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비합리적 집단주의에 반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자의 일상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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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끌렸던 이유는 '개인주의자'라는 제목 이었다.

개인주의자보다 집단주의가 훨씬 더 잘 맞다고 살아온 30년,

아이를 낳고, 회사생활을 해보고, 사회에서 만년 을의 생활을 하다보니

비이성적, 비합리적 집단주의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특히 직장에서 그런 모습이 정말 많~이 눈에 띠었는데,

예컨대, (누가봐도) 회사에서 일도 안하고, 그나마 얼마 안하는 일도 못하는 저 인간이 왜 먼저 승진을 해야되는거며

누구도 책임을 떠맡기 싫은 일은 결국엔 내가 하고 있는 모습,

말하기 싫어 말하지 않는 건데, 쟤는 재미없는 애들이니까로 낙인을 찍는거며,


등 등,


이런 한국사회의 비 이성적인 부분이 싫고, 사람들을 만나 또 다른 누군가가 돼 내 에너지를 빼앗기는 게 싫어 이 책을 집어들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전 '개인주의자'는 그저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더라, 물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일부 포함이지만,

그리고 우리사회에 왜 이런 근대적인 개인주의자들이 필요한지를 일깨워줬다.

성숙한 사회는 어떤 모습을 지녀야하는지, 어떤 걸 추구해야 되는지도 알려주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사회문제로 연결시키는 그 세련됨이란,

그리고 사회를 향해 던지는 따뜻한 지적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만 했다.



이 책의 묘미는 시작은 고립된 개인주의자였으나, 책을 읽고나면 따뜻한 개인주의자가 된다는 것에 있다.

이런 저런 사건들을 통해 비춰지는 인간의 한계와 그럼에도 이런 사회를 따뜻하고 밝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어 우리 모두의 삶이 빛나는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을 읽은 후 저자의 행보가 궁금해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저자는 몇년 전 경검 수사권 조정에 반대해 판사직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살겠노라고 밝혔다. 진정한 개인주의자 선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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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직하고 싶은 문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가끔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마음속 구석에 쌓인 외침을 토해내고 싶을때가 있다. 이놈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견뎌야 하는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싫다고 말이다.


사회에 나와 지금까지 겪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은 안고 살고 있더라는 거다. ... 어떤 때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고통만큼은 평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자도 권력자도 스타도 화려한 겉껍질 속에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가득했다. 건강 때문에 가족때문에 자식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남모를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돈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 한하디흔해 보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이를 갖고 키우며 사는 일들이 실은 얼마나 전쟁같이 힘든 일인지...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를 이루어 살 수 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 진화론, 뇌과학, 심리학이 밝혀낸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며, 그런 비합리성까지 고려해 인간과 사회를 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합리적태도'는 오히려 더욱더 필요하다. 현대의 합리적 개인은 자신의 비합리성까지도 자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새삼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다양한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이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로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의견을 교화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집착하는 문화, 집단 내에서의 평가에 개인의 자존감이 좌우되는 문화 아래서 성형 중독, 사교육 중독, 학력 위조, 분수에 안 맞는 호화 결혼식 등의 강박적 인정투쟁이 벌어진다. 사실 이건 모두 같은 현상이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행복의 메커니즘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세상이 다 속독법학원 같을 때가 있다.


조정 달인의 비결

당사자를 'OOO'님' 이라고 부른다. 판사가 이렇게 부르면 곧 서로 그렇게 부르게 된다

재판 시작때 첫인사를 이렇게 한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원고가 얼마나 화가 났을지, 피고가 얼마나 좌절했을지 충분히 이해함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한다.

당사자의 고통을 경청한다. "어느 부분이 제일 억울하세요?"

긍정적 분위기를 만든다 "잘 해결될 겁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믿음을 준다 "저는 원고도 모르고 피고도 모릅니다. 사건을 상세히 말씀해 주시면 제가 올바르게 판단하겠습니다"

당사자는 이성적이기 힘들다. 분쟁에서 감정을 분리하고 얽매여 있는 명분을 내려놓도록 설득한다.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 그러나 로 답하기 보다 그리고로 답한다.

판결문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사건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메모한다. 참고할 판례를 찾으면 당사자들에게 나눠주고 투명하게 설명한다

조정 전날 밤에는 꼭 기도한다'고통받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

팔짱 낀 채 '한계' '본질' '구조적인 문제' 운운 거창한 얘기만 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어떤 통속적인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아래 대사를 듣고 그 통찰력의 깊이에 놀란 일이 있다.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Dare to be an optimist

우리 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영미식의 실용주의 가치관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전제 아래 해야 할 의무를 다 이행했다면 과감하게 면책한다. 결과가 제 아무리 중대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게 하는 사회의 비결인지도 모른다.


미국환경청은 화학물질로 인한 위험 정도에 관하여 지역 주민과 대화할 때, 대중을 정당한 파트너로 받아들일 것, 대중의 관심사에 귀기울일 것, 정직하고 솔직하게 정보를 공개할 것 등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7가지 원칙을 제시한바 있다.


첫째, ‘청중을커뮤니케이션의파트너로서인정하라’

둘째, ‘청중의의견에귀를기울여라’

셋째, ‘정직하고열린마음으로청중을대하라‘

넷째, ‘다른신뢰할만한그룹과함께일하라’

다섯째, ‘미디어의요구에맞추어라’

여섯째, ‘명료하게전달하며열정을가지고임해라’

일곱째, ‘계획을주의깊게세우고 결과를평가해라


더 읽어야 할 책

서은국 교수 <행복의 기원>

오찬호 선생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스위치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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