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에서 여자,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소설을 읽으며 나는 어느새 주인공 혜완이 돼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런 그녀를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우나 경혜가 돼 있었다.

소설에는 2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나온다.

혜완이 아이는 어떻게 죽게 됐으며, 영선은 왜 자살을 기도했는지이다.

그런 궁금증을 안고 책을 읽었고 혜완과 영선이 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그 시간을 통해 의문점은 풀린다.

그리고 그녀들의 진솔한 대화 속에서 우리는 맞닥뜨리기 싫은, 우리 사회가 혜완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마주하게 된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혜완이 왜 이렇게 자신에 대해 냉소적인지.

자신감이 없는지. 하지만 그런 그녀를 만든 것은 어떻게 보면 반대편에 서 있는 '남자'들이 아니라,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터뜨리지 않고 안고 사는 영선과

돈에 쫓기는 구질구질한 삶이 아니라 굴욕적이지만 부를 택한 경혜 같은

같은 여자들이 아니었을까.

영선의 말을 통해 우리가 이혼녀들을 바라볼 때 얼마나 오만한 시선에서 바라보게 됐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 1990년대에는 여자가 집에 있지 않고 직장을 가지고 밖에서 돈을 번다는 것이 생소한 사회였다면,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일을 해서 끝까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길 강요하는 사회가 됐다.

결혼한 여자들은 애를 낳고, 직장에도 복직하고 그렇게 슈퍼우먼처럼

회사 - 집을 오가며 거기에다가 집안일의 짐도 이고 살게 된다.

이전에 비해 가사노동 분담이 잘 돼 있다고 하지만

어질러진 집, 개지 않은 빨래, 가족들의 배고픔의 책임은 오롯이 '여자'에게만 가 있는 게 현실이다.

SNS나 TV에 나오는 애 낳고도 45kg 유지하는 법. 은 또 어떤가.

엄마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결혼하고 애 낳고 회사 다니고 집안일하는 것도 모자라 처녀처럼 예쁠 것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이전에 비하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엄마로서, 여자로서 뭔가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 아들도 끈끈한 모성애로 사랑한다.

그들을 사랑하기에 자발적으로 그들에게 가사 서비스를 할 수 있지만, 그걸 강요하고 책임지라고 말하는 세상에는 반기를 들고 싶다.

나는 내 일도 좋아하고 재미있다. 나이 들어서도 내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사회나, 가정, 그 누군가가 내게 가계의 금전적인 책임을 씌우는 건 거부할 것이다.

결코 영선처럼 포기하며 살지 않을 것이고, 혜완이처럼 세상이 여자, 엄마라는 이름에 부여한 기대들을 모두 충족시키며 살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내 삶을 살 것이다.




소설 속 문장


P 11,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사실뿐이다

전화벨은 어둠 속에서 혼자 울리고 있었다....... 잠시 후, 혜완이 가방을 팽개치며 수화기를 들었을 때 전화는 끊겨 있었다. 혜완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기 옆에 있는 스탠드를 켰다. 평소 그녀를 위안해주던 노랗고 따듯한 빛이 전화기와 작업 책상을 비추어주고 있었다. 그녀는 현관으로 가서 가방과 식빵 봉지를 집어 들었다. 그때 다시 벨이 울렸다.


P 266, 아내, 정부, 그리고 친구

겨울이 와도 생활은 남는다. 원고료를 세고 판매 부스를 걱정하고...... 낡은 바바리를 입은 채 진열장에 걸린 새로운 유행의 바바리코트를 바라보고, 그런 생활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P 365, 노을을 다시 살다

(본인에 대해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고, 떳떳하지 못하냐고 몰아세우는 선우에게)

"그렇게 몰아세우지 말아...... 이유를 말해줄까, 그건 내가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야. 내가 세상이기 때문이고 세상이 이미 내게 와 있기 때문이야, 영선이를 보면서 그 애가 얼마나 힘들어하는 줄 보고 있으면서 이혼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싶은 게 나야. 혼자서 싸운다는 것은 너무 피곤하니까. 너무 피곤했고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었어."



P 383, 누추한 선택

(영선과의 대화 중)

- 어느 날 네가 이혼을 하겠다고 내게 말했지. 니 일을 하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게. 그땐 질투가 났었어. 네가 밉기도 했지. 참고 살지. 다들 참고 사는데 서혜완 너 혼자 잘난 척하는 거 아니니. 하지만 또 이렇게 말하고도 싶었어. 나도 하고 싶어 혜완아. 하지만 네 모습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어. 가만히만 있었으면 너는 안정된 교수의 부인이 되어 있었을 텐데. 지금도 생각나. 방을 얻으려고 네가 내게 돈을 빌리러 왔을 때 모습, 비가 왔었는데 유행 지난 레인코트를 입은 네 모습...... 살이 부러진 낡은 우산을 쓰고...... 미안해. 너는 초라해 보였어. 힘들어 보였고. 세상을 다 산 것처럼 누추해 보였어. 네가 돌아가고 났는데 왜 갑자기 우리 집이 그렇게 환하게 보였을까. 따뜻해 보이고. 우리의 아이들이 소중하게 느껴졌어.


P 408,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남들이 다 하는 남편 뒷바라지를 그냥 잘하려면 제 자신의 재능에 대한 욕심 같은 건 일찌감치 버려야 했었다. 그래서 미꾸라지처럼 진창에서 몸부림치지 말아야 했다. 적어도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그래야 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다면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재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면 그것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모욕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 그녀 자신의 말대로 누구도 자신을 발 닦개처럼 밟고 가도록 만들지 말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