러기에 박완서 작가님의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힌 게 아닐까.


또한 가지, 작가님의 경험이 탐이 났다.

그때는 우리 남한 땅이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는 개성이란 곳에서 보낸 유년시절

일제시대 - 해방 - 한국전쟁을 모두 겪은 모진 삶,

그리고 현대화까지...... 작가님의 인생에는 우리네 근현대사가 모두 적혀 있었다.

그것만큼 좋은 소재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인생의 굴곡이 많은 만큼 그것이 좋은 양분이 되어 글이란 꽃을 피워낼 수 있지 않았는가.


작가님의 수필집을 읽고 나서 외할머니와 이런저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할머니는 1933년 생으로 역시, 작가님과 같이 모진 시기를 견뎌낸 우리네 한국 여성이었다.

"할머니, 할머니도 어렸을 때 일본 이름 있었어? 왜 그 창씨개명이란 거 있었잖아"

"있었지, 사토리이었어. 그때는 학교에서도 한국말을 못 썼어"

"할아버지는?"

"뭐여? 나는 야마모토"

그 날 나는 할머니께 일제시대, 해방 날, 한국 전쟁 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떻게 지내셨는지? 피난을 가셨는지? 정말 그렇게 살기 힘들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소설 속에서 밥 대신 먹었다던 콩깻묵은 뭔지도 물어봤다. 일제 시대 이야기를 할 때 정말 무서운 사람 이야기하듯 이야기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때 그렇게 어떻게 사셨냐고 물어봤을 때 그때는 다 그랬다는 듯 진저리를 치시는 두 분,

소설 속 현대사가 생각보다 나에게 가까운 뿌리였음이, 허구가 아닌 삶이었음이 다시 한번 느껴져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좋은 양분을 가진 많은 작가들이 (어쩔 수 없이, 나이 들었기 때문에) 한국 문단에서 한 분 씩 고인이 되시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동시에 생각하는 건, 비록 나의 인생은 이 분들처럼 역사적인 사건도 적고,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시간들일지라도...... 나도 내 주위에 일어나는 일, 내 삶을 온전히 느껴야지! 그리고 글을 써야지. 나도 작가로 살아가야지 다짐하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마상에서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나를 애지중지하셨을까. 그 생각만 하면 자신이 소중해진다. 그분이 사랑한 나의 좋은 점이 내 안에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그건 삶이 비루해지려는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아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꾸자꾸 사진을 찍어대듯이 사람이 한 세상 살고 나서 남길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면 자꾸자꾸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손자가 고삐를 잡은 마상에 앉아서 이 힘든 여행이 훗날 손자에게 무엇이 되어 남을까 상상해보며 부디 사랑받은 기억이 되기를 빌었다. "


세기말이 있긴 있나

지금 창밖의 겨울나무들은 앙상하지만 의연하다. 나무들의 마지막 허영인 단풍의 시간은 꽃의 영광만큼 짧았다. 모든 영광고 허식을 벗어던진 나무의 아름다움, 겨울 숲의 적요가 마음에 스미는 물빛 새벽에 한 잔의 커피는 나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낙이다. 커피 취미는 점점 까다롭고 복잡해져 이제는 인스턴트보다는 원두커피가 입에 맞고, 원두를 갈 때의 소리와 냄새까지도 좋고, 뽑아낼 때의 향기로 헤이즐넛인지 블루마운틴인지 아이리쉬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코가 나를 으쓱하게도 한다. 무엇보다도 한 잔의 커피가 주는, 머리가 쨍하니 투명해지는 듯한 각성의 시간과 은은한 평화를 좋아하고 행복이 별건가 바로 이게 행복이지 싶은 충족감을 좋아한다....... 커피와 우거지를 동시에 신봉하는 내 몸의 이중성이 가소롭기도 하지만 대견하기로 하다.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쓴다.

...... 나는 감각이 굳어지거나 감수성이 진부해지지 않으려고 그러니까 노화하지 않으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라고 감히 자부한다. 앞으로 노인들 얘기를 더 많이 쓰게 될지 아닐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내가 겪고 깊이 느낀 것 밖에는 잘 쓰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히 늙은이들 얘기도 쓰게 될 것이지 늙은이들 얘기만 쓰기로 작정한 건 아니다. 노년이란 소년과 청년과 중년을 겪은 후에 오는 것이니까 비로소 노인 문학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 노인 문학만 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죽도록 현역작가이고 싶은 것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노년기 또한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삶의 가장 긴 동안일 수도 있는 노년기, 다만 늙었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여긴다면 그건 삶에 대한 모독이다.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삶에서 소설이 나올 수는 없다.


겨울 정경

...... 겨울 저녁 종일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온 아이들의 붉은 볼처럼 예쁜 게 이 세상에 있을까. 홍옥 사과처럼 붉지만 차가운 얼굴의 싱싱함을 어디에 비할까. 따뜻한 아랫목과 김 나는 저녁 밥상 앞에서 더럽혀지고 젖은 바지를 벗겨주며 꾸중 아닌 꾸중을 하는 할머니의 손길을 그리워할 수밖에.


황홀한 만남

며칠 전 시내에 나갔다가 늦게 들어간 날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곧장 상사초한테로 이끌렸다. 저만치서 보기에, 산에서 기묘한 새가 한쌍 날아와 내 집 마당에서 잠시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조심조심 다가가니 상사초였다. 마침 온종일 나리던 비가 개고 중천에 상현달에 걸려 있었다. 그 청순하고도 요염한 달빛은 저절로 달의 절절은 만원이 아니라 상현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분홍도 아닌, 보라도 아닌 상사초 꽃이 , 얼굴 씻고 나온 반달 빛을 만나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요요하게 빛났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상사초의 꽤 진한 그러나 야하지 않은 향기까지 맡을 수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상사초가 피어난 건 저 달빛을 만나고자 함이었구나, 떨리는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달과 꽃이 각각 자신의 최고의 순간을 던져 저리도 황홀하게 교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 또한 그것들의 그런 순간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까짓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싶게 삶이 비루하고 속악하고 치사하게 느껴질 때가 부지기수로 많다. 이 나이까지 견디어온 그런 고비고비를 생각하면 먹은 나이가 한없이 누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삶은 누추하기도 하지만 오묘한 것이기도 하여,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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