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을 지금 다시 읽는 이유는

저 먼길을 다 건너야 비로소 삶의 자리에 닿게 된다

<남한산성>이 초판 인쇄되던 2007년 당시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면서 지하철을 타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손에는 <남한산성>이 들려 있었다. 무슨 소설일까.

사실 <남한산성>은 한자어도 많고, 옛글도 많아 쉽게 읽힌 소설은 아니다.

책을 처음 집어 들고 50페이지 남짓 읽고 다른 책을 읽었다.

그러고 일이 년쯤 지났을까 이미 어린이 도서관에 있는 어른 소설들은 모두 섭렵 해갈 무렵,

<남한산성>을 다시 꺼내 들었다.


남한산성.jpg


상당히 남성적인 문체. 작품 전반에 깔린 무거운 분위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 가운데 답답함.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에서 시간을 보내며, 돌담, 들풀, 우물 그 안에 서린 이야기를 상상하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임금(인조)을 두고 척화파(김상헌을 중심으로 청과 싸우자고 주장하는 자들)와 주화파(최명길을 중심으로 청과 협상을 하자고 주장하는 자들)가 주고받는 말에는 나도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과연 이 남한산성을 언제 벗어날 수 있는가? 나갈 수는 있는 것인가? 그 답답함이 계속해서 나를 압박해 오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어찌 보면 조정보다, 임금보다도 훨씬 믿음직스러운 나루와 서날쇠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답답하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때는 청과 명이 있었다면 지금은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서 여전히 우리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좁디좁은 국토라는 것도 반동강이 나서 서로 적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강대국의 눈치에 마음껏 기를 펴지 못하는 약소국이 되는 것은 짊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다만, 그 안에 있는 민중들은 그렇지 않다. 서날쇠처럼 야무지고 빠르고 단단한 이들이 있다. 사실 이들이 있어서 누구든 먹고자 하면 먹을 수 있는 이 조그마한 나라가 오천 년의 역사를 영위해 온 것이다.


자존과 치욕의 날카로운 대립 역시 읽을만했다. 김상헌과 최명길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그 부분에서는,

그 어떤 타협과 조정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둘 다 너무나도 바른 소리를 해서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도 없었을 것 같다. 무엇이 자존이고, 무엇이 치욕인가? 그리고 같은 상황에서 나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민주주의 영웅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글을 읽고, "나는 스스로 최명길을 긍정했다"라고 한다. 이 대목도 상당히 의외의 포인트였다. 그럼 김훈은?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그저 작가로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말'을 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말 4p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하였다.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살 모가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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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


눈보라 9p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이 치욕을 감당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들이 살아남아서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문장으로 발신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에 쌓인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 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말들의 산맥 너머는 겨울이었는데, 임금의 시야는 그 겨울 들판에 닿을 수가 없었다.


말 먼지 197p

... 전하, 지금 성 안에는 말[言] 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 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적에게 닿는 저 하얀 들길이 비록 가까우나 한없이 멀고, 성 밖에 오직 죽음이 있다 해도 삶의 길은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뻗어 있고 그 반대는 아닐 것이며, 삶은 돌이킬 수 없고 죽음 또한 돌이킬 수 없을 진대 저 먼길을 다 건너가야 비로소 삶의 자리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 길을 다 건너갈 때까지 전하, 옥체를 보존하시어 재세(在世) 하시옵소서. 세상에 머물러주시옵소서......


영화 <남한산성> 명장면

- (예술이다) 연기도, 대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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