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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출근길 성장 에세이 Aug 12. 2021

세 식구가 10평 남짓한 집에 산다는 것

좁아… 좁은만큼 마음의 거리는 더 멀어져

상견례. 우리 엄마가 끝에 한 말은

“그래, 그래서 애들 집은 어떻게 하실거에요?”

라는 말이었다.


엄마답지 않은 말에 놀랐고

옆에서 내가 팔을 몰래 쳤다.

(엄마 여기서 이런말을 하면 어떻게…… 평생 남에게 미안한 말 한마디 못한 엄마가)


당시 남편는 대학원생이었고

일찍 남편을 보내신 어머님이 집을 얻을만한

목돈을 가지고 있을리 만무했다.


당시 어머님은 여기저기서 긁어모아

1억이란 돈으로 집을 알아보셨는데,

집 보증금 시세에 깜짝놀라셨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어머님 건물 4층에 세입자를 내보내고

그 곳에 들어갔다.


15평 남짓되는 쓰리룸,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오래했기에,

온전한 나의 주방이 생기는 것에 기뻤다.

여기서 그동안 파워블로거들이 올린 요리 레시피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하리라 다짐했다.


방 한개는 서재, 하나는 옷방, 하나는 안방으로 썼다. 1년뒤 J가 태어났고, 서재 방은 어머님방으로 내려야했다. J의 짐은 얼마나 많던지 3층에 어머님집에도 떡하니 본인의 장난감 방을 만들고,

4층 우리집에도 본인의 침대를 들여놓으며 그렇게 양쪽에 방 2개를 차지했다.


나의 아파트 타령이 시작된건

J를 낳고 나서부터다.

산후조리원 동기들과 친해져서 언니들, 동갑내기 친구집에 방문했는데 두 명만 빼고 모두 아파트였다.

1명은 나, 1명은 3년뒤 신축아파트 입주를 앞둔 언니였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공동육아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한데, 우리는 늘 래** 아파트에 사는 언니 집에 모여 공동육아를 했다. 언니가 깔끔해서였을까. 신축 아파트여서 그랬을까. 언니집은 항상 깨끗하고 널찍했다. 자연스레 돌아가며 초대를 했는데,

아뿔싸 내차례가 돌아왔다.



성격상 얻어만 먹고는 못이기는지라

어찌어찌 우리집에 초대한다고 날을 잡았는데

일주일 전부터 걱정이 됐다.



물론 우리집 좁은건 언니들한테 익히 말해서 알고 있는 터였지만, 우리집에는 아이들 장난감도, 언니들이 편히 앉아서 수다를 떨 소파도… 다 없었으니, 이를 어쩌나. 안되겠다. 집이야 어쩔수 없고 진짜 맛있는 요리라도 대접하자! 해서 그 당시 겨울에 값비쌌던 딸기를 3팩사서 딸기리코타치즈 샐러드를 했다. 그날밤 나는 너무 긴장해서였을까, 나는 배탈이났다.



당시 대학원생 이었던 오빠의 처지 앞에,

그리고 애기때문에 직장을 쉬고 있었던 내 처지에

아파트는 감히… 로또가 되지 않고서는 꿈꿀수 없는 곳이었다. 그때부터 내 아파트타령이 시작됐나보다. 그 해, 우리가족은  순수하게 생활비 만으로 -500만원을 찍었다.

돈 때문에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내 직장도 월급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이 직장월급을 못받으면 우리집 가계부는 마이너스구나! 돈이 없으면 나도 제정신이 아니고 싸우는구나! 를 절실히 느끼며, 그 이듬해 3월 육아휴직 11개월만에 서둘러 회사에 복귀했다.



워킹맘으로 치열하게 살고 또 두번의 이직끝에 부동산회사에 취업했다.

이제는 아파트가 내가 살 집 + 가지고 있어도 돈을 버는 자산으로 ‘부동산’으로 새롭게 와닿았다.


2017년 4월 회사복귀후 한달도 공백없이

꾸준히 돈을 벌었고, 그 결과 우리집에도 8천만원이란 자산이 모였다.

부동산 회사에 재직하며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걸 매일 실감했다. 어느정도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파트 쇼핑을 하듯 아파트를 샀다.


우둔하게 일만하면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다. 옆에서 아파트를 가지고 내가 지난 3년동안 일했던것보다 단기간에 훨씬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


시작선의 차이가 더 벌어지는 구나!

남편에게 아파트를 사자고 부추겼고 어머님의 도움을 받고, 전세를 끼고 남양주에 있는 조그만 아파트를 매입할수 있었다.


아파트에 살지는 않아도,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것만으로 기뻤다. 기자들을 만나서도 이런저런 자랑을 했다. 이런 호재가 있어서 더 오를거에요……



그렇게 2년이 지난 우리,

남편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나 역시 이전보다 나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성공!

어느정도 숨통이 트였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15평 쓰리룸에 살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또 한번 대나무 자라듯 쑥쑥 오르고 있다. 우리 아파트는 조정지역으로 묶여서 양도소득세가 무서워 팔지도 못하고 있다.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건 빛좋은 개살구이다.


그 사이 우리집은 겨울철 결로로 천장 벽지에 곰팡이가 쓸고, 공간을 이리저리 옮겨봐도 그냥 좁음에 포기했고, 그저 그러려니 ‘좁음’에 나의 욕망과 필요와 마음을 맞춰가며 살고있다.



이제는 6살 아이입에서 래** 아파트가 좋아요? 자* 아파트가 좋아요? 물어본다.

나의 아파트타령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남편은 이제 아파트 이야기만 나오면 바로 말싸움으로 번지기에 우리 부부는 아파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파트에 살 방법이 있으면 나보고 가져오라고 한다.



얼마전 회사에서 극도로 나를 힘들게 몰고가서 관둬야지 생각한 적이 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그래 아파트 들어갈 생각말고 관두던지”


너는 모르겠지 

내가 우리집에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는 이유를,

우리집에 누구라도 방문하려고 하면 창문마다 커튼을치고 곰팡이를 가린다는 사실을.

내가 인스타그램에

우리집 사진을 안올리는 이유를


너는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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